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 대지진 출장기]3. 생활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20150502_173545.jpg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이번 연재를 하며 항상 긴장된 마음이었는데 오늘 포스팅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일 계획된 내용은 조금 편안하고 어찌 보면 재미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네팔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특별한 순서 없이 적어보려고 합니다.

네팔에서의 짧은 삶은 한국 땅을 떠나기 전 걱정했던 것만큼 절망적이진 않았다. 꽤 불편한 곳으로 여행을 간 정도로 느껴졌다. 그건 다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과 소속 선교사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숙소, 교통, 인터넷, 식사, 통역 등 어마어마한 편의를 제공받았다. 물론 기아대책은 귀국 뒤 회사에 세세한 비용까지 알뜰하게 청구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고 비용은 적절했다고 평가한다. 그쪽에서는 정당한 비용을 받고 비즈니스 마인드로 날 대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어떤 진심보다 반가웠고 고마웠다. 여행이었다면 현지의 삶을 온전히 살아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현지의 것을 찾았겠지만, 상황이 달랐다.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재난지역이었다. 가능한 편리하고 최대한 고국과 비슷한 것을 찾아도 아무도 비웃지 않을 상황이었다.

  1. 숙소
    우리는 교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의 한인 민박에서 숙박을 했다. 당시 기록을 끄집어 내 보니 카트만두 어디에서 택시를 타든 기사에게 불러주면 데려다줬던 교차로 이름이 '바인시파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한남동 정도에 해당하는 부촌이었다. 식료품 가격도 다른 동네보다 좀 비쌌던 것 같았고 외국인 선교사나 사업가 등이 살고 있는 큰 집이 많은 동네였다. 20150506_111934.jpg
    마을 안쪽에 기아대책 소속 50대 선교사 부부가 생계를 위해 민박집으로 사용하는 건물이 우리의 거처였다. 3층이나 되는 단독주택이었다. 가구나 집기는 낡았고, 침대는 스프링 튕기는 소리가 들리던 싸구려 매트리스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맨 땅바닥에서 잘 준비까지 해 온 내게 무려 침대였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방은 더 많았지만 혹시 여진이 왔는데 혼자 잠에서 깨지 못해 대피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둘이서 한 방을 썼다.


  2. 사소한 불편함들을 꼽자면, 먼저 물이 부족했던 것. 그것도 라이프보틀까지 준비해 온 나에겐 정말 사소할 뿐이었다. 양변기가 있었는데 탱크에 물이 항상 차 있지 않아서 소변을 보면 그냥 둬야 했다. 샤워는 말하자면 '고양이샤워'를 해야 했다. 2003년 육군훈련소 느낌이었다. 욕실이 각 층마다 있었는데 다른 층에서 물을 쓰면 이 층 욕실에선 물이 나오지 않았다. 샴푸따위를 쓸 여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예 한국에서 가져가지 않았고, 그래서 비누로 간만에 거품을 좀 낸 뒤 헹구려는데 물이 안 나와서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온 적이 두어 번 있었다. 기아대책에서 생수를 많이 가져가서 죽을 정도로 마실 물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3. 통신
    인터넷은 당연히 불편했다. 한국사람은 세계 어딜 가든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불편해진다. 민박집에서 회의실로 쓰는 공용식당에 와이파이가 됐다.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 이상 사용하면 너무 느려져서 쓸 수 없을 정도였고, 사용하는 사람이 동시에 여럿 있어도 끊어졌다. 카트만두의 오후 한시쯤이면 한국에선 마감시간인데 기사를 전송하다 그 더운 날씨에 노트북을 들고 다른 민박집 앞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나마 현장에서 마감을 할 때는 선교사의 무선인터넷 단말기를 빌려서 쓰기도 했다.
    휴대전화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해외 취재를 할 때 중요한 배움이 생겼다. 도착하자마자 현지 선불 유심칩을 사서 현지폰을 개통했어야 했다. 나는 토요일이 돼서야 선교사와 함께 시내에 간 김에 구입할 수 있었는데 신세계가 열렸다. 선교사나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연락하기도 편해졌고 즉석에서 생긴 네팔인 취재원들과 바로바로 연락할 수도 있었다. 무선인터넷도 매우 느리긴 했지만 가능했다. 밖에서도 카카오톡을 할 수 있게 됐다. 세상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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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음식
    음식은 좀 우습긴 한데 주로 한식을 먹었다. 오전에 일정에 나가면 점심과 저녁은 먹지 못하거나 산 꼭대기에서 미리 준비한 햇반에 고추장을 비벼 배를 채우는 일이 많았다.(사진) 그래서 선교사는 아침을 거하게 차려줬다. 아침에 제육쌈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소주는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 전에 마을로 돌아올 수 있는 날엔 인근의 한 민박 겸 식당에서 치킨, 불고기덮밥, 카레라이스 등 우리나라 식당 메뉴를 즐길 수 있었다.(이 집에 관해서는 내일 좀 더 자세히 적어 보겠다.)
    현지 밥도 먹었다. 나중에 아이템 고갈로 셰르파 겸 가이드 같은 친구를 당일 고용해 온 카트만두를 헤집고 다녔는데, 이 친구가 자기 집에 대려가서 밥을 줬다. 맛이 없었다.


