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창공

in #kr6 years ago (edited)

Seoul, Apr. 2018, Nexus 5x


서울로 돌아왔다.

미세먼지가 약간은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올려다본 하늘에 에어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위에서 굉음이 들려 바라보니, 전투기들이 나란히 날며 구름을 수놓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업에서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상의 하늘에서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았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카페에서 상당히 괜찮은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아직 오늘 하루가 꽤 남아있는 상태이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잠이 들 때 까지 즐거운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생각보다 하늘을 올려다 볼일이 별로 없다. 조금 어릴 적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참 즐거웠는데, 하늘을 보려면 그냥 앞으로 바라보거나 아예 보지 않는 일이 잦다. 땅을 내려다보는 일도 종종 있다. 언제부턴가 하늘보다 땅을 바라보게 되면서, 현실, 내가 땅을 딛고 있는 현실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가 앞에 서있는 장애물을 보지 못하거나, 땅의 사물들에 걸려 넘어지면 큰 일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하늘이 청명한 날을 보기 힘들어지면서, 애초에 투명하고 깊은 파란색의 하늘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접게된 일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상(理想)이 높고 크다고 해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이상이라도 그러한 이상이 결국 현실과 마주했을 때 오롯이 유지되며 깨어지지 않는 것이 비범한 것이라고. 그러니 좋은 그릇은 그 그릇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의 단단함과 탄력성으로 결정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횟수가 아무래도 줄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아예 보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늘을 마주하고 사는 조종사의 삶이란 어떨지 상상해본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삶이 아니라 하늘과 수평인 상태에서 마주하는 삶. 그들은 우주를 올려다보면서 눈 앞의 하늘을 바라보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땅을 내려다보며 중력의 감각을 즐기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마주하는 가속도의 크기는 종종 중력으로 인한 가속의 몇 배이며, 까딱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향 실수만으로도, 빠른 속도로 인해 서로 간에 충돌이 벌어져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니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조종사가 바라보는 하늘의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올려다보는 하늘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으로서의 하늘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사실 이러한 에어쇼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우리가 편안히 보고 즐기면서 일종의 경외감이나 쾌감을 느끼는 것이, 조종사들이 겪을 수 있는 위험하고 아찔한 상황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지는 언제나 의문이 든다. 물론 에어쇼도, 결국 그들의 노동의 한 부분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기예를 보여주는 것을 즐길 수 있을테니,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의 (시각적) 자극을 위해, 그들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 같은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에어쇼를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좋겠지만, 애초에 에어쇼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시각적 매체가 발달하면서, 우리의 눈은 높아졌고 자극에 익숙해졌으며, 일상을 바라볼 때에도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었지만, 타인을 무리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굳이 타인의 고통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노동의 결과물을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이 떠올랐다. 우리의 안락함을 위해, 타인의 노고를 어디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겉보기에 자발적으로 보이는 비자발적인 삶의 맥락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우리는 종종 어떠한 업을 영위하는 사람에 대해, 그 것은 당신의 업이니 당신이 선택한 것이고 따라서 당신이 더이상 불평하거나 벗어날 여지는 없다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 그 업을 '자발적으로' 자유로이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선택지 중에서 솎아내기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인지는, 그 맥락을 모른다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날이 갑자기 더워졌으나,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좋은 오후였다. 우연하지 않게 찾아온 파란 하늘과 에어쇼는 멋이 있었고, 나는 왜인지 조금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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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인지 조금 미안해졌다

'염치'라는 말이 원래 뜻이 참 좋더라구요.
이 문장에서 그 단어가 생각났어요.

염치라는 단어가 어쩌면 적절한 거리에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담은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각자의 선택이 존재하고, 그 선택에 대한 맥락을 모두 알수는 없겠지만,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 다른 사람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일들은 굳이 바라지 않는 편이 좀 더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어쇼를 하다가 사고가 나는 일이 왕왕 생기죠. 말씀대로 “타인의 노동의 결과물을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이 드는 대목입니다. 저는 에어쇼로 생긴 비행운보다 둘 다 인위인 것은 매일반이나 여객기가 수놓은 비행운이 좋더라고요.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울림이 있네요. 이상을 가지기는 쉬우나 그것을 보전하기란 참 어렵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에어쇼로 인한 사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철렁할 때가 있습니다.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노동 - 목숨을 담보로 하는 노동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저도 차라리 여객기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 작은 꿈이라고 하더라도, 그 꿈의 지속성이 단단하다면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가진 꿈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는 것이 항상 올바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닿아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사진이 정말 멋진데요. 전투기들이 전선에 걸려 있네요. 저는 에어쇼를 본 적이 없어서 글의 생각을 동물원에 대입해 봤어요. 동물(보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동물원에 종종 가는데, 갈 때마다 우리 안의 동물들이 정말 안됐고 인간이 참 이기적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동물원이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또 기린이나 곰, 호랑이 같은 동물이 보고싶어져요. 이기적이고 미안한 마음이네요.

