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네팔 대지진 출장기]9. 한-네 친선병원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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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네팔 포스팅 혹시 기다리셨나요? 이틀 간 다른 걸 올렸는데. 어짜리아 집안의 이야기를 쓰고 나니 긴장이 좀 풀린 것 같습니다. 아직 연재는 많이 남았는데 말이죠.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어짜리아 이야기가 당시 출장의 '필살기'라고 생각을 했고 그걸 쓰고난 뒤 맥이 탁 풀렸었죠. 그리고 찾아온 아이템 기근과 그 와중에 쥐어짜서 발굴해 낸 것들. 이게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어짜리아 집안의 기사를 쓰고 나서 아이템이 떨어졌다. 재난 상황은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복구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엄청난 재난에 혼비백산했던 정신을 추스른 시민들은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네팔 공무원과 서툰 영어로 인터뷰를 해서 하루치 기사를 막은 뒤 정말 아이템이 똑 떨어졌다.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는 한국 구조단을 따라다녀 볼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구조단은 현지에 봉사 온 국립의료원 의료진이 짐을 푼 한국-네팔 친선병원에서 매일 메디컬 체크를 하고 일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 친선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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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체크를 받은 구조단은 간단히 조례를 한 뒤 차를 타고 떠났는데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왜냐면 거기에 취재진이 너무 많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숙소에서 나온 일간지 후배도 따라갔고 KBS 다큐3일 팀도 붙었다. 기본적으로 남들 다 가는 곳에 가서 써 봐야, 우리 같은 중소일간지 기사는 묻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귀국해서 다큐3일을 봤는데 구조단이 붕괴 직전의 건물에서 시신을 발굴해 엄숙하게 이송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일간지 후배도 이 장면을 스케치로 썼다. 그 메이저 일간지는 후배는 출국 전까지 스케치만 죽어라 하고, 인근 중국 특파원이 (네팔엔 들어오지도 않고) 해설과 분석 같은 기사를 쓰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혼자 다 해야 했다. 무튼, 따라 나서지 않겠다고 했더니 구조단원 하나가 마스크 왜 안 쓰고 있냐며 검나 성능 좋은 마스크를 주고 갔다.

구조단을 배웅한 뒤 나는 이틀 전 귀국한 타사 선배가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셰르파 템바의 번호였다.('5. 위기는 기회'편 참조) 정말 아이템이 없을 땐 일단 여기저기 다녀보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말이 통하는 사람과 편한 교통편이 있어야 했다. 템바는 나한테 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네팔 사람들 실제 사는 모습을 볼 기회이기도 해서 그냥 갔다. 택시비를 흥정해서 30분 쯤 달려서 템바의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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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놈이 밥을 주는 거다. 그것도 완전 네팔 밥이다. 찰기 없는 쌀밥에 절인 것 같은 곡물, '커리 비슷한 커리(커리라고 했으나 맛은 커리가 아니었다.)'를 담아 줬다. 다행히 맨손으로 먹진 않았다. 불편해서 다 먹진 못했다. 직전에 적은 물로 그릇들을 씻는 걸 봐서였는지 맛도 별로였다. 그래도 고마웠다.(마지막에 헤어질 때 돈을 팍팍 준 데는 이것도 영향을 미쳤다.)

템바가 아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를 전세 냈다. 너무 맨땅에 헤딩이긴 했는데 네팔에 들어가기 전 후배들한테 들은 얘기에 나왔던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대대로 네팔 전통 현악기를 만드는 집안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지진 뒤 행방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별 소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CBS 선배처럼 영사관 부실 대응을 지속적으로 조지는 게 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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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쿠마리(사전)'의 행방이 궁금했다. 사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받는 소녀는 카트만두 쿠마리 궁(사진)에서 초경 때까지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지진으로 궁이 작살나는 판에도 거기 있진 않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이것도 당연히 취재가 안 됐다. 애꿎은 쿠마리 궁 사진만 찍고 카트만두 시내를 뱅뱅 돌아다녀야 했다.

교통이 혼잡해서 많이 다니지도 못하고 길에서 시간만 버렸다. 차가 많다는 것은 카트만두가 점점 정상화 돼 가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였다. 나는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머리에 스친 생각이 '왜 의료봉사단은 스케치를 안하지?'였다. 템바에게 얘기해서 친선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템바에게 우리 돈으로 10만원 가까이 쥐여줬다. 템바는 땡잡았다.

병원에 돌아가서 의료진들에게 말을 붙였다. 이들 팀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였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주로 많이 왔고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소속 응급의학과·정형외과·감염내과 전문의 5명과 간호사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사실 아침엔 사람이 없어서 얘기가 안될 것 같아 그냥 나왔는데, 오후 4시쯤 돌아와보니 엄청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원들이 통역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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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딱한 사연도 나왔다. 남동생의 월급 7000루피(약 7만 3900원)로 5명의 가족이 먹고살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60세 어머니와 29세 딸이 부상을 당했고 돈이 없어 딸이 수술을 받지 못하던 차에 KDRT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된 것. 나는 이렇게 썼다.

