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 대지진 출장기]5. 위기는 기회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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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원래 오늘은 신두팔촉에 처음 다녀온 얘기를 쓰려고 했었습니다. 제가 이 연재를 하게 된 이유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꼭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오늘 무거운 KR 커뮤니티의 분위기에 한 줄이나마 더 보태고 싶지 않아서, 내일 쓰려고 했던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먼저 꺼내려고 합니다. 오늘 다운보팅 당하신 뉴비분들 중 일부에게는 가장 페이아웃이 가까운 글을 내용에 따라 100% 보팅해 드렸습니다. 저와 명성도가 비슷한 분들은 적당히 보팅해드렸어요. 아직 많은 분들이 남아있습니다. 스팀파워가 80% 밑으로 떨어져서 조금 속도를 줄였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다. 이들의 생활 수준에 세계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글을 쓰기 위해 경제지표 자료를 찾아봤는데 온라인 백과사전이라는 곳에 2010년 자료가 올라와 있다. 세계 109위의 경제규모란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공무원 연봉은 100만원 수준이며, 의사도 한 달 급여가 30만원 정도라고 한다. 최빈층은 한달에 몇천원으로 한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빈부 격차도 어마어마하다. 카트만두의 부촌 땅값은 거의 서울 수준이라는 얘기도 있다.

뜬금없이 카트만두의 경제 수준을 들먹인 이유는 지금부터 이런 나라 네팔에서 떼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쓰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얄미웠으나 강도 높게 비난할 명분도 근거도 없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카트만두는 재난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재난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1. 한인민박 사장
    그 동안 몇 차례 미뤄뒀던 그 게스트하우스(민박)의 얘기를 이제 꺼내야겠다.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지라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식당 겸 민박이었다. 건물은 서울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층짜리 빌라 같았다. 1층은 식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여기가 골때렸다. 처음에 이 사장도 선교사인 줄 알고 조용히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선교사는 아니며 사업가 출신이라고 해서 넣어뒀다.
    좋게 말하면 사장의 사업 수완이 좋은 거였다. 식당 메뉴는 제육덮밥, 잡채밥, 오믈렛, 김치볶음밥, 카레라이스 등 한국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김치도 있고 단무지도 있고 한국 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무려 치킨도 있었다. 더 우스웠던 것은 스무살도 안 된 현지인 소년이 치킨을 튀겼는데 사장한테 배웠단다. 근데 그 치킨 맛이 한국의 양념 치킨 맛 그대로였다.
    한국 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고 말했는데 그건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메뉴 하나 당 7000원~12000원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음식 퀄리티에 비하면 한국보다 조금 비싸게 느껴질 정도다. 네팔에서 한 끼에 만원짜리 식당이 몇 군데나 있을까. 고기나 채소 등 음식재료가 네팔 현지산이니, 값도 현지 수준일 테다. 알바를 하는 아이들 전부 어린 애들이었다. 현지 수준보다 조금 주고 부릴 게 뻔했다. 인근에 있는 네팔 식당은 한끼에 2000~3000원 꼴인데 이것도 그 동네가 부촌이라서 비싼 편이었다. 그러니까 이 집은 더럽게 비싼 거다.
    그런데 장사가 솔찮이 잘 됐다. 한인 민박집이니 평소 손님들도 대부분 한국인일 것이다. 가격도 대강 한국이랑 비슷하게 받으니 네팔 여행 초보라면 그냥 거부감 없이 내려와서 편하게 사먹기 쉽다. 인근에 사는 선교사 등 한인들도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많이들 왔다.
    특히 이 곳은 재난 당시 한국에서 온 취재진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일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와이파이를 제공했으니 이 점은 고마운 부분일 수 있다. 식당에서 각 언론사 기자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밥 한그릇씩 시켜 놓고 회사 로고가 찍힌 노트북을 편 채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내내 펼쳐졌다. 외곽으로 나갔던 차량들도 이 앞으로 복귀했다. 사장은 어느날 인터넷 회선을 하나 더 구매했다. 잡을 수 있는 와이파이가 하나 늘어났으니 구매한 게 맞을 거다. 고국 취재진의 베이스캠프가 된 막중한 책임감으로 추가 비용을 투입한 건지, 아니면 중간에 KBS 다큐팀 등이 떼로 몰려와서 저마다 영상을 전송하는 통에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안 터진다는 기존 손님들의 컴플레인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튼 여기 사장이 내가 본 사람 중 대지진의 최대 수혜자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밥, 술을 얼마나 먹어댔을까. 내가 이 식당에 음식 값으로 낸 돈만 해도 10만원은 훌쩍 넘을 거다. 거기서 맥주도 마셨고 후배 기자들 밥도 사줬고 최소 열끼는 먹었으니. 네팔 사람에게 10만원을 주면 무슨 짓이든 할 거다. 전에도 말했지만 몇 만원만 주면 지옥에라도 데려다 줄 SUV기사들도 있다.