사진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시야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더라고요. 정말로 우연히 담게 되었습니다.

동물이 가지고 있는 권리도 실천 윤리학을 통해 인간의 입장에서 고려해주고자 하는 측면이 있지요. 동물이 자신의 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동물원은 특히나 참 미묘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선의 자극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실 인간은 참 비정하거나 잔인하기도 해왔던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의 Human Zoo만 살펴보아도, 자신과 달라보이는 (실제로는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존재들에 대한 전시를 늘어놓고 감상하곤 했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시선의 위험성을 자각하는 것과 자각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동물보다 인간의 권리가 좀 더 앞서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과 마주했을 때에도 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상.. 참 좋은 말인데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이상인데 조종사들은 그 하늘이 현실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에어쇼를 하던 조종사가 죽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에어쇼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아보이는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마주한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단단하고 강한 이상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어쇼를 진행할 때 의외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큰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에어쇼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정말로 한 때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무리를 요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기꺼이 그러한 것을 감수한다고 하더라고요.

에어쇼가 펼쳐진 하늘에서 이어지는 사유가 흥미로웠네요.
우리 일상의 즐거움 안에 타인의 자발적이고 또 비자발적인 노고가
얼마나 있는가, 돌이켜보면 그리 골돌해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노고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노고를 행하는 사람의 삶이 노고에 비해 과도한 부담과 위험을 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특히나 그러한 노고가 자발적이라고 믿는 사람의 삶이, 사실은 자발적이지 않았음을, 이미 수많은 가능성들이 배제되었을 상태에서의 자발적인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조종사들의 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지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잘 닿아서 다행입니다.

이상을 높이 유지하는 것보다 작은 이상이라도 그것을 지켜내는 단단함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네요. 작은 이상이라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듯해요.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다 보면. 무언가 또 기분 좋은 일이 생기는 토욜 저녁 되시길요 ㅎ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요. 타협과 순응, 비타협과 비순응 사이에서 언제나 고민합니다. 이상을 현실에 맞추기도 하고, 현실을 이상에 맞추어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삶을 추동하는 것은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의 진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slowdive14 님께서도 좋은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주말 보내시길 빌어봅니다. :)

멋지더군요갑자기굉음이들렸지만요^^

저도 하늘과 땅이 울려서 처음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분명히 멋진 일이기는 합니다. 시선을 잡아끌만큼요.

동물의왕국을 즐겨보는데요. 아무리 극한상황에서도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면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는데요. 조종사도, 높은 고도에서 뛰어 내리는 스카이다이버도 그들 나름의 삶의방식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들의 삶의 방식에, 제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편안히 즐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 관점에서의 해석이겠지요.

단순하게, 쾌감을 느껴주는 것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경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두워지는 하늘이 아쉬운 (하지만 비는 반가울 듯) 일요일 오후입니다. 남은 주말 편안하시길 :)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노고의 의도를 헤아려, 그대로 따라주는 것도 경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어렵습니다.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의 맥락에 대한 구분이 어렵듯이, 제가 택해야할 태도에 대해서도 항상 고민하곤 합니다.

기분이 차분해지는 날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선 감사합니다. 그리고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대를 넘는 순간에 감정이 픽픽 제어하지 못하게 새어나오는 것 같아요ㅎㅎ
가식적으로 감정을 꺼내어야 하는 순간들의 안타까움과 대비되서 일까요, 저는 조절할 수 없는 눈옆의 안면근육들도 절로 움직이는 그 순간들이 참 좋더랍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늘도 큐레이팅 슥-
사진예술 잘 보고갑니다 :D

진실로 감정이 경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레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기대를 즐겁게 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근육의 쓰임새란, 결국 세계에 대한 드러냄이 아닐까 합니다.

주말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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