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산책자

in #kr-pen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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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
-로베르트 발저






 오랫동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읽고 싶었다. 그러나 십 오년 전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을 읽은 후 그 충격-돈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한 작가의 이야기인데 글이 너무나 매혹적이었으나 그 트라우마로 인해 나는 전업작가의 꿈을 접고 말핬다- 이 너무나 컸기에 책구입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야 할 책은 불현듯 도착하고 만다.


산책길에 산책자를 들고 나섰다

 未時에 나는 벤치에 앉았다. 빛이 춤추는 물결이 보이고 소나무 그늘이 차양이 되는 시간. 나는 방을 옮겨다니며 전희를 즐기는 사람처럼 벤치를 옮겨다니며 모든 사물이 빛과 색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를 충분히 즐긴 후 큰 일이라도 결심한 듯 두꺼운 책을 펼치고 말았는데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밤에 깨어있는 날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음미하게 위해 침대 옆 협탁에 책을 둔 채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그의 생을 더듬는다.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을 원합니까



 그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나오는 화자는 크리스마스날 괴짜 독신자의 불청객이 되어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수치를 느끼며 그의 집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곧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환희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아이들이라는 상상에 빠지는가 하면, 초라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느니 아름다운 눈으로 덮인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며 길 위에서 잠이 들고 싶어한다.


 로베르트 발저는 작은 셋방에서 셋방으로 끊임없이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폭음했고 불면증을 앓았으며 환청과 발작에 시달리며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 몰라서" 자살에 실패했다.
 그는 왜 그 누구도 자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불행했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삶의 궤적에 촘촘히 박혀있는 감정들을 그 혼자 맛보았으므로.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크리스마스 이야기(1919)



 쓰여진 것은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현실 속에 펼쳐진다. 1956년 그는 크리스마스날 눈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의 것처럼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가 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똑같은 질문을 나게게 던져보고 싶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내가 당신이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선뜻 그러라고 하겠는가.





생각의 단편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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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 이외의 인간을 제가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또 타인이 제가 되는 것도...

발저도 같은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슬픈 이야기네요. 정말 전업작가의 길은 쉽지 않나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밋이란 공간이 참 감사하게 느껴져요 :)

나는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내가 당신이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선뜻 그러라고 하겠는가.

한 달은 곱씹어봐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한 문장입니다. 오늘은 이 문장을 주제로 여러것을 생각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vixima7님 감사합니다. 매일 떨어지는 눈송이를 맞듯 순간 순간을 최대한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

읽고 싶은 책이 한 권 더 늘었네요. 이번에 몇 권 사오긴 했는데 짧은 시간 때문에 서점에 보이는 것들 중심으로 들고 와서 만족스러울진 모르겠습니다ㅎㅎ

조르바님, 사실 이 책은 좀 우울해서 권해드리고 싶진 않아요. 아 참, 귀여운 선물 잘 받았습니다. 깜찍한 복고양이 책상 위에 놓고 보고 있어요. ^^

제 멋대로 고른 녀석인데도 좋아해주시니 감사하네요 ^^ 가끔 쳐다보고 미소 지으실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ㅎㅎ
참 스타벅스 카드는 일본에서만 사용가능하다고 해요. 한국에선 사용이 안되구요ㅎㅎㅎ 혹시 일본 가실 때 들고가시면 라떼 두잔 정도는 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쉘양이랑 일본에 여행갈때 꼭 쓸게요. 스타벅스 커피도 일본이 더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Inspirational post! You know what they say.. "To handle yourself, use your head; to handle others, use your heart."

슬픔의 단편들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슬픔속에서도 환희를 느꼈던 발저를 매일밤 읽고 있답니다^^

저도 다른 사람이 내가 되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거절을.. 나는 온전히 나로만 남고 싶네요. 그게 왠지 모를 고집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낭만그래퍼님은 이유는 다를 지 몰라도 로베르트 발저와 같은 입장이시군요:)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 동생이 자긴 아이를 낳치 않을꺼라고, 자기와 같은 사람이 있는게 싫다고 해서 참 희안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제가 생각지 못하는 세계를 가지고 있었나봐요. 아주 오래전에 들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네요..
전 이런 생각을 안해봤던 것 같아요..

동생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이 될 것도 같아요. 제 친구도 그런 말을 했는데, "동족혐오"때문이라고 하더군요. ^^

아..그럴수도 있군요. 고요할때 동생한테 물어봐야겟어요..

우리는 누구도 타인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자리에 들어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고 해도... 때론 고통과 슬픔이 예술적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살아낸 삶으로써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전 온전히 살아내는 것도 불행과 행복, 실패와 성취를 떠나 하나의 예술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고추냉이 한숟갈 삼키듯 콧끝이
찡~하지만 이런 포스팅 좋아 좋아요

혹시 수필집 내신 거 있으셔요?

루시드드림 저 굉장히 관심 많아요

팔로우하고 갈게요

안녕하세요 승화님^^
수필집을 낸 적은 없습니다. 루시드드림 이야기를 스티밋에 연재해본 적 있는데 제 경험을 계속 이야기 형태로 풀고 싶어요!

주제 넘게 말씀 드리자면
수필을 쓰시면 참 잘 쓰실 필력이세요

로시드드림에 대해 찾아 읽어볼게요
오늘은 이 곳에서 놀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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