네팔에서는 병원도 개인약사에게 약품과 주사기 등 의료용품을 사서 수술 및 치료를 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응급처치 외에 복잡한 수술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진 직후 정부는 피해자 치료비 지원을 약속했지만, 카트만두의 대부분 병원에서는 정부 약속을 믿지 못해 생명이 걸린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수술을 미뤘다.
라제소리 가족은 어머니와 여동생 등 5명인데 온 가족이 공장에 다니는 남동생 라젠드라(25)의 월급 7000루피(약 7만 3900원)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최소 1만 5000루피 이상이 필요한 인대접합수술은 언감생심. 때문에 라제소리는 진통제로 열흘을 버텼다. 진통제 값 2000루피마저 버거웠다. 하지만 지난 1일 한국·네팔 친선병원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의료진이 도착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김동준 정형외과 전문의 등 KDRT 의료진은 라제소리의 끊어진 인대를 제대로 맞춰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5일 오전 회복실에서 만난 라제소리는 그간의 고통에 지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동생 라젠드라는 “병원에 수수료 명목으로 내는 돈 300루피 외에 모든 비용을 한국 의료진이 부담해준 덕에 수술을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기사 보기

네팔은 병원에서 진단을 해주면 진단서를 들고 약사에게 가서 주사기 등 의료 용구를 사서 다시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던 걸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정부 하는 일에 별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살던 때였는데 거기서만큼은 '국뽕'을 듬뿍 받았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 거기까지 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렇게도 썼다.

지난 1일 의료팀이 도착한 뒤 하루 평균 100여명이 외래진료를 받았다. 골절상을 입었지만 신속하게 치료받지 못해 뼈가 어긋난 채 조직 재생이 이뤄져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았다. 한국의료진은 이미 10여건의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했다. 박 팀장은 “KDRT가 해외 재난현장에서 수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외긴급구호대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설명했다.

정말 긴 하루였다. 간신히 기사 한 꼭지 쓸 거리를 챙기고 터덜터덜 복귀했다. (사실은 선교사님이 차로 데리러 왔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네팔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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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
예전에 시타를 위하여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26904&page=2 라는 웹툰에서 본 적이 있어요.
웹툰으로 본거라 약간의 변형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예전부터 내려오던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선으로는 아동학대죠.

오 함 봐야겠네요 ㅋㅋ 발제 끝나고.. 완전 아동학대죠.

Thanks for sharing :).

의료와 교육 참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나라일 수록 한국도 방향성은 지금은 퇴색됬지만 교육열이 국가를 이정도로 끌어올렸지않나싶습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해 죄송합니다..ㅎㅎ

맞아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업무 등으로 해외에 장기체류를 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사항이죠. 그 둘만 해결되면 상관없다고들.

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shiho님의 글...
넘 생동감 넘치고 따뜻한 감동을 주셔서
읽을 때마다 설레이게 되네요~~
항상 부러운 글솜씨 멋져용^^*

오늘은 정말 너무 못 썼어요. 국회일도 너무 많았고 지쳤어요 ㅜ(사실 지금도 국회) 월요일자는 좀 잘 쓸게요 ㅜㅜ

넘 하시네요;;; 잘 쓰시면서 저같은 뉴비는
어떻게 쓰라구ㅠ흑...

저날 글은 너무 꾸역꾸역 썼어요. 마음에 안 들었어요 ㅜㅜ 죄송

ㅋㅋ꾸역꾸역 쓰신 글이 그 정도시군요;;;
부럽 부럽~~~~
남은 주말도 행복하세용^^*

생생한 출장기 잘봤습니다~:)

다음엔 정말 생생하게 쓰겠습니다...

마지막은 정말 감동적이네요.
이런 선행은 봐도봐도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막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ㅋㅋ

테파는 정말 땡잡았군요! 그나저나 기자님 뿐만 아니라 힘든 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은일을 많이 하는군요. 대단합니다.

ㅋㅋㅋ 템바는 아마 네팔에서 부자일 거예요 아닌 척 해도 ㅋㅋ

고생하신 신호님을 위해 이런 글은 풀보팅 ^^
그나저나 깜짝놀라서 친구에게 전화를 다 했네요

"너 네팔 갔었어? "
"뭔 소리야?"
"정형외과 김동준있던데!"
"나 외래보기도 힘들다"
"어! 역시 그랬군 자라~"
"아~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 신경쓰지 말고~"

친구녀석이 아니었어요 ㅠㅠ
하긴 개원한 녀석이 여길 갔을리가 만무죠.
짜식 좋은일좀 하지.
신호님 포스팅 보내줘야겠어요 너랑 똑같은 이름으로
좋은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고 말이죠.

우왓 고맙습니다. 갑자기 보상이 쭉 올라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동명에 같은 전공까지! 혹시나 하실만 하네요.

마지막 문단에서 피곤에 찌든 채 안도하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오늘도 한개는 건졌구나...

ㅋㅋㅋ 집에 가고 싶다.. 엄마 보고싶다 이런것도요 ㅜㅜ

아 치료받을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휴!

수술을 안 해도 될 부상인데 그냥 방치돼서 수술이 꼭 필요하게 된 경우도 많았어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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