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가치

in #blog2 years ago (edited)

hesse.jpg
Hermann Hesse-lobo

악마가 조종하듯 뜨거운 짝사랑의 열정에 불타오르며맹목적으로 몸을 사르고 쉼 없이 돌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든 예술 중의 으뜸 예술인 기억을 연습하는 것이 좋다. 쾌락과 기억은 상생 관계에있다. 쾌락이란 과일의 달콤한 과즙을 남김없이 짜서 마시는 것이다. 기억이란 그렇게 누린 쾌락을 멀리 아득하게 보내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되새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상생의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한다. 우리는 모두 유년기를 생각하면서 그 시절의 자질구래한 쓸데없는 일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름다운 파란 하늘에 환상적인 기억을 펼쳐놓고 수천 가지 아름다운 추억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혼합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날들의 즐거운 추억을 되새기는 것은 그때의 쾌락을 곱씹는 일일 뿐 아니라 행복과 그리움과 낙원을 항상 새롭게 만끽하게 해준다. 그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기와 온기와 빛을 얻을 수 있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일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아픔마저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살아내려 애쓸 것이다. 암울했던 날에 대한 기억도 아름답고 성스러운 추억임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 밤의 사색에서

헤세의 글은 헤세가 스스로의 마음을 엿보되 그 마음 순간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생각 조각의 세밀한 묘사와 슬그머니 끼어드는 성찰의 마음을 다시 엿보면서 무질서하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정신세계를 버무린다. 그렇기 때문에 융의 분석 심리학 혹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익숙하다면 헤세의 글이 훌륭한 학습 자료가 될 것이다. 실재로 정신의학자가 헤세의 작품 다수를 정신역동적 사례연구로 분석한 책도 있다.

특정 기억에대한 명확한 인식과 성찰이 심리치료의 중요한 도구라고 한다. 하긴, 우리의 사고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심리적 비중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순간에 일어나는 마음의 풍경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잡생각)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의 복잡한 연쇄들, 그리고 다시 성찰과 기대일 뿐 모두 앞 생각의 기억을 딛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마음 조각들의 연쇄반응이다. 앞 생각은 바로 앞의 생각이 될수도 있고 꽁꽁 숨어졌다가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도 될수 있으니 모두 앞 생각이고 그것이 기억이라는 사고 작용을 통해서 소환된다. 그런데 기억에 대한 헤세의 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다.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기와 온기와 빛을 얻을 수 있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일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살기와 한기와 어둠을 열 수도있지만 모두 지나가버렸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이미지 무더기일 뿐이다. 어느 기억이 일으키는 그 짧은 순간의 심리적 에너지가 몸에게 다양한 반응으로 때로는 엄창나게 전가되어지고 다시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살아내려고 애쓸 뿐인 이유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작금(作今) 즉, 만들어지고 있는 바로 지금 이순간, 현재의 삶에 직접일어나고 있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심리적 에너지가 순화되도록 의지의 정신에너지로 길을 터주는 노력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기억에 대한 진지한 삶의 가치부여겠지.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Posted through the AVLE Dapp (https://avle.io)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5
JST 0.029
BTC 62938.05
ETH 2552.06
USDT 1.00
SBD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