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대지진 출장기]2. 참상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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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어제 오늘 분에 넘치는 성원을 받아서 아침부터 어깨가 무겁네요. 취재기를 정리하면서 당시의 기억이 하나둘 살아납니다. 저에겐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많은이들의 아픔이었고, 돌이켜보면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지려 했던 가슴아픈 순간들이 많았네요. 연재는 10회 안쪽으로 마무리할 생각인데 쓰다 보면 어떻게될지 확신이 들진 않습니다. 아픈 이야기들은 가급적 여러번 쓰지 않을 생각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오늘 꺼내야 겠습니다.

17:08 기사 마감 뒤 한 번 더 읽어보며 조금 고칩니다.

첫 기사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나와 있었다. 한국이 3시간 빠르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렸을 땐 이미 '*가판(맨 아래 용어해설 참조)'이 마감된 뒤였다. 기사는 대충 연합뉴스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쉽게 말해 지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데스크가 한 것이라서, 나는 이날 종판 마감 전까지 취재한 내용을 담아 기사를 고쳐야 했다. 즉 도착 즉시 일을 시작했다는 것. 조금만 쉬고 짐도 풀고 다음날 오전까지 취재해서 다다음날 자부터 쓰고 싶었지만, 희망일 뿐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비행기가 40여분 선회한 것, 활주로에 내려서 걸어 온 일, 공항에서 본 풍경, 기아대책의 현지 직원에게 물어본 내용 등을 담아 1신 최종본을 보냈다. 시차 때문에 네팔 시간으로 오후 1시면 기사를 마감해야 했다. 마감 뒤엔 다음날 기사를 위해 바로 취재를 해야 했다. 종이신문 만들기에 썩 좋지 않은 시차였다.

기사를 보낸 뒤 다음날치 기사를 위해 '스케치'를 했다. 이 곳 상황이 어떤지 그림을 그리는 건데, 사실 이건 몇 개의 장면을 쓰면 그걸 본 독자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여하간 스케치를 위해 기아대책 관계자들과 함께 현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이날 본 것들은 다른 중요한 일정 때문에 바로 다음날 자에 쓰진 못하고 3신에 썼다.

대학 시절 인도와 네팔에 배낭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는 회사 후배는 "꼭 바그머티 강가에 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바그머티 강은 인도의 갠지스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게다가 갠지스강과 이어지는 상류에 해당된다. 네팔 사람들 자부심이 대단했을 거다. 바그머티 강을 끼고 파슈파티나트라는 힌두교 사원이 있는데 이게 네팔 최대의 성지라고 한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힌두교를 믿는 네팔 사람들은 이 곳에서 가족의 시신을 태우고 그 재를 강물에 뿌리는 것이 가장 성스러운 장례였다.

현지 직원이 그곳을 먼저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적잖이 긴장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타사에서 쓴 많은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신을 보고, 그 냄새를 맡게 될 터였다. 이미 다른 기자들이 많이 쓴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상징적인 곳에 관한 기사를 안 쓸수도 없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주변은 커다란 추모공원 같았다. 거기서 마주한 장면은 그들에겐 성스러운 의식일지 몰라도 종교가 없는 타국의 기자에겐 처참한 광경일 뿐이었다. 강가엔 매캐한 연기가 가득해 눈앞이 뿌얬다. '공원'에 들어서자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 비리기도 하고 역하기도 하고 매캐하기도 한 냄새였다. 냄새는 콧속에 오래 남아, 나는 그날 종일 킁킁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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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파슈파티나트 사원의 건너편 강가에 있었다. 폭이 좁은 강 건너편 땅 위에서는 희뿌연 연기와 시커먼 연기가 마구 솟아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서 피어오른 연기들이 만나고 섞이며 파란 하늘을 가렸다. 연기는 사원에서도 피어오르고, 사원 건물 앞에 평상 혹은 제단 같이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것(네팔 명칭 : 갓)들 위로도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원보다 조금 가까운 물가의 땅바닥에선 제일 많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 중간의 섬처럼 된 좁은 땅 위엔 한 젊은 남성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청년은 울었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승려로 보이는 사람은 염불인지 기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주변 사람들은 청년의 머리를 박박 밀었다.

이들의 앞엔 청년의 가족 시신이 불에 타고 있었다. 아니, 불에 타고 있는지 안 타고 있는지는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시신을 둘러싼 노란 천이 중간 중간 불에 타, 안에 싸고 있는 것의 형체가 드러났다. 시신을 올려놓은 땔감엔, 불이 시원치 않아 나무가 타는 둥 마는 둥 했다.

