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 대지진 출장기]4. 생존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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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오늘은 조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얘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애초 계획보다 1~2회쯤 연재가 길어질 것 같네요. 원래 어제처럼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약간 진지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생활'이라는 주제로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들 쓰려다가 '생존'으로 제목을 바꿨습니다. 오늘 국회 일정이 바쁘네요. 미리 좀 써 두길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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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못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온 세상 개들이 동시에 짖고 있는 것 같이,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는 생각이 잠결에 어렴풋이 들었다. 술을 조금 마시고 왠지 혼자 자고 있었다.

잠결에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와 뭐라고 울부짖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기아대책 백 간사가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질렀다.

"김 기자님! 얼른 일어나세요. 여진입니다!"(정도로 기억한다)

꿈이 아닌 생시였다. 겪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여진이 드디어 왔다.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뭘 챙겨야 할지 몰라서 거의 그냥 나갔다. 휴대전화를 챙기려고 했지만 어디다 뒀는지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노트북도 없으면서 시간도 확인하고 스케치거리를 챙겼다. 2015년 5월 1일 오전 세시. 1면에 짧게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미친놈 같았다.

밖에 나와 보니 정말 카트만두의 모든 개들이 동시에 짖는 것처럼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개들의 소리는 높고 절박했다. 유난히 일찍 하루를 마감하는 마을에서 거의 모든 집들의 불을 켜졌다. 골목마다 집을 뛰쳐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아대책 관계자들은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 나와있었다. 타사 카메라 기자는 ENG 카메라만 챙겨 나왔지만 촬영을 하진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숙소나 인근 주택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 곳은 거의 카트만두 제일의 부촌으로, 대부분 건물들이 제대로된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스케치를 써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여진의 충격을 느끼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이렇게 썼다.

백 간사는 “‘쿵’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좌우 방향으로 2~3회 심하게 흔들렸다”면서 “인근 주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오는 걸 보고 대피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머물던 기아대책의 박재범 구호팀장과 일행들도 밖에 나와 있었다. 박 팀장은 “침대에서 위로 튕겨지는 듯한 진동을 느꼈다”면서 “지난달 28일에 있었던 규모 4.0의 여진보다 훨씬 강했다”고 설명했다. (3신 기사 링크)

10여분이 흐른 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기아대책 사람들도 더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려는데 슬리퍼가 발에 신어진 채 돌아가 있었다. 발바닥 부분이 복숭아뼈
쪽에 가 있었다. 이 부분은 창피해서 기사에 쓰지 못했다. 방 안의 물건은 당연히 나올 때 그대로였다. 자리에 누웠지만 개들은 밤새 카트만두가 떠나가라 짖었다. 한국 시간을 보니 캡이 깨어 있을 것 같아서 문자로 상황을 보고했다.

2015/05/01(금)
"오전3시쯤 여진. 밖에 10여분 대피하다 다시 들어왔습니다. 피해상황 확인 불가. 스케치 해놨습니다"(오전 6:30, 한국시간)

그리고 잠이 들은 것 같다.

캡은 아침 발제 시간에 전화로 보고에 대한 응답과 함께 기사 출고 지시를 전달했다. 스케치를 1면에 짧게 쓰고 안쪽면에 주말자 기획으로 르뽀와 인터뷰로 한바닥을 쓰라는 윗선의 지시다. 한바닥 출고는 전날 오후 카트만두 인근 도시 신두팔촉(다음 회에 설명)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현장 마감한 직후에 전달된 어처구니없는 지시였다. 재난 현장에서 취재원도 몇 없이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데 갑자기 르뽀를 해서 24시간 뒤에 원고지 25매 안팎 분량의 기사를 출고하라는 거였다.

르뽀라는 걸 그냥 한국에서처럼 택시 타고 가서 둘러보고 사람들 몇명한테 이야기 듣고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캡도 별 수 없었으니 전달했겠지만 당장 이날 정전이라도 되거나 인터넷이라도 끊어지면 한 면이 그대로 빵꾸 날 수 있는 문제였다. 준비할 수 있게 얼마간 날짜를 주고 취재와 작성을 미리 해 둔 뒤, 적절한 때에 출고했어야 했다. 학급신문도 그렇게는 안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도착 첫날 본 것들과 들은 얘기들, 신두팔촉에서 서둘러 카트만두로 돌아와 분위기를 꼼꼼하게 정리해 놓은 게 있었다. 인터뷰도 전날 밤 다 해놨다. 이날은 그것들을 다 엮어서 쓰는 데만도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됐을까. 진짜 정전이 일어나 인터넷이 안됐다.