  2. 택시기사
    제목은 택시기사지만 '차를 가진 사람들'이 네팔에선 다 돈을 번다고 볼 수 있다. 차가 귀하기 때문이다. 네팔도 그렇고 베트남도 그렇다는데 자국에서 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차를 살 때 엄청 높은 세금이 매겨져, 나라에 따라 세금이 차값보다 비싸기도 하다. 세금이 어마무시하다 보니 차값을 낮추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고물차를 손질해서 유통한다.
    특히 택시기사는 카트만두에서 연봉이 최고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셰르파(이놈도 밑에 쓸 것)에게
    물어보니 하루에 30만원을 벌 때도 있다고 한다.
    택시라고 해봐야 옛날 우리나라 '포니2' 같은 차(실제 포니2도 있음)로, 승차감을 논하기에 앞서 차 문짝과 유리창이 제대로 열리고 닫히는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기사들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우리나라 일부 기사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소위 '눈탱이'를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카트만두의 타멜이라는 지역에 가면 택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형태의 차들이 다 택시 역할을 하려고 창문을 열고 가격을 흥정한다.
    이 사람들은 목적지를 어디로 부르던 500루피를 달라고 했다. 당시 환율을 정확히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그 돈은 대강 6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거리를 500루피에 가면 한국 택시비와 비슷한 돈이다. 말도 안되는 돈이다.
    나는 미리 배운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200루피를 불렀다. 그랬더니 이자식이 "500루피 이하면 안 간다"는 것이다. "그럼 나도 안 탄다"며 다른 기사한테 가는 척을 해 봤는데 붙잡지도 않았다. 다른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타멜 에서는 기사들이 다같이 입을 맞춘 것 같았다.
    결국 일행은 택시가 아닌 승합차를 400루피에 타고 갔다. 근데 이놈들이 목적지에서 갑자기 "혹시 여자 만나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얼마였는진 기억 안 나지만 얼마면 해 달라는 것 다 해준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노땡큐"라며 차에서 내렸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3. 셰르파
    네팔 젊은 청년 중 많은 사람들이 트래킹 코스나 히말라야의 산길을 안내하는 셰르파일을 주업이나 부업으로 하고 있다. 왜냐? 돈이 되니까. 내가 만난 셰르파는 템바라는 이름의 20대 남성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매우 잘했다. 앞서 네팔에 다녀간 국민일보 선배가 연락처를 넘기고 가서, 하루는 통역과 가이드로 요긴하게 썼다. 나도 요긴했만 그도 매우 짭짤했을 거다. 템바와 하루종일 돌아다닌 얘기는 연재의 후반에 따로 쓸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템바와 함께 택시를 대절해 약 5시간 카트만두를 돌아다닌 뒤 택시기사와 나눠 가지라고 7000루피를 줬다. 우리 돈으로 약 7만 4000원 정도 되는 돈이다. 그는 물론 "조금만 주셔도 돼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앞서 돌아다니면서 "택시를 대절하면 기사에게 3000루피 쯤 줘야 된다"는 등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택시에서 내려 그날 취재현장이었던 병원에서 한 여성 환자를 만났는데 그의 동생이 공장에 다니는데 월급이 7000루피라고 했다. 그의 가족 3명은 그 돈으로 먹고살던 중에 지진을 겪었다. 나는 한 사람의 월급 정도 되는 돈을 5시간 만에 두 사람에게 준 것이었다. 찝찝하고 다음에 오는 한국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 같은 죄책감도 약간 들었지만 이미 시세가 그렇게 올라가 있었던 걸 어쩌겠느냐고 생각하고 말았다.