일행 바로 앞엔 얕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냄새가 심했고, 언뜻 보기에도 물이 더러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게 흐르고 있으면 강이라기보단 개천이라 불렀을 것 같았다. 물가엔 시신을 감쌌던 붉은색, 노란색 천들이 어지러이 버려져 있었다. 타다 남은 천 조각이 떠내려가다 무언가에 걸려 흔들리는 모양이 흡사 수초같았다. 개 몇 마리가 물가에 내려가 무언가를 뜯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게 뭔지는 차마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네팔의 엄격한 신분제(카스트제도) 아래에선 삶 뿐 아니라 죽음마저 평등하지 않았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안에 마련된 성대한 화장 시설은 최상류층만 이용할 수 있었다. 사원 영내에 여러 개 마련된 '갓' 위에서 가족의 시신을 태워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신분과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들은 청년처럼 강 하류 쪽 물가로 내려가 맨땅에서 가족의 시신을 태워야 했다.

시신을 감싼 천도, 화장에 쓰는 땔감도 신분과 재산에 따라 차이가 심했다. 좋은 나무로 불을 놓아 화장해야 망자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그들이라, 땔감 값도 싸고 비싼 게 있었다. 상류층은 좋은 나무를 구해다 가족의 시신을 태웠다. 하층민은 상류층이 쓰고 남은 땔감이나 타다 만 나무토막을 주워서 부모, 자식, 배우자의 시신을 태웠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땔감이 부족해, 시신을 충분히 태우지 못했다. 타다 만 시신이 그냥 강에 던져지는 일도 예사였다. 그래서 물가엔 항상 굶주린 개들이 있었다. 강 인근의 개들은 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기도, 뜨거운 땅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거리고 있기도 했다. 카트만두에서만 약 2500명이 한꺼번에 숨진 데다, 인근 도시에서도 시신을 싣고 오는 곳이라 이 가장 성스럽고 거대한 화장터는 북새통이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카트만두에서만 수천명이 숨진 터라 화장의 행렬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돈이 없어 장작을 충분히 구하지 못한 시신은 완전히 재가 되지 못한 채 강물에 던져지기도 했다. 강바닥에는 시신을 감쌌던 천이 떠내려가다 바위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물비린내와 매캐한 탄 냄새,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평소 바그마티 강 한쪽에서 잿더미를 뿌리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 게 네팔 사람들의 풍습이다. 사람들이 바그마티 강을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강’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난 25일 대재앙이 휩쓸고 간 뒤로 바그마티 강은 오롯이 거대한 화장터로 변했다.
3신 링크

일행은 사원 부근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떠나자는 현지 직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회설을 믿는 네팔 사람들은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한다. 이번 생에서 착하게 사는 것은 다음 생에 좋은 곳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외려 태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물은 흘리되 통곡하지 않았다.

나는 또 이렇게 썼다.

이방인의 눈에 생경했던 건 부모를 화장하고 전통에 따라 머리를 민 남성도, 가족 중 누굴 떠나보냈는지 모를 노인도 결코 큰 소리로 통곡하거나 절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윤회(輪廻) 사상을 믿는 네팔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갓’에서 남편을 화장한 마야 사케(34)의 눈빛에서는 슬픔과 무거운 책임감이 교차했다. 카트만두 서쪽 지역에서 벽돌을 찍어내던 남편은 25일 지진 발생 당시 입은 부상이 악화돼 숨졌다. 사케는 울었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슬픔을 속으로 삭이는 듯 했다. 사케는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한 남편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면서 “남편 대신 세 딸과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했다.

도로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매단 버스들이 지나가는 것이 자주 보였다. 지진 이후로 운임이 두배 넘게 올랐지만 그마저도 표가 없어 구하지 못했고, 표가 있다고 다 버스 안에 탈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이들은 지붕이나 차 벽에 매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화려한 색과 글씨로 장식된 비교적 큰 버스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런 버스들은 바그머티 강 하류에 있는 공터로 향했고, 그 곳에 모여 있던 인도 사람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갔다. 인도 정부 당국이 네팔에 사는 자국민의 탈출을 지원하는 거라고 기아대책 현지 직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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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차량은 시내의 러트나 파크 주변에 멈췄다. 공원은 군 연병장을 겸하는 커다란 광장을 끼고 있었다. 지진 직후에 광장은 커다란 난민촌이 됐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지원받은 천막을 치고 여기서 밤을 지샜다. 통역에 따르면 처음 하루이틀은 이곳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고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텐트가 듬성듬성 남아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였다.

한 주민은 텐트촌에 좀도둑이 기승을 부린다고 했다. 국민의 심성이 착한 이 나라에서 범죄랄 것은 절도, 소매치기 등 피해자 몰래 저지르는 것들 뿐이었다. 강도, 살인, 성폭행 등 남의 인생에 커다란 피해를 주는 범죄는 잘 저지르지 못하는 나라가 네팔이었다.


*용어 해설 : 신문사는 종이매체라는 한계 때문에 다음날 자를 전날 저녁부터 자정 넘어까지 3~5번 찍어낸다. 그걸 판이라고 하는데 명칭은 초판(가판), 재판, 종판 이런 식으로 붙이기도 하고, 숫자로 5판, 10판, 20판으로 부르기도 한다. 보통 앞쪽 판은 서울에서 먼 지역으로 배달되고 종판은 서울 사대문 안에 배달되는 식이다. 물론 판과 판 사이엔 기사가 새로 추가되거나 빠지거나 업데이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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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제가 그 현장에 잠시 다녀온 듯한 기분이네요 ㅠㅠ..

