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3 / Music Box #4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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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기쁜 표정' 대문을 써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빗소리를 들으며 오겹살을 구워먹었다.

빗소리가 청승맞지 않고 쾌적하게 느껴질 때 생각나는 곡은 역시 샹송 Que Reste-T-T'il De Nos Amours/스탠더드 I Wish You Love의 이 버젼이다.

오겹살이 맛있어서 즐거운 곡을 듣고 "기쁜 표정" 일기 대문을 썼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나는 원래 고기를 즐겨 먹지 않았었다. 지금도 고기 맛을 엄청 느낀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양갈비다. 숄더랙이든 그냥 갈비든. 많은 이들처럼 쇠고기, 돼지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식단을 일부러 고단백으로 바꾸면서, 면과 밥을 먹는 빈도를 확 줄였다. 원래도 밥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으나, 면은 자주 즐겼었다. 좋은 점이 아주 많다.

지난 1년 간 라면은 한 번(어쩌면 두 번?) 먹었으며, 짜장면은 세 번 정도 먹었다. 파스타, 찜닭 같은 당면 요리는 좀 더 자주 먹었지만, 그래도 안 먹은 날이 먹은 날보다 훨씬 많다. 초콜렛이 당기는, 매달 있는 주간만큼은 밀가루를 아예 끊을 순 없는 것이다.

좋은 점은

  1. 식곤증이란 게 없어짐
  2. 순간적인 에너지는 조금 딸리지만, 꾸준하게 감.
  3. 같은 생활을 해도, 음식이 체지방으로 쌓이는 일은 줄고 근육도 잘 감소하지 않는다.

사실 술을 너무 좋아했었다. 맥주, 양주. 소주는 맛을 들이지 못했다. 친구네 집에서 여럿이 모여서 마시거나, 혼자 저녁에 강아지랑 산책 나갔다가 마시는 캔맥주를 좋아했었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곡은 말 그대로 "너에게 취해"라는 뜻의 You Go to My Head를 내가 좋아하는 버드 파웰이 연주한 버젼이다. 흡연자도 아닌데 담배 연기도 보이는 것 같은 연주다.

원래 재즈 피아니스트들을 무심코 두 부류로 나눈다. 흐드러지게 치는 사람, 또록또록하게 치는 사람. 물론 한 곡 내에서 두 느낌을 다 주기도 하지만, 대체로 전자는 빌 에번스, 후자는 아트 테이텀 정도? 버드 파웰은 두 매력을 다 갖추고 있다.

빌 에번스 하니까, 개인적으로 이 곡을 빼놓을 수 없다. 너무 유명한 노래지만 특히 빌 에번스 버젼이 좋다. 보통 원 멜로디의 아름다움에다가, 기교는 돋보이지만 그 자체로 별로 아름답진 않은 솔로가 펼쳐지는 경우도 많은데, 빌 에번스의 이 곡에서는 솔로 파트도 너무 예쁘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었냐면, 한번은 택시를 잡고 친구네 술 모임에 갔다. 친구가 좋은 술을 사놓고 부른 날이었다. 창 밖을 바라보면서 가는데, 택시 기사 분이 계속 표정을 살피더니 엄청나게 좋은 곳에 가느냐고 물었다...그 날 술을 산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내가 꼭 나오게 하려면 이 술을 사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모임에 갔는데, 그 중 한 사람과 좀 특별한 감정이 있는 사이였다. 그들은 평소에 술 마실 일도 많고, 자기들끼리의 술 문화가 정립된 그런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목이 마른 상태에서 도착했는데, 눈앞에 놓여 있는 시원한 맥주를 바로 마시지는 못하고 높은 사람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인간들은 술잔을 돌리거나 하는 게 관행(?) 이면서 참...

회상과 술에 맞는 노래는 역시 이거. 별로 시나트라랑은 감성적으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팬이라 그런지, 덤덤한 이 버젼 좋다.

(여담이지만 잔 돌리기 하는 그 분들과 한 잔 하다가 훗날 꽤 유명해진 인물이 달려오는 바람에 술잔을 바꿔먹은 적도 있었다. 나는 사실 결벽증 비슷한 성향도 있어서 그런걸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뭐 평소에는 해보지 않는 경험이니...)

어쨌든 그 날,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이 평소보다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놔...맥주가 빨리 먹고 싶은 것 뿐인데, 혹시 당시에 진행중이었던 밀당의 밸런스가 망가질까봐 걱정이 됐다. 자기 때문에 긴장한 줄 알면 어떡하지. 안티로맨틱인 나는 어차피 로맨스 초기의 감정만 좋아하기 때문에, "썸" 의 흐름이 예상 밖으로 가는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술) 결핍의 느낌도 너무나 싫었다. 술을 끊어야곘다, 그렇게 결심했다.

