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대지진 출장기] 0. 출발 전

in #kr7 years ago (edited)

20150502_173545.jpg
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쓰려는 이야기는 몇 년 안 되는 기자 생활 중 가장 치열했고, 어찌 보면 화려하기도 했던 순간의 회상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4월 25일 5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아직도 사망자 수조차 제대로 집계가 되지 않고 있는 네팔 대지진. 당시 특파원으로 약 10일 간 카트만두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이 때 본 것과 느낀 것들을 털어놓아 볼 생각입니다.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한 편에 많이 쓰기도, 조금 쓰기도 할 것입니다. 앞으로 스티밋에서 이 연재를 뛰어넘는 글은 못 쓸 것이라는 각오로 쓰려고 합니다. 대문 사진을 포함해, 연재에 들어간 사진은 모두 직접 찍었습니다.

캡(참고)에게서 전화가 온 건, 전날 야근으로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2015년 4월 28일 오전이었다.

"니가 가라."

"네."

"내일 오후 출국이니 준비할 게 많을 거야.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짐 싸서 내일 가기 전에 회사 들러라."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려 있던 터라, 구태여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거실로 나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짧은 순간 어머니의 눈에서는 수천 번의고민이 스쳐지나갔다. 가기로 한 그 곳은 글자 그대로 '사지(死地)'였다. 사람이 살 게 돼 있는 곳이 아니라 죽어나가고 있는 땅이었다. 어머니는 알면서, 그래도 한 번 물어봤다.

"다른 사람을 보낼 수는 없는 거지?"

"이런 현장엔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아."

이미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들은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부에서 3년을 일하고 취재로 전향한 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 탓에 다시 내근을 1년이나 했다. 천안함, 동일본대지진, 연평포격... 그리고 세월호까지 시대의 커다란 현장들이 내근을 하는 동안 그냥 지나갔다. 재난은 비극이지만 기자에게는 통곡을 하면서라도 현장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경험이고 경력이고 기회다. 기자 생활 5년 만에 처음이었고, 아마도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어서, 가지 말라고 하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없었다. 전화로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조용히 "잘 준비해라"라고 말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부장은 바이스였던 나를 보내기로 애초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전날 함께 야근을 했던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이 캡을 지낸 2005년, 비슷한 현장-파키스탄 대지진-에 당시 바이스를 보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게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자신의 의중이었다는 걸 나중에 술자리에서 얘기했다.

부장은 절대 해외 재난지역엔 여기자를 보내지 않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해당 국가의 치안 수준이 어느정도든, 그런 절망적인 재난 상황에서는 아노미에 빠진 그 나라 사람들이 약탈, 방화 등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자를 보냈다가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부장에게 큰 책임이 돌아갈 것은 분명하다.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의견엔 동의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겠다는 생각으로 동행할 구호단체를 열심히 알아본 여성 후배에겐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 녀석이 "내가 갔어야 했다"는 소리를 못하게, 아주 잘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진은 3일 전에 일어났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하룻밤 새 수천명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는 기사가 나오고, 사망자는 점점 늘어 갔다. 발빠른 언론사는 뒤도 앞도 안 보고 바로 기자를 보냈다. 많은 언론사는 타사의 눈치를 봤다. 경찰청에 앉아 있는 바이스들이 서로 "보낸대요? 언제?" 등등을 물어봤다. 우리는 늦은 편이었다.

각지에서 응원 전화가 왔다. "나 때는 말이야" 하는 회사 선배들의 경험담 속에서 굴곡진 현대사의 재난현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삼풍, 성수대교, 서해 페리호, KAL기 추락사고 등...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험담 속엔 내 코 앞에 온 출장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무용담은 나에겐 '無用'담이었다.

오히려 배낭여행으로 네팔을 다녀 온 회사 안팎 후배들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네팔은 평소에도 식수 조달에 어려움이 있기도 한 곳이었다. 거리에 개가 많은데 물리면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선크림과 모기 기피제를 두둑히 챙겨야 했다. 챙이 넓은 모자와 트래킹화도 준비했다. 주변에 캠핑 쇼핑몰을 운영하는 누나가 한 업체 사장을 소개해 줬는데 그 사장이 "좋은 기사를 많이 써 달라"면서 '라이프 보틀'이라는 어마어마한 정수능력을 보유한 비싼 물통을 무료로 줬다.

출발하는 날 바쁘게 회사에 들어갔다. 집에서 나오기 전엔 먼저 출근하는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손을 꽉 잡고 따라왔다. 회사에서 편집국장과 부장에게 인사를 했는데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공항에서 구호단체 사람들, 조선일보 펜기자, TV조선 카메라기자와 펜기자를 만나 인사했다.

Sort:  

글이 흡입력이 있습니다. 저도 2017년에 네팔 여행을 다녀왔는데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지진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다음 글 기다릴게요!

다니면서 마음이 많이 안좋았어요. 언젠가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Nice article. Thanks for the post. I am now following - Voted Up !

Thanx! I am following you too.

고생했겠구만...

검나 빡셌지 ㅋㅋ

기자분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되네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고맙습니다. 꾸준히 써볼게요!

그들의 무용담은 나에겐 '無用'담이었다.

다음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군요! 조금 더 길게 연재해주시죠!! 못참습니다..ㅎㅎ

고맙습니다! 오늘 일이 바빠서 길게 쓰질 못했네요 ㅜ

기자셨군요...

픽타고 넘어왔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좋은 글이 묻히는 경우가 많네요.

I'll wait for the next story. Do you have more? 잘 읽었습니다.^^ @shiho

감사합니다.I have more!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의 상황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체감하지 못했지만 @shiho 님의 펜 덕분에 그때 그 상황 감정 체감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비극이지만 감사합니다.

벌써 기억이 가물거리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천천히 끝까지 써 보겠습니다.

대단한 경험이네요 역시 기자란...멋지네요...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로 바꾸겠습니다. 글도 너무나 멋집니다.

예비 작가님의 과찬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네용

Coin Marketplace

STEEM 0.15
TRX 0.12
JST 0.025
BTC 55258.26
ETH 2459.89
USDT 1.00
SBD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