0. 출발전
1. 출발-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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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활
4.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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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이 적어 100% 풀보팅으로 바꿨는데도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아쉽네요

제 마음에 아주 큰 영향이 있으니 너무 아쉬워 마셔요^^. 보팅해 주시는 분들이 엄청 많아서 액수는 신경쓰이질 않네요. 다 콘님 덕분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저도 인도네시아 갔을 때그렇게 느꼈습니다. 참 이래도 그렇고 저래도그렇고.. 어딜가나 악덕은 있군요 역시 잘봤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ㅋㅋ 악덕인데 그걸 또 어떻게 할 수 없는..

세계 어딜가든 여행자 바가지는 안타까울 수준이지요. 그래도 바가지 안씌우는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 가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돈을 못버는 안타까운 상황이....

맞습니다... 내일은 네팔 사람들의 좋은 면을 주로 보여드릴 예정이예요.

어디든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 있군요.

네 똑똑한 사람들이죠 얄밉도록...

욕 할 수는 없지만 안타깝기도 하네요.
저희도 비슷한 모습으로 선진국 방문자들에게 비추어진 적도 있겠죠?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우리나라도 뭐 할말은 없죠.. 경찰에 있을 때 택시가 김포공항에서 여의도까지였나... 중국인 태워다 주고 10만원 넘게 받았다는 자료를 봤던 기억이..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재밌긴 한데.. 좀 씁쓸해지는 글이네요. 어디든 다 마찬가지겠죠?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수완좋은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받는건..

그렇지요. 그것이 자본주의...

재해현장과 일상의 부조리가 만나니 조용한 지옥도가 그려지는군요.

'조용한 지옥도'... 엄청난 표현입니다.

제가 갔었을 당시 셰르파는 1일에 15$ = 1500루피정도였고 택시를 2시간 가량 타고 간 거리를 2000루피를 줬었는데 상당히 많이 주셨었네요. 그런곳에 가서 힘들게 일하는 셰르파들에게는 좀 넉넉히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한데 그렇게 하면 다음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걱정되네요 ㅠ_ㅠ
트리부반 공항에서 타멜가는 택시들도 다 담합했는지 600 루피 아니면 가주질 않더군요. 이건 좀 짜증났었습니다. 거리를 뻔히 아는데... 10분이면 갈 거리를

제가 있던 곳에서 타멜까지도 10분이 채 안걸리는 거리였어요 ㅋㅋㅋ 그리고 템바는 저랑 같이 택시 타고 시내만 돌아다녔으니 트래킹이나 등반에 동행하는 셰르파와는 노동 강도가 완전 달랐는데도 ㅋㅋㅋ

오늘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특히 한인민박사장님 부분은 제 인도 여행에서 만난 분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 덕분에 추억소환도 했네요 :D (시호님 제가 실은 어제 기자님 대문을 그렸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https://steemit.com/art/@leesol/shiho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잘 쓸게요. 사실 이 연재가 끝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쓸 텐데 어떤 대문이 나올까 궁금했었거든요. 리솔님은 천재이신가 봐요.

제가 다른건 몰라도 잔머리가 좀 특화되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너무너무 마음에 드신다니 감사합니다 ^^

어느 나라를 가나 외국인은 바가지의 대상이 돠는 것 같네요.
가난한 나라든 잘사는 나라든...

맞습니다. 알면서도 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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