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비 내리는 마콘도

in #kr-pen6 years ago (edited)

IMG_9281.JPG



비 내리는 마콘도




습기는 그저께부터 몰려왔다. 산책하는 도중에 비가 왔는데 다시 집에 돌아가기가 어중간한 위치라 그냥 비를 맞고 산책을 했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민락수변공원을 거쳐 집까지 걸었다. 마린시티의 야경과 함께 잔잔하지만 제법 거센 비가 바다에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카락이 다 젖어있었다. 샤워를 하고 명상을 한 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또 한 번의 찬물을 끼얹고 오랜만에 개운하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식사와 설겆이를 마친 나는 마콘도 마을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배낭도, 기차표도 필요없다. 나는 필사되고 있는 백 년동안의 고독, 363페이지로 들어갔다. 현실에서도 많은 양의 비를 맞은 데다가 마을에 도착하니 거기에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나 자신이 엄청난 수분을 흡입하는 생명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콘도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소설 속의 글자들을 내 노트로 하나씩 운반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한페이지씩 소설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360일이상 했더니 나 자신이 마콘도 마을에 사는 원주민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고 게다가 이미 이 소설을 다 읽어버렸기때문에 이 마을에 비가 4년 11개월 이틀동안 내릴 예정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비만 그치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우르슬라에게 이 사실을 슬쩍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비는 끝없이 내렸다. 페르난다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남편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그의 첩 페트라 코테스를 욕하기 시작하더니 시댁식구들에 대한 원망을 장장 5페이지에 걸쳐 털어놓는다. 그 동안 가족들의 젖은 옷에는 이끼가 돋고, 물고기들이 앞문으로 들어와 창문으로 나가고 우르슬라의 등에는 거머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를 빨고 있다. 그리고 다 자라면 사랑에 빠질 두 아이가 서로 이모와 조카라는 사실을 모르고 늙은 우르슬라의 머리에 붉은 헝겊을 씌우고 얼굴에 물감으로 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현실에 돌아와서도 문장이 끊어지지 않는 마르케스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생각의 단편들


비, 데미안, K
어떤 혹등고래 위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춤추는 생각들
종이 눈꽃을 노리는 시간
출발하기 위해 도착한다
비 맞는 시간

Sor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장면이 불연듯 떠올랐어요.^^
비가 거의 5년을 내리면 노아의 방주 심판수준일 것 같은데요.ㅎㅎ

마침 오늘 아침에도 마콘도 마을과 경주를 하듯 부산에 비가 엄청나게 내렸어요:-)

Hi @levoyant!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2.917 which ranks you at #10778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risen 99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Your UA has improved by 0.000).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161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96.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Only a few people are following you, try to convince more people with good work.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Your contribution has not gone unnoticed, keep up the good work!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포스팅에서 뭔가 건강한 비 냄새가^^ 필사라..! 그렇게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보얀님 글을 보니 굉장히 몰입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백년동안의 고독도 취향이실것 같아요:)

주말에 제주에도 뽐내 듯 엄청난 비가 내렸답니다 ㅜ

지금 제주도도 엄청나게 습할것 같네요.

비가 4 년을 넘게 내린다면 상상하기 조차 힘드네요.
요즘 며칠 비가 많이 왔다고 문제가 많이 발생 한것 같아요^^

옐로우캣님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래요.

비가 많이 내리는 요즘인가봐요. 저는 비내리는 날씨를 보고싶었는데 보얀님 글에서 비의 감성을 보게되었네요 :)

라나님 전 시애틀에서 내리는 비도 맞고 싶어요. 시애틀이 다시 가고 싶은데, 캐나다로 이사가신다니 기대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오스 계정이 없다면 마나마인에서 만든 계정생성툴을 사용해보는건 어떨까요?
https://steemit.com/kr/@virus707/2uepul

오치님 감사합니다 ^^

보얀님 안녕하세요! 혹시 풋귤청은 잘 들어갔나요? 경아님께서 배송받은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택배 박스가 다 젖어있더라고요. ㅠㅠ 혹시 보얀님께서도 받으신 상품에 문제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솔나무님 저도 택배박스가 다 젖어왔었어요. 유리용기를 소독하고 따로 담아서 잘 먹고있어요. ^^

죄송해요. ㅠㅠ 처음 해보는 배송이라 실수했네요.... 그럼 다른 분들도 다 젖어서 갔었겠군요. ㅠㅠ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5
JST 0.029
BTC 61963.30
ETH 2416.68
USDT 1.00
SBD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