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 대지진 출장기]10.두 번의 휴식
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기사도 써야 하고 포스팅도 해야 하는데 카톡방이 너무 재밌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오늘 쓸 이야기는 네팔에서 잠시 누렸던 휴식에 관해섭니다. 사실 두 번 쉴 기회가 있었어요. 신문기자가 항상 쉬는 토요일과 기사를 다 털고 나서 비행기 타기까지 남은 하루. 하지만 제대로 쉰 건 마지막날 하루 뿐이었죠. 머 그렇습니다. 제목은 휴식인데 대문 사진 휴식이 아닌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쉬는날 찍은 사진이예요.
재난지역에 출장을 왔으면 휴일에 쉬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재난지역에서 쉴 시간이 나서 술을 먹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비난을 받아야 할까? 그렇다면 비난을 받아야겠다. 나는 네팔 출장 기간 열흘 중 하루를 쉬었고 그 때 현지에선 상당히 비싼 집에서 술을 꽤 마셨으며, 돈도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많이 썼다. 가족과 여친(아내)을 줄 선물도 샀다. 당연히 내 돈을 썼고 우리나라나 현지의 법과 미풍양속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할 일을 다했고, 직업인으로서 기자 이상으로 그들과 함께 아파했다. 귀국하기 전 남은 시간을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즐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수 없다. 그런데 미안함인지 죄책감인지 떨떠름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잘못이 없을지언정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이 점을 굳이 이렇게 길게 쓰는 거다.
2015년 5월 2일은 토요일이었다. 신문기자는 토요일엔 정말 대박사건이 없는 이상 쉰다. 신문사는 대부분 일요일자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우리 일행은 신두팔촉의 산골마을 바데가운에 들어갔다. 어짜리아 집안을 만난 것도 이날,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에 일을했으나 토요일에 마감할 기사는 없었고, 월요일자 기사 취재를 토요일에 다 끝낸 상태이니 일요일은 시간이 많았다. 반은 휴일처럼 지냈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월요일에 쓸 아이템이 없으면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카트만두가 복구에 힘쓰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하기 위해 선교사에게 부탁을 했다. 예배를 마친 선교사의 차를 타고 그야말로 설렁설렁 시내 곳곳을 다녔다.
선교사와 함께 찾은 곳은 박타르푸르. 카트만두 시내의 구도심으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카트만두, 파탄과 함께 네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말라 왕국의 3대 고도라고 한다. 한국의 경주 같은 곳이다. 사전을 좀 더 보면 17~18세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나와 있다.
그게 문제였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리틀부다'의 배경으로 나왔던 이 아름다운 옛날 건축물들은 당연히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던 붉은 건물들에 쓰인 벽돌은 네팔 전통 방식(아래 설명)으로 만들어진 내구성이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지진 초기 본진에 가장 많은 건물이 쓰러졌고 피해도 컸다. 세계적인 건축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진 모습이 담긴 사진은 지진의 참상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널리 보여주는 방법이 됐다. 초기 가장 많은 외신사진이 여기서 찍은 것들이었다.
내가 찾았을 때 주거지역은 참담하게 망가져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넓다란 사원, 공원 등 관광지에 천막을 치거나 자리를 깔고 모여서 연명하고 있었다. 한 사원 입구엔 '지진 피해를 입은 165명을 도와달라'는 내용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너도나도 외국 기자에게 한 마디라도 하고 싶어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 게 신기한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관광지역으로 나가자 인부들과 남성 주민들이, 멀쩡했던 모습이라면 어마어마했을 법한 유적들을 부지런히 수습하고 있었다. 그들은 줄을 서서 하나하나가 소중한 유산일 게 분명한 기왓장들을 소중하게 손에서 손으로 전달해 옮기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관광을 온 것이 아니라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찾았으니, 거기가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건축물들이 지진 피해를 입기 전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날 한 스케치는 따로 기사에 담지는 못했지만 다른 기사에 조금씩 녹여서 썼다. 나는 이미 반 이상 문을 연 상점가에서 휴대전화 유심칩을 샀고 숙소로 돌아왔다가 밤엔 CBS 선배와 함께 그 유명한 타멜에 나갔다. 서울에선 이태원 정도에 해당하는 타멜은 당시까지 문을 연 상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을법한 펍에 들어가 현지 맥주를 몇 병 마셨다.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는 맥주는 없었지만 숙소 부근의 동네 가게에서 산, 냉장보관도 안 돼 있던 맥주보단 훨씬 나았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그런지 상당히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5월 6일에 7일자로 보낸 취재기를 끝으로 네팔에서 펜을 놓았다. 7일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 밤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유흥이었다. 블로그를 많이 보신 분은 아실 텐데,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라 이미 네팔에 들어오기 전 카트만두에 북한식당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네팔을 뜨기 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 곳에 그날 밤 드디어 갔다.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복구가 어느정도 진행된 시점이었긴 했지만 현지 유심의 힘은 막강했다. 재난 한 가운데에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무려 구글 지도를 이용해 타멜에 있는 평양식당을 찾아갔다.
평양냉면은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남겨둔 채 이것저것 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약간 고급스러운 증류소주를 몇 병 마셨는데 그걸 파는 게 당에 알려지면 안 된다며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안 찍었다. 같이 간 기자들이 죄다 후배인지라 내가 다 냈다. 우리나라 돈으로 총 16만원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음식맛 총평은... 빨리 남북통일이 돼야 한다는 말로 갈음하려고 한다. 이름은 생소한데 나온 것을 보면 생소하지 않은 메뉴들이었다. 하나같이 맛이 진하고 강렬했다. 단맛은 더 달고 짠맛은 더 짜고 매운맛은 더 매웠다. 양은 많지 않았다. 넷이서 메뉴가 나오는대로 족족 나눠 먹다보니 이것저것 여러개 시키게 됐는데 빠짐없이 맛있었다. 급기야 "무슨 백김치를 돈을 받고 팔아? 한 번 시켜볼까"하고 시킨 백김치 맛도 평생 못 잊을 것 같았다. 통일 대한민국 만세.
