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는 파나마운하를 봐야지(2)

in #kr6 years ago
파나마운하의 역사

파나마 운하의 몇가지 재미난 정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운하 공사로 약 1억5천2백9십만 입방미터의 흙이 옮겨졌을 경우, 지구를 네바퀴나 돌 수 있다. 그리고 공사기간 동안 나온 채굴물들은 피라미드를 63개나 쌓을 수 있을 만큼 방대하다.
1914년 8월 15일, 안꼰 이라는 이름의 증기선이 공식적으로 파나마 운하를 처음으로 통과했다.
1963년 5월 12일, 꼬르떼 꿀레브라 구간과 3개의 갑문에 신형 램프를 설치하면서 24시간 운영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파나마 운하의 새 갑문의 길이는 427m, 폭 55m로 축구장으로 따지면 4배정도 되는 규모이다.
파나마 운하 소속의 근로자는 약 1만명이다. 참고로 파나마의 인구는 약 500만명이다.
매년 14,000척 이상의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지금까지 1백만척 이상이 통과하였다. 파나마 운하(panama canal)는 명실공히 파나마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이 운하를 주로 이용하는 나라는 한국, 중국, 콜롬비아, 멕시코, 일본, 페루 등이다.

미국의 북쪽과 미국의 남쪽을 이어주는 지름길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16세기경 중남미 대륙을 밟았던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운하 건설의 역사는 19세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운하를 만들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 처럼 보이는 이 계획은 한 번에 완성되지는 못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황열병을 옮기는 말라리아 모기 라는 작은 생명체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 그래서 두번에 걸쳐 도전하게 된다.


<황열병을 옮기는 말라리아 모기>

첫번째는 1880~1893년 경이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발 사업자였던 던 프랑스의 드 레셉스(de Lesseps)사가 그들의 노하우를 살려 운하 공사에 도전했다. 드 레셉스사는 프랑스의 외교관을 지낸 후 개발업자가 된 페르디낭 마리 비콩트 드 레셉스(Ferdinand Marie Vicomte de Lesseps, 1805~1894)가 세운 회사이다. 앞서 이야기한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활영병 등 열대 전염병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 중 무려 2만190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노동자는 대부분 중국사람들이었다. 결국 회사는 파산하고 말았고 공사는 중단 되고 말았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동원된 작업선>

두번째로 그 뒤를 이어 20세기경 미국이 도전하게 된다. 자체 팽창정책에 의해 미국은 남미 대륙으로 그 세력 확대하려고 했다. 마침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려던 파나마를 지원해서 결국 1903년에 독립을 성공시켰다. 미국은 바로 현재의 운하를 기준으로 폭 10마일(1.6㎞) 이내 지역을 미국 영토로 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파나마와 맺었다. 다음 해인 1904년에 미국은 10년간 총 3억 8,700만달러(현재 기준 4,000억여 달러)를 들여 마침내 1914년 8월 15일 82㎞에 달하는 파나마 운하 공사를 완료하게 된다.


<1906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축사>

그러나 파나마는 1950년대 이후 파나마 운하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끊임없이 했다. 1968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파나마의 마르틴 토리호스(Martin Erasto Torrijos Espino) 대통령이 1977년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만나 '미국은 1999년 12월 31일자로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하게 된다. 이로써 파나마는 2000년 1월 1일 이후 운영권을 갖게 된다. 50년 동안 운하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한 파나마는 거의 80년정도 남의 나라에 막대한 국부를 넘겨주다가 드디어 나라의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파나마에서 파나마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세계의 경제 성장률이 침제기인 요즘에 파나마의 GDP성장률이 2015년 이후 거의 5%가 넘는다. 이는 파나마 운하 통행료가 견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수입은 약 19억 달러에 달하는데 파나마 국민 소득과 비교하면 두배가 넘는다.

파나마의 엄청난 경제적 이익 때문이겠지만 파나마운하를 건설하려는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 개발에는 엄청난 인력과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인류 역사에 남을 대공사였다. 게다가 한번 크게 실패한 공사가 아니었던가? 분명히 개발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는 누군가 결정할 권한이 있는 한사람의 “그” 순간이 존재했을터이다. 물리적인 시간과 여러사람의 고민들이 켜켜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다. 아마 나와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변수들과 환경검토를 극복하고 해결했을까? 얼마나 많은 이해당사자들과 갈등이 있었을까? 어렵고 힘든 순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 하루에도 수십번 들지 않았을까?

어느 어둡고 외롭고 초라한 방의 한켠에서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글을 조선의 왕인 선조에게 쓰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은 어땠을까?

본인이 직접 뽑은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로부터 오히려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던 창업자 스티브잡스는 회사정문을 나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2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국민혁명군을 피해 근거지를 옮기며 그 고되고 먼 행군을 했을 때 마오쩌둥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 시점에 수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이고 충분히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에 그렇게 오롯이 쓰여졌다.


파나마 여행기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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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어보니 정말 모기가 무서운 곤충이었네요..
다른 내용도 너무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ㅎ
팔로우와 보팅하고 갑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뵐게요!

그래서 저도 예방접종을 하고 여행을 갔어요 ㅋ

반갑습니다 가입한지 2일된 뉴비입니다^^
팔로우,보팅 하고가요 시간되시면 맞팔부탁드립니다 자주뵈요^ㅡ^

고맙습니다. 팔로우 했습니다. 스티밋가입을 환영합니다. ㅎㅎ

수많은 난관 속에서
고민과 불굴의 노력의 결실들이네요 ^^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건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홧팅

그러게요. 그래서 인간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ㅋㅋ

비록 적은 스팀파워지만ㅋㅋ 선보팅 후독서 갑니다 ㅎㅎㅎ

스팀이 중요하겠어요? ㅋㅋ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활영병 등 열대 전염병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 중 무려 2만190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역시 질병의 힘은 무섭네요. 정말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파나마운하. 미국은 36년간 투입한 공사비를 다 뽑아냈을까요? 아니면 지금도 일정 금액을 파나마 정부로부터 받아가는 것일까요? ㅎㅎㅎ

선박의 크기를 분류할 때 파나막스(PANA MAX)라는 것이 있는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최대 치수로 5만~7만톤급이라고 하더라고요. ㅎㅎㅎ

아마도 뽑고도 남지 않았을까요? ㅋㅋ 이 날 큰배들만 지나갔는데 아마 그 정도 사이즈인 것 같습니다

1번 지나갈 때마다 최소 몇천만원에서 억단위는 받겠지요? 그리 예상해봅니다. 왜냐면 선박이 하루에 사용하는 기름 값이 어마어마하니깐요. ^^

통행료를 잘 모르겠지만 평당 얼마 받는다고 합니다. 배의 크기에 따라서요. 그래서 통통배도 지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ㅋㅋ

언제나 리스크는 예상하지 않은 일에서 오나 봅니다... 2만9천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할줄 누가 알았겠어요.. ㅠㅠ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사실 지금도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

지난번에 이어 재밌게 잘 읽었어요
매력적인 동네이고 파나마운하를 통해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가 되는 군요 ;D

중남미 매력 넘치는 곳입니다 ㅋㅋ

오오~ 뭔가 더 스펙터클해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본격적인 여행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글을 읽으니까...안그래도 싫었던 모기가...이제 무섭습니다 : (
모기야 사라져버려라!!!!!!!

ㅋㅋㅋㅋ 그래서 그 나라 갈 때 예방접종을 꼭 하고 가야 들여 보내줍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파나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는데요,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니 정말 흥미롭네요. 팔로우 할께요!!

고맙습니다 저도 놀러갈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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