혼자 산책 나가서 캔맥주 마시는 것부터 끊었다. 그리고 정말 남들과 만나서 마시는 것만 했는데, 양을 최소화했다. 한 캔 이상, 한 잔 이상 안 나갔다. 그렇게 끊으면서 과일주스가 엄청나게 당기기 시작했다. 일종의 금단 현상이었던듯...술도 결국 당분이라 그런지, 다른 것으로 당분을 섭취하려는 충동이 엄청나게 커졌다. 술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허세로 단 음식 안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왜 자꾸 단 음료가 마시고 싶어지는지 그땐 잘 몰랐다.

원래 안 먹던 과일주스, 탄산음료 등을 물처럼 마시기 시작했고, 원래 안 좋아하던 싸구려 과자 같은 것도 막 먹었다. 그때가 아마 태어나서 제일 살이 많이 찐 시기였을 것이다. 그때는 술을 끊은 부작용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과식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원인도 사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일이 바쁜 시기여서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옷을 입거나 하는 일도 귀찮아졌다.

계기는 까먹었는데 우연히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원래 밥을 잘 안 먹고 파스타나 당면 요리, 만두, 국수 종류 등을 자주 먹는 편이었다. 질이 나쁜 디저트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그럭저럭, 몸에 좋진 않아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을 텐데, 하필 고기를 안 즐기는 식성이었던 데다가 과일주스 섭취량만 늘었으니... 변화의 제일 큰 원인은 과일주스였다.

과일 주스를 끊자, 물로 목을 축이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졌다. 목마름이 없어지지 않는 느낌.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물에 익숙해졌다. 매일 최소 2리터. 지금도 계속 그 정도는 마신다.

물 하면 이 노랠 빼놓을 수 없지. 제목도 아예 "마실 물"이다.

물을 마시고, 고기와 야채를 매일 먹기 시작했다. 양고기, 오리고기, 닭고기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더 일반적인 고기도 사서 구워먹었다. 씹는 것도 귀찮고 그랬는데, 고기를 먹은 날은 배가 빨리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상당히 쉽게 1일 1식을 하게 됐다. 하루 먹는 양을 1끼니로 확 줄인다는 뜻이 아니다. 하루에 필요한 열량을 한 번에 다 섭취하고 24시간 기다렸다가 다음 끼니를 먹는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소위 케토시스 효과도 느껴봤고, 운동 따로 없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1일 1식은 원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인류가 원래 여러 끼니를 먹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착안한 음식 섭취 방법이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열량은 고기와 견과류, 야채로도 금방 채워진다. 고기를 부드럽고 냄새 나지 않게 조리하는 법도 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일단 내 경험상으로는 냉동 고기의 경우, 해동이 생명이다. 양고기를 좋아하는데 양고기는 거의 호주나 뉴질랜드 수입산이고, 다 냉동 고기이다. 해동을 냉장고에서 최소 3일 하면 질기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한 달은 1일 1식의 패턴이 많이 깨어졌지만, 하루 종일 자잘한 무언가를 씹어댄다거나 하는 습관은 다시는 들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2끼 정도 먹는 날이 늘었다. 며칠 전부터 다시 1끼로 줄였더니 지난달 내내 있었던 얼굴 붓기가 빠졌다. 난 이제 계속 1식으로 굳혀가야 하는지도...

물론 이런 타이밍의 식단이든, 내용상의 식단이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상 부려가면서 깨작거리거나 안 먹거나 하는 행태는 좋아하지 않는다. 약속이 있을 때는 유연하게 한다. 셀러리로 배를 채우고 기다리다가 약속 때 제대로 먹는다거나, 그냥 그 날만은 적당히 2끼니로 나눠 먹는다거나.

1일 1식을 학생이나 수험생에게는 권장하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오히려 실천하기 쉽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으로, 별로 크게 많이 먹지 않는데도 뱃살이 늘어나고 있다면 1일 1식으로 없앨 수 있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1끼니를 저녁대에 먹는 것이 보통 권장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먹고 얼마 후에 잠드는 것이 썩 좋지 않고, 외출에도 지장이 있어서 보통 아침/점심 사이의 시간에 먹는 편이다.

흠, 비가 오고 차분해지면 생각이 나는 곡은 거슈윈이 작곡한 Embraceable you의 이 버젼이다. 뭔가 공기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연주다. 영어로 사랑의 음식은 음악이라는 말을 보통 하는데, 그건 사실 매우 안티로맨틱한 말이다. 딱 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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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빠지면 어쩌져?

형 말랐구나. 그래도 탄수화물 대신 다른 걸 더 먹는 게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음!

술도 결국 당분이라 그런지, 다른 것으로 당분을 섭취하려는 충동이 엄청나게 커졌다.