드디어 대망의 평양냉면을 시켰다. 서울에서 먹던 모양이 아니었다. 봉사원 동무(이게 정식 명칭이라고)가 "원래 꿩으로 육수를 내야 하는데 네팔에선 꿩을 구할 수 없어서 닭육수를 냈으니 이해해 주시라"고 했다. 당연히 이해했다. 봉사원이 "평양 사람들 먹는 방식대로 드실거냐"고 물어서 흔쾌히 승낙했는데 살짝 후회했다. 사진을 보면 면 위에 다대기와 고명이 큼직하게 올라가 있는데, 국물에 식초와 겨자를 한바퀴씩 돌린 뒤 다대기를 다 풀어서 주더라. 맛은 '엄청 맛있는 막국수' 같았다. 평소 평양냉면을 아무것도 넣지 않고 즐기는 바, 순수한 맑은 육수가 아쉬웠다. 봉사원에게 육수만 따로 좀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몇 번이나 갔다 줬다. 나는 그걸 다 마셨다. 최고였다.
타멜은 50% 이상 살아나 있었다. 우리는 그날 흠뻑 취했고 가족들과 애인 줄 선물을 잔뜩 샀다. 나는 네팔 생활 10년의 선교사가 추천해 준 현지 브랜드 매장에서 패시미어(캐시미어보다 상급이라는데 잘 모르겠음) 머플러를 세개 샀는데 세 개 값이 한국에서 캐시미어 머플러 한 장 살 돈 정도 밖에 안 됐다.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를 잡는데 가격 담합 때문에 애를 먹다가 400루피에 이상한 봉고차를 탔다. 도착했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여자 안 필요하냐"고 해서 서둘러 내렸다.
네팔 전통 벽돌 제작 방식 : 타워 형태의 가마 맨 아래에 땔감을 놓고 그 위에 돌과 모래를 쌓은 뒤, 그 위에 빚은 벽돌을 올려놓는다. 땔감을 계속 넣어 불을 때는 게 아니라 타고 나서 돌과 모래층에 남은 열로 벽돌을 굽는다. 사실 상 굽는 게 아니라 말리는 개념.
앞선 연재 다시보기
0. 출발전
1. 출발-도착
2. 참상
3. 생활
4. 생존
5. 위기는 기회
6. 신두팔촉
7. 신두팔촉, 바데가운
8. 어짜리아家
9. 한-네 친선병원
취재하시느라, 재난지역이라 마음놓고 쉬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랴...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눈에는 왜 평양냉면만 계속 들어오는 걸까요 ㅋㅋ
맘놓고 강추도 못해드리겠어요 ㅋ
고생 많으셨어요~~ =0= 피해보신 분들 너무 짠하네요 ㅠㅠ
고맙습니다. ㅜㅜ
한편의 책을 읽은것 같습니다. 고생많이하셨겠어요. 평양냉면과 백김치맛이 정말 궁금하네요^^
전 정부에서 해외 북한식당 방문 자제 권고를 내렸는데 정권교체 뒤 풀렸나 모르겠네요. 중국, 태국, 베트남, 네팔 등에 식당이 있어요. 또 맛보고 싶습니다. 백김치...
ㅋㅋㅋ 막판에 여자 안필요하냐는 물음이 당황스러우셨겠네요... 근데 북한식당이 이런 곳에도 있다니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없나요?? 상상도 못해봤는데 북한 사람이 당의 감시를 받으면서 외국에서도 장사를 하는건가요??
두유 원뜨 느에빨 껄스? 막 이딴 잡 영어를 지껄였더랬지요. 아 북한식당 모르시는구나 상대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 곳곳에 설치돼 있어요. 당 감시 받으면서 운영하죠. 수입은 당에 귀속되는 ㅋㅋ
와 그렇군요 ㅋㅋ 정말 신기한 지식(?) 알아갑니다.. 두유 원뜨 느에빨 껄스?? 뭔말인가했네욬ㅋㅋㅋㅋㅋ 말로 여러번 뱉어보다가 이해됐어요 ㅋㅋㅋㅌ
생각해 보니 '두'도 없었다는 막영어 ㅋㅋㅋ 유원뜨네빨껄쓰?
현지 취재를 하러 가셨기에 ..
그휴식이 달콤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으셨을거 같아요..
북한 음식이 한번 맛보고싶네요.
어서 남북이 통일이 돼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와~ 꿩으로 내는 육수는 맛이 궁금해지네요~
생생한 출장기 잘봤습니다^^
일산 호수공원 옆에 옥류담이라는 집이 있는데 꿩육수로 국물을 내지요. 호불호가 좀 있을 듯해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고생 많으셨네요ㅜㅜ
고맙습니다. 고생은 머 다 지난 일이죠.
Life is going on. 어찌됐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시호님이 썼던 돈은 또 다시 네팔의 경제 속으로 흘러들어가 생활을 돌리겠죠. 재난지역에서 술좀 먹고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러면 상인들은 뭘 먹고 사나요!
아 근데 북한 음식 먹어보고 싶네요. 나중에 네팔에 간다면 꼭!
@shiho님~ 네팔 출장기 잘 읽었습니다.
한 셔터 한 셔터에 현장을 담으시는 업이 쉽지 않으시겠지만 그 현장을 국내에서(혹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네 고맙습니다. 사진기자는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찍었죠. 사진 정리해서 내일 화보로 올려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