  5. 술도 마셨다. 하라는 일은 하고 마셨다. 주말에 마시고 밤에 자기 전에 마셨다. 오로지 선교를 하겠다고 먼 개발도상국에 건너올 정도로 가장 신실한 기독교인들과 함께 있어서 처음엔 눈치가 좀 보였다. 그런데 어차피 독한 술은 구하지도 못해서 동네 가게에서 산 맥주로 목만 축이는 정도였고 주정하지 않았다. 맥주를 좀 시원하게 마셨더니 3일 만에 변비가 해결됐다. 아멘.

  6. 이동
    시내에서는 주로 기아대책이 렌트한 승합차를 탔다. 택시도 탔는데 이건 다음 회에 쓸 예정. 재미있는 점은 산골로 들어갈 때 차량을 대절했는데 90년 쯤에 나온 일본 4륜구동 SUV를 손봐서 운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기억에 우리 돈으로 하루 8만원 정도 되는 금액을 주면 지옥에라도 가는 사람들. 8만원이면 그 곳에선 직장인 한달 봉급 정도 된다. 산길을 오르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얕은 계곡을 지나야 하면 차를 잠시 세우고 밖에 나가서 4륜구동 모드로 전환을 하고 들어온다. 승차감이라는 게 아예 없다고 보면 되지만 그것마저 감지덕지다. 산골에 올라가다 보면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50502_121526.jpg

  7. 공기
    택시도, 우리가 탄 SUV도, 거리의 차들도 다 엄청나게 오래된 것들이다. 국내에서 차량을 생산할 수 없고 돈이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타다 버리는 차를 고쳐서 유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공기가 너무 안 좋다. 가장 불편했던 점 중 하나. 길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면 그날 저녁 콧구멍 속에서 광맥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다 죄다 흙으로 만든 건물들이 일시에 무너졌으니 먼지도 말도 못했다. 미세먼지를 거를 수 있는 마스크를 잔뜩 준비해서 갔고 기아대책에서도 준비했다. 나중에 깜빡하고 안 가지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파견된 구조단원이 준 적도 있다.
    좋은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현지 사람들이 "그거 남는 거 있냐. 나도 하나 줄 수 있냐"고 물어 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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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보다는 그나마 괜찮은 환경이었다니 다행입니다.

번호가 안맞는 것 같은데, 혹시 궁금하시면 참고하세요.
https://steemit.com/kr/@rlawls1991/5-5-13-3#@nand/re-rlawls1991-5-5-13-3-20170708t141609180z

우왓! 고맙습니다. 매크다운 이거 함 배워야겠습니다.

nice to meet you.
Please follow me @patricksanlin and upvote. Thanks

앞선 글들과 현재 글을 보면서 느끼는건 가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네요 ㅠㅠ

힘들긴 했지만 그보다 더 힘들 거라고 각오를 하고 가서 좀 나았던 것 같아요. ㅋㅋ 고맙습니다.

네팔관련 'Real' Story는 처음입니다. Thank you for sharing. @shiho

더 진실에 근접한 얘기들을 쓸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오우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되는글이네요.

근데 중간에 셀카사진과 프로필의 사진이 많이 다르십.. 아 .. 아닙니다.ㅋ

ㅋㅋ 인생사진과 팩트사진의 차이랄까요. 프로필은 휴가 중, 셀카는 출장 중. 참고로 지금은 저 셀카 사진에 더 가깝습니다.

오늘 역시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며 늦었지만 네팔대지진 다시한번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봐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오늘과 내일은 힘 좀 빼고 숨을 고르려고 합니다.

좋은 활동 다녀오셨군요. 국제사회의 관심도 이젠 많이 낮아져서 네팔현지인들이 고생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팔로우와 보팅 남기고 가요~

고맙습니다. 구호단들이 다 돌아가고 난 그해 여름에 전염병 등으로 2차 피해가 심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저도 팔로우 합니다.

세월호도 그렇고 대중의 관심이 줄고나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렇구요.
좋은 일 하셔서 정말 대단하십니다. 시호님도 좋은 일 있으실거에요 ^^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려운 상활속에 취재를 하러 가셨는데도 위트 있으시게 그 상황을 잘 넘기셨네요.

사실 가기 전에 너무 쫄아서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였던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저런 상황이 벌어질때에도 저는 편안히 생활하고있었다는걸
떠올리면 심경이 참 복잡해져요. 비단 네팔문제뿐만이아닌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있을테지요.

그런 문제에서 약간 돈을 쓰시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죠. 기부...

헤헤 소액이지만 하고있다구요! 우쭐!

소액이 더 중요해요. (저도 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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