헉 !!!!!!! 저 이거 지금 처음 알았어요 !!! 저도 술 좋아하다가 최근에 못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단 걸 찾아서 먹거든요 ㅠㅠ 원래는 디저트나 탄산음료 이런거 하나도 안 먹었는데 ㅠㅠ

맞아요. 술 끊으면 단게 생각나는거... 금단현상 비슷한 거에요...ㅠㅠ

  • 음악이 없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 만큼 끔찍한게 없지요.
  • 이 포스팅은 작자의 의도 달리 음주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 모든 음악이 마음에 흡족합니다. 굿잡.
  • 좋은 술을 구해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한잔씩 천천히 돌려마시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사케와 스시가 제격입니다.
  • 소주는 안주 없이 홀로 마십니다. 소주는 곧 한국남성의 인생입니다.
  • 웃는 대문이 맞았어요. 이런 바람직한 포스팅을 게시한 제이미 칭찬해.

음주를 부추기는 포스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포인트포맷 잘 쓰시네요. ㅋㅋㅋ

글 중간중간 재즈곡이 흘러나오고.. 심야 라디오 방송 듣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최근에야 인간이 하루 3끼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1식 도전했다가 살이 너무 많이 빠지는 바람에(아 이거 살빠졌다는 소리도 주변에서 계속 들으니 스트레스드라구요) 2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간헐적 단식을 하고 야식과 간식을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이렇게 변화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편해요.

그쵸? 엄청나게 효과가 있어요. 고열량 음식(견과류, 고기 지방)을 싫어해서 한 끼에 많이 못 먹는 사람은 간식만 없애도 되죠.

개인적으로 아침식사 산업이 큰 원흉인 것 같아요. 시리얼, 오트밀, 오렌지주스, 안 먹으면 큰일 난다는 아침식사. 간식을 부르기도 하구요.

고기와 술과 음악의 기막힌 삼중주네요.
그 막 좋아서 헤실헤실 제이미님을 택시에서 웃게 한 술은 무엇입니까!

말하려니 뭔가 슬프군요. ㄹㅇㅅㄹㅌ 38ㄴㅅ

와... 웃음이 나올만 하네요...

생각만으로 찹찹 소리가 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찢어졌나 봅니다. ㅋㅋ

대단히 정교한 자기관리에 놀랐어요.
의지력도 각성력도 본받을만하네요.

타타형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에는 그렇게 철저하지 못해서 그냥 그래요. ㅋㅋㅋ

제이미 직장인이 1일 1식은 어려울듯 한데요. 함께 먹는 점심인지라 자기 뜻대로도 힘들고~아침은 자느라 건너뛰고 저녁에 스트레스는 어쩐다요 ㅎ
지금 커피사러 나가니까 사와서 마시면서 노래 들을거예요^^
저도 결혼 전에는 음식에 대해 취향이나 소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졌어요.ㅠ
글 읽으니 자극이 되네요^^

아, 제가 읽은 사례들이 외국이라 좀 다르겠군요. 직장에선 그냥 점심을 안 먹고 저녁을 먹는 유형이 많더라구요. 한국에선 그러면 미움 받을라나요?!

여기는 식사에 많은 의미를 두는거 같긴해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건강이나 다이어트 등)...이해 못할지도요 ㅎ

그렇겠네요. 도시락도 유별나다 소리 들을 수도 있고, 일단 챙기는 것도 힘들고. ㅠㅠ

그래서 점심을 먹는다면, 간식을 아예 안 먹고 저녁까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가 있을거에요! 먹는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공복 유지 시간이 중요하니깐요.(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다면 충분할듯요!)

아 1일 1식하시는구나.... 고기는 포만감이 오래가나요? 인지 못하고 먹긴 했는데 한번 체크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요즘 소화기능이 떨어졌는지 자꾸 배아파서 소식을 하는 중이라 1일 1식에대한 호기심이 생기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

양배추를 많이 드셔야겠네요. 저도 고기 잘 안 먹을 때는 양념된 것만 가끔 먹고 그랬는데, 간을 최소화한 고기가 좋은 것 같고, 밥을 안 먹을 수 있으면 더 좋죠.

예전에 다이어트 할때, 저 탄수화물식을 많이 하긴 햇었죠 ㅠ 양배추는 그,,, 일본 약 먹어보려고 햇는데 일단 삶아서 좀 먹어야겠습니다. 지금 생각났지만 그게 소화에 좋았던것 같아요 ㅎ

염증에는 제일 좋은거 같아요. 양배추.

와...1일 1식?.......근데 하루치를 한번에 먹다가........나 같은 사람은 잘못하면 하루치를 3번 먹을수도...ㅋㅋ

ㅋㅋㅋㅋㅋㅋㅋ그게 좀 걱정인 경우도 있더라구요. ㅋㅋㅋ

빗소리에서 시작해서 비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그 사이가 자연스레 이어져서 심심할 틈 없이 읽었습니다. 흐드러지게 치는 사람, 또록또록 치는 사람을 구분하는 걸 보니 제가 막귀는 아닌듯 ㅎㅎㅎ오겹살에 소주한잔 먹고 싶어지는 오후네요.

막귀...ㅋㅋ 감사합니다. 전 아침부터 고기 먹고 배부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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