네팔의 엄격한 신분제(카스트제도) 아래에선 삶 뿐 아니라 죽음마저 평등하지 않았다.

이 문장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직접 보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을지 상상이 되지를 않습니다.

마지막에 범죄를 잘 저지르지도 못하는 나라... 라는말도 위 상황과 대입해보면 너무 가슴아프네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늘 고맙습니다. 멀지 않은 시일에 함 뵙길..

댓글을 분명 달았는데.. 안달려있네요...

저도 그래주신다면 감사하게 뛰어가겠습니다 :) ㅎㅎ

명작이될듯하네요
다음편도 기다려 집니다.
처참한현장이 눈앞에 있는것같아 저도 눈과 코를 찡그리며 읽게되네요

질문있습니다.
기자분들도 휴가란게 있나요?
해외로 휴가갔다가 큰사건 나면 복귀하나요?
많약 휴가지에서 사건이터지면 바로 취재하러가기도 하나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글을 쓰기가 참 힘들었어요. 잘 안 써지기도 했고 그러네요.

답변을 해드리자면, 당연히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휴가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취재직으로 나오고 나서 연차휴가를 전부 소진해 본 적은 없습니다. 연차 소진과 보상 문제는 회사마다 다른데 저희 회사는 매우 열악한 편입니다.
일단 해외로 휴가를 갔을 때 큰 사건이 나면, 휴가 중이 아닌 다른 훌륭한 기자들이 처리합니다. ㅋㅋ 단, 휴가 날짜를 잡아 놨는데 출발 직전에 큰 사건이 나면 고민에 빠집니다. 이것도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하지 않으면 회사가 어쩔 도리는 없습니다. 반납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기자 생활 내내 뒤를 따라다니겠죠.
휴가지에서 사건이 터진 경우도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취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그냥 막 달려간다고 취재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국내에서 많은 컨택 포인트를 잡아놓고 출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번편은 뭔가 기자님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글이 좀 툭툭 안 나가고 그런 느낌이셨을 것 같습니다. ㅜㅜ

서바이버 길티와 관찰자로서의 입장 때문에 힘드셨겠습니다.

네 그럼에도 거기 사람들은 기자가 쓰면 자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더 많이 닿는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드네요. 죽은 뒤에도 신분에 따라 나눠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 같군요
생동감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나라에도 신분만 높고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죽어서 화장하는데도 신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니 참 씁쓸하네요. 저런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시신을 바그머티 강가까지 가져가 화장하려 하는것도 음... 종교적인 신앙심이 강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 떠올리시며 계속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나 성당 주변에 묻히길 바랐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들한테는 교회나 성당 같은 존재가 강이나 개울인 것 같아요. 이후 어떤 산골 마을엘 가게 됐는데 그 산골을 흐르는 개울 가에도 '갓'이 있더라구요.

글이 깊은 관찰을 담고 계시는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네팔의 화장터 냄새가 코 끝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르캉님 블로그도 재미있습니다. 편하게 읽혔어요. 더 잘 써보겠습니다^^

멀리서 들려온 소식만으로도 안타까운마음을 금할수없던데
직접 보시고 느끼신걸 글로 옮기실때 그마음이 얼마나 먹먹하셨을런지.

제가.. 조만간 진짜 먹먹한 실화를 들려드릴게요

기자란 직업은 정말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늘 사건 사고에 파묻혀 울고 웃으며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도 하고...무엇보다 중요한 건 글을 정말 잘 쓴다는 게 큰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오늘도 밝게 웃는 하루 되세요^^

저도 정말 글 잘 쓰는 기자들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그냥 배우고 연습한대로 쓰지만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은 기사의 형식 속에서도 자기만의 냄새를 담고 있더라구요. 기사 글은 굉장히 실용적인 글쓰기라서 배우고 연습하면 되는데, 내추럴 본 롸이터들은 넘사벽이지요 ㅜㅜ

저는 @shiho님이 부럽습니다~~
멋있어요^^
즐거운 저녁 되세요^^*

네팔의 주민들도 너무 안타깝고 슬픈일이지만 기자님처럼 취재나 도움을 위해 그곳에 가신분들도 다들 마음이 너무 아팠을것 같아요. 정말 자연재난은 인간을 작아지게 만들어요.

맞습니다. 자연이 한번 꿈틀거리면 생명이 참 하찮아 지더라구요

@shiho 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일단 제 변덕대로 50MV 스파를 임대드렸습니다. 혹시라도 지인분들이 오시면 잘 챙겨주세요 ^^ 딱히 추가적인 큐레이션을 요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담없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헉. 어마어마하게 힘이 세진 줄도 모르고 눈을 뜨자마자 몇 군데에 보팅을 했네요. 아마 100프로일텐데.. @clayop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이 화들짝 깹니다. 신중하게 잘 쓰는 법을 고민하겠습니다. 원하실 때 언제든지 거두어 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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