"무슨이유인지 게스트하우스 인터넷이 안됩니다 문자만 가능"(오전 10:28)
"1면과 본면을 차별화해야 하는데, 1면은 어젯밤 여진 대피 스케치+속보(안에서 덧붙임) 위주로 가고. 본면 메인기사는 카트만두 시내 르뽀 위주로 가면될듯하다. 국민일보는 시내 병원 취재해 엄마와 딸 사연만 갖고 썼던데 그런 식도 좋고"(오전 10:31)
"국민 봤습니다. 어제 마을에서 사연 찾을 예정이었는데 오늘 기사때문에 못했습니다. 내일자는 불가능하고 오늘부터 찾아보겠습니다."(오전 10:33)
"그래. 쫌만더힘내자^^"(오전 10:34)
"전기가 나가서 인터넷 끊어졌습니다"(오전 11:24)

전기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마감은 다가오고 기사는 안 써져 있었다. 허둥지둥 인근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뛰어갔다. 앞서 언급했던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이었다. 거기 숙박 손님은 아니었지만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 거기 묵으며 일하고 있던 CBS 선배 방으로 쳐들어가 기사를 썼다. 당시 출입하던 경찰청에 같이 각 회사 바이스로 일하며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다.
이쪽 게스트하우스도 인터넷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못했다. CBS 선배는 "여기 인터넷 잘 된다고 KBS 놈들이 다른 숙소에 있는 동료들까지 죄다 불러서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고 했다. 나야 고작해야 사진 몇장 보내는 거지만 방송의 뉴스, 특집,
다큐 등 여러 팀들이 다 거기서 영상을 전송하면 데이터가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남의 데이터 뺏어 먹는 입장은 똑같은데. 군소리 없이 기사를 마감하기로 했다.
그런데 확실히 기자들이 모인 곳에선 정보가 빨랐다. 특히 국내에서도 맨날 단독기사를 써서 괴롭게 했던 바로 그 CBS 선배가 거기서도 골치였다. 그는 전화를 붙들고 방에 들락거리더니, 들어와서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곤 의리인지 자랑인지 모를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구조된 한국인 등반대장이 타멜 호텔에 있대. 호텔 이름이랑 호수 알아놨어. 같이 가자."

우리가 도착할 때쯤, 히말라야에 고립돼 있던 한국인 등반대원들이 우리나라 구조대의 늑장 대응으로 다른 나라 등반대보다 훨씬 오래 산에 머물러야 했다는 식의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등반대장은 CBS 선배에게 당국에 대한 온갖 불만을 털어 놓을 터였다. 그런 단독의 기회를 날리면서 나를 데려가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갈 수 없었다. 기사 때문에.

촬영팀에다 펜기자 후배까지 부사수로 데려온 선배는 이동이 자유로웠다. 이날도 후배는 신두팔촉 르뽀를 나가 있었다. 선배는 베이스캠프 격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정보를 이용, 취재를 해서 여러 건의 단독 보도를 했다. 인원을 여럿 보낸 다른 팀들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달랑 혼자 와서 그러지 못했다. 다음날자 기획부터 취재 작성 모든 과정을 다 혼자 해야 했다. 아쉬운 대목이었다.

3신 르뽀기사 링크

기사에 쓴대로 카트만두는 점점 재난을 수습해 나가는 때였다. 수도 답게 많은 인력이 투입돼 구조와 수습, 복구가 진행됐고 주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상점들도 하나둘 문을 열었다.

네팔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내가 집에 가는 때다. 하지만 아직 돌아가려면 멀었다. 카트만두는 점점 회복되고 있었지만 지진 직후 상황에서 거의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곳 신두팔촉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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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시간 있을떄 전부 다 한번씩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 하네요.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좀 급하게 썼는데 좋게 봐주셔서 ㅜ

지진 겪어보니 정말 무섭던데..기자라는 직업도 아무나하는 게 아닌 거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사실상 겪어보진 못했어요. 자느라 ㅜㅜ 그래도 무서웠죠.

글로 영화를 써주시네요.
눈에 그려집니다.

지진을 느껴 본 적이 없는데...
여진이어도 엄청났겠죠?

엄청났다고들 하더라구요 원래 큰 지진 난 뒤엔 곳곳에서 여진이 계속되기 마련이라 큰 여진 아니면 기사가 안
나오는데 저날 여진은 외신에 나왔었더라구요.

'생존'이란 단어 하나로 그때의 상황들이 아주 많이 상상이 가는 느낌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연재에도 신경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세요~
힘힘힘내세요~

와 진짜 연재 소설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게 봐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내일은 좀 더 잘 쓰겠습니다.

얼마든지 길어져도 괜찮아요!!
완결은 그것대로 아쉬울것같은걸요

네 아직 절반 못 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가슴아팠던 부분을 쓰는 날을 자꾸 미루고 싶은 마음도 좀..

보는 내내 그냥 와..... 이러고 봤습니다
힘들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직업정신..
대단한 것 같습니다

ㅋㅋ 고맙습니다. 제가 쓰면서 돌아봐도.. 당시에 좀 미쳤었던 것 같습니다.

생생한 상황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잘봤습니다~
처음인사드리네요~
약소하지만 보팅 팔로우 할께요^^
앞으로 자주 놀러올께요~^^

아 오다가다 몇 번 뵌 분이세요. 고맙습니다. 저도 팔로우 합니다.

그런데 신두팔촉이 뭔가요?

아 죄송해요 불친절했네요 제가. 신두팔촉은 카트만두 인근 산간 지역 이름입니다.

그때의 상황이 느껴지네요..
여진의 상황에서도 취재를 하러 가셨고,, 생생히 그때의 상황을 느끼고 오셔서 더 남다를거 같아요.

혼자 가면 어디 일 안 하고 숨을 데가 없어요ㅜ 담날 지면에서 바로 승패가 나오기 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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