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누군가의 기억속에 저장되는 것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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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프로스섬에서 채석장 감독을 하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별처럼 빛났으나 팔리지 않았다. 팔리지 않은 시는 150년동안 읽히고 있다.


 오늘 한 여자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우연히 인터넷을 떠돌던 실종 전단지 속 얼굴을 본 순간 뾰쪽한 입술이 랭보의 입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간 뒤 휴대폰과 지갑을 얌전하게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 모습은 서면 번화가의 CC카메라에 찍혀있다. 뒷모습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슬퍼졌다. 여자아이는 큰 보라색 보자기를 머리 끝부터 무릎 아래까지 덮어쓰고 있다. 헌옷수거함에서 보라색 침대시트를 꺼내 온 몸에 두르는 너의 모습을 상상한다. 하필이면 왜 보라색으로 너 자신을 감싸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왜 사라지고 싶은걸까. 또한 주기적으로 지우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나올까. 강박적으로 블로그나 SNS의 프로필, 글과 사진을 모조리 삭제하고 잠수 타는 사람들, 그리고 예쁘게 뽀샵된 모습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오히려 기억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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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부활!
호출감사합니다

오치님 오늘도 반갑습니다!

저도 예전 연애를 할 때 제 마음 전달하기가 어려울 때
알아달라고 잠수타고 그랬었던 거 같아요.
서툴고도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었는데.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보라 아이.

저도 잠수 많이 탔어요^^
보라 아이가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종종 '경계'에 의해 기억을 나누고 명확히 하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상은 어떠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변동과 주기가 있기에, 존재를 인지하는지도 모릅니다.

잠수는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존재의 경계를 확정하는 작업 같은 걸로요.

저에게 경계란 내가 있음을 확인하는 거울입니다. 세계에서 분리된 내 존재를 응시할 수 있죠. 잠수를 타는 사람들은 거울을 보기 싫어서 거울 안으로 사라진것 같이 느껴집니다.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뉴스인가요?
보얀님의 상상인가요?
아주 짧은 단편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인터넷 뉴스에서 읽었어요. 보라색 이불을 덮어쓴 사진을 본 순간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 뉴스였군요.
보얀님의 문체 때문인지 소설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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