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출발하기 위해 도착한다

in #kr-pe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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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위해 도착한다








 나는 늘 산만하게 읽고 있다. 매일 집집마다 방문하는 우유배달부처럼 책에서 책으로 이동한다. 그런 식으로 매일 서너 권의 책을 짬짬이 읽는다. 한 페이지만 읽고 충분히 만족해서 다시는 읽지 않는 책도 있고, 다 읽고 나서도 주기적으로 꺼내 읽는 책이 있다.
 한 페이지 속에서 낯선 생각 하나를 마주하면 그날은 어제와 구별되는 날이 된다. 신비와 마주했을 때 표정이 없어지면서 침묵 속에서 그 기쁨을 찬찬히 음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저자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편이다. 책을 어루만지거나 껴안으면서. 혹은 저자와 떨어지기 싫어서 머리맡에 책을 두고 잠든다.
 틈 날 때마다 새로운 공간에 나를 두고 싶다. 혹은 새로운 생각 위에 나를 던져 놓고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고 싶다. 오늘은 습기가 가득한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을 가지런히 배열해 보았다.



 [싯다르타]는 개를 산책시키다가 잠시 쉬어가는 벤치에서 읽는다. 개는 내가 책 읽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한 페이지를 다 못 읽을 때가 더 많다.

 [마술사의 코끼리]는 하루의 제일 마지막에 읽는 책이다. 나는 자기 전에 침대에서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폭풍의 한가운데]는 최근에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보고 처칠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는 어제 저녁 교보문고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고 있다가 서점 폐점시간이 되어서 데려온 책이다. 오늘은 몹시 건조했던 1966년의 런던 대화재 사건에 대해 읽었다. 그 불은 런던에 있는 가옥의 반을 다 태워버렸는데 한 빵집 주인이 오븐의 불관리를 소홀히 한 게 원인이었다고 한다.

 [아날로그 사이언스]는 오늘 택배로 도착한 따끈한 신간이다. 양자물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교양서적을 몇 권 사보았지만 끝까지 읽은 책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일수록 그림이 많이 있어야 한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작년에 영화 [어라이벌Arrival]을 본 날 서점으로 달려가서 읽었던 소설이다. 최근에 다시 읽고 싶어서 책꽂이에서 데려왔다.



광선은 자신의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해. 목적지가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경로도 바뀔 테니까.



 나는 이 책에 수록된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곁에 두고 쳐다보는 문장이다. 책을 읽다가 이것이 광선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문득 알았다. 내가 만약 광선이라면 정말 가고 싶은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목적지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목적지는 특정한 장소와 비슷한 의미로 들리지만 부동산이 아니라서 소유할 수 없다. 그냥 내가 도착할 지점인 것이다. 그 지점에서 누군가는 출발할 것이다.
 난 늘 광선처럼 출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지의 세계에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도 나를 책 속으로 배달 보낸다.






생각의 단편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춤추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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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느 책속으로 제 자신을 배달시켜야겠네요. :)

전 라나님의 책에 도착하고 싶어요^^

저도 대여섯권 놓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요. 근데 요즈음에는 스팀잇에게 좀 정신팔려서 책하고 좀 멀어졌네요.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서 좋기도 합니다.

ps. 다이내나양은 책이 싫은가 봅니다. 예전에 외갓집에서 기른던 강아지는 책을 아주 물어뜯어 난장을 만들었지요. 걔는 캔디

피터님 스티밋 라이프 즐기고 계시네요.
다이아나는 책을 경쟁자로 보는 것 같아요. 전 스티밋 하느라 투자서적을 통 못읽고 있답니다:)

저도 아날로그 사이언스 주문했어요!ㅋㅋ
보얀님의 독서목록도 흥미롭네요. 폭풍의 한가운데가 끌려요..!ㅎㅎ

아날로그 사이언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어요:)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런던 빵집이 처음 발화지였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도 궁금해지는데요?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테드 창의 책은 대학 때 다닐 때 처음 접하게 됐는데 아주아주 좋아했던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소개해줬었어요.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서 주변에 잘 알리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에겐 알려줬거든요. 후에 애인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소개했더라구요. 그 때의 슬펐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책이어요. 그래도 늘, 여전히 아주아주 좋아해요. 마음이 미어지듯 슬플 때 읽으면 차분해져요.

부리코님도 테드 창의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이 작가 작품을 읽고 과학소설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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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에 세계에 도착하기위해서 책속에 배달보낸다는
보얀님!! 보얀님은 어디든지 갈것같은 느낌이들어요
미지에 세계에 이미 도착하신것은 아닌지 ..

옐로우캣님 요즘 전 스티밋의 세계에 푹 빠져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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