가면 살이
Maskenball, by Hermann Hesse, 1926
추상화 비슷한 헤세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작품 제목이 가면무도회이다. 자연 풍경에 환상적 인상을 가미한 것을 몇개 보긴 했는데 황야의 이리에서 주인공 할러의 가면무도회를 묘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27년에 출판되었으니 소설을 쓰다가 자신의 영감을 그림에도 담아두었던 거 같다.
헤세의 글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모두가 자기독백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의 그림 대다수가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았고 융과의 교류후 심리치료의 도구로서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도 죽을때까지 계속 그렸으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출판된 그의 산문 모음집(최초의 모험)의 단편에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면을 쓰고 살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빛을 내면서 존재하려기 보다는 내키지 않는 빛인데도 스스로가 내고 있는 빛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풍경화를 즐겨 그렸던 이유가 그 순간 한 존재와 관계된 모든 것과 긴밀하게 호흡하고자 연습했던 것이 아닌지,
가면을 벗은 현존(現存) 살이(바로 지금 Now and here)의 연습이 아니었는지,
이제 그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동경이 서술된 그림을, 그에게 이해와 사랑을 가져다주고 그를 해명해주고 정당화시켜주며 칭송받게 하는 그림을 더이상 그리고 싶지가 않았다. 초상이나 향연의 모습으로 자신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또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황색 점토와 먼지에 뒤덮인 초록색 잎사귀,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 가파른 강변, 그 색채와 선들의 어떤 관계, 어떤 음향이 우연한 광경 속에 깃든 특이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으며, 또 그와 동질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숲과 강물, 강물과 자기 자신, 하늘과 대지와 덤불 사이를 잇는 교감의 진동을 느끼며 서로가 김밀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이 모든 것은 오로지 이 시간에 이렇게 그와 하나가 되어 눈과 마음 속에 비추이며 서로 만나 인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화가(Der Maler), 1918년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 죽음에 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