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in #bloglast year (edited)



눈 덮인 계곡, Verschneites seetal, 1933

그의 소설의 심리학에 경탄하고 그의 세계관에 대해 훌륭한 논문을 작성하는 영리한 학자도 역시 그의 진짜 독자가 아니다.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임함을 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그럴 때 우리는 더는 구경꾼이 아니요. 즐기면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 온갖 가련한 존재들의 가련한 형제가 된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며 그들과 함께 경직되어 숨도 못 쉬면서 삶의 소용돌이 속을, 죽음의 영원한 물레방아를 멍하니 들여다본다. 그럴 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음악, 그의 위안, 그의 사랑에 귀를 기울이고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경악스러운 지옥과도 같은 그의 세계의 경이로운 의미를 체험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아무 때나 읽고 싶지 않듯이 아무 때나 그의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 바로 베토벤이다. 그는 평탄한 길에서는 찾을 수 없는 행복, 지혜, 하모니에 대해 알고 있다. 심연 근처의 길을 비추어주는 미소지으면서 얻을 수 없는 오로지 눈물로만 고통에 지친 상태로만 얻을 수 있는 것. 그의 교향곡과 사중주곡들에는 순수한 비참과 쓸쓸함에서부터 무한히 감동적인 어린이답고 부드럽게 무언가를 내뿜는 의미의 예감, 구원에 대한 앎을 내뿜는 자리들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포스 신문, 베를린, 1925년 3월 22일,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마음이 혼탁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때 주역 점을 치곤한다. 점괘의 처방에서 그 상황에 대한 해석과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그렇게 따른다면 길흉회린(吉凶悔吝) 네가지로 귀결될 거라고 말해줄 뿐이다. 길(吉)하거나 흉(凶)하거나 후회(悔)되거나 옹색(吝)해질 거라는 결론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듯 흉한 것을 피해서 길한 곳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다. 더 나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조언을 해준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지혜롭게 처신한다고 해도 길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시 혼탁함 속에 있게 될 거라는, 즉 세상 만사의 75%는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 속에서 위안을 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였구나 하는 격한 공감때문일지도 모른다.

헤세는 도스토옙스키와 베토벤을 통해서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피할수없는 고통을 즐겨라는 말처럼 괴로움을 피하려해도 피할수 없으니 극복하려고 안간 힘을 쓰기보다 원래 그런거라 인정해버리고 그 괴로움에 직면하면서 되물림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공감을 통해 분산시키는 게 오히려 지혜로운 처신일 게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깍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빈곤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만드는것 같지요 이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길러 주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위함입니다. 맹자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行 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Beethoven by W.Furtwängler - Symphonies n°1~9

헤세처럼 베토벤의 교향곡을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를 위해 미리 찜해두었다. 눈이 아파가며 도스토옙스키의 두꺼운 책을 읽기보다는 6시간짜리 교향곡 듣는게 더 고상하고 효율적인 처방인거 같다.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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