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기계와 지능 by 앨런 튜링 (번역 연재 12회)

in #kr7 years ago (edited)

오늘은 까다로운 문장이 두 개나 있어서 종일 헤맸습니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강우성 교수의 도움으로 겨우 해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직도 뉴비 @armdown 철학자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계산 기계와 지능 by 앨런 튜링' 연재의 12회입니다. 논문 전체의 3/4를 훨씬 넘었습니다. 이제 2회 남았습니다. 호응이 적더라도 그냥 갑니다!

이번 6절은 아주 깁니다. 6절에는 총 9개의 예상 반박과 그에 대한 튜링의 재반론이 전개됩니다. 논문 전체 분량의 2/5정도나 됩니다. 다 읽고 나면, 이후 논의된 내용들 모두가 튜링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6절은 5번에 나누어 포스팅하겠습니다. 6절의 다섯 번째 포스팅입니다.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11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인공지능의 논리적, 수학적 개념이 처음 제시된 것은 앨런 튜링의 1950년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논문은 아직 한국어로 된 쓸 만한 번역이 없습니다. 제가 번역을 시작한 배경에 대해서는 연재의 첫 포스팅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분량이 길지는 않지만, 한꺼번에 올리는 것은 번역자나 독자나 모두 부담되는 일일 것 같아서, 나누어 순차적으로 포스팅합니다. 원문이 28쪽 정도 되는데, 한 번에 두세 쪽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주제들을 포스팅하는 것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작업입니다.

처음에는 쪼개서 올리지만, 연재가 끝나고 나면 주석을 붙여 하나의 포스팅에 정리할 생각입니다. 연재 중에 오류, 제안, 의견, 질문 등을 댓글로 자유롭게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리스팀, 보팅, 팔로는 저에게 힘이 됩니다.)


계산 기계와 지능 (번역 연재 12회)

앨런 튜링

6. 주요 물음에 대한 반대 견해들 (5/5)



(8) 행동의 비정형성Informality에 바탕을 둔 논증.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한 인간이 무엇을 해야만 할지를 기술한다는 취지를 담은 규칙 집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가령 빨간 신호등을 보면 멈추고 녹색 신호등을 보면 가라는 규칙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만일 어떤 결점 때문에 두 등이 함께 켜지면 어쩔 텐가? 아마 멈추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결정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중에 이 결정에서부터 충분히 다른 난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교통 신호에서 생겨나는 일을 포함해, 만일의 사태를 모두 아우르는 행위 규칙을 마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동의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기계일 수 없다는 논증이 나온다. 나는 그 논증을 재생하려 할 테지만, 실제 논증을 잘 반영하지 못할까 우려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규제하기regulate 위해 이용하는 행위 규칙의 명확한 집합이 있다면, 그는 기계보다 나을 게 없으리라. 하지만 그런 규칙은 없고, 따라서 인간은 기계일 수 없다.’ 삼단논법 추론의 오류undistributed middle가 확연하다. 논증이 정확히 이와 같이 제시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논증이 사용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위 규칙rules of conduct’과 ‘행동 법칙laws of behaviour’ 간에 어떤 혼동이 있어서 핵심 논점을 흐리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행위 규칙’은 ‘빨간 불을 보면 멈춰라’ 같은 지침을 뜻하는데, 우리는 이것에 따라 행하고 이것을 의식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행동 법칙’은 ‘네가 그를 꼬집으면, 그는 소리 지를 것이다’ 같은 인간의 몸에 적용되는 자연 법칙을 의미한다. 우리가 인용된 논증에서 ‘자신의 삶을 규제하기 위해 이용하는 행위 규칙’을 대신해서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행동 법칙’이라고 하면, 삼단논법 추론의 오류는 더 이상 극복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믿기에는, 행동 규칙에 의해 규제된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계임(비록 꼭 이산 상태 기계는 아닐지라도)을 함축한다는 것이 참일 뿐 아니라, 또한 역으로 그런 기계라는 것은 자연 법칙에 의해 규제된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행동 법칙이 없다는 것을 완벽한 행위 규칙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쉽게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한 그런 법칙을 찾는 유일한 길은 과학적 관찰이다. ‘우리는 충분히 찾아봤다. 그런 법칙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상황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런 진술 어떤 것도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더 강하게 증명할 수 있다. 만일 행동 법칙이 존재한다면, 분명 우리는 그걸 찾아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산 상태 기계가 있다면, 관찰을 통해 그 기계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그 기계에 대해 충분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확실히 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합당한 시간 안에, 가령 천 년 안에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맨체스터 컴퓨터에 16자릿수 숫자를 공급 받은 기계가 2초 이내에 다른 16자릿수 숫자로 답변을 내는 작은 프로그램을 1000개 유닛의 저장소만 써서 설치한 적이 있다. 나는 누군가가 이 답변으로부터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한 것을 알아내서 아직 시도된 적이 없는 값에 대한 답변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련다.

(9) 초능력Extra-Sensory Perception에 바탕을 둔 논증. 추측컨대 독자는 초능력이라는 개념 및 그 4개 항목인 텔레파시, 투시, 예지, 염력의 의미에 친숙할 것이다. 이 난처한 현상은 우리의 모든 통상적인 과학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깎아내리고 싶어 미치겠다! 불행히도, 최소한 텔레파시에 대해서는, 통계적 증거가 차고 넘친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에 맞게 우리 사고를 재배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단 이 현상을 받아들이면, 몇 걸음만 더 가면 유령과 악령을 믿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몸은 알려진 물리학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과 다소 유사한 다른 법칙에 따라서도 움직인다는 생각을 그 길에서 제일 먼저 거쳐 가게 되리라.

내 생각에 이 논증은 꽤 강하다. 많은 과학 이론이 초능력과 충돌하긴 해도 여전히 실천에 있어 작동하는 것 같다는 응답이 있을 수 있다. 초능력을 잊어버리면 사실상 아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별 도움이 못 되는 위안이다. 생각이란 것이 초능력과 특별하게 관련된 그런 종류의 현상이 아닐까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에 근거한 더 구체적인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리라. ‘흉내 게임을 하는데, 증인으로는 한 쪽에 텔레파시 수신 능력이 있는 인간과 다른 쪽에 디지털 컴퓨터를 놓자. 심문자는 ‘내 오른손에 있는 카드는 하트, 클럽,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중 어떤 무늬suit에 속할까?’ 같은 물음을 할 수 있다. 인간 증인은 텔레파시나 투시를 통해 400장의 카드에서 130번 정답을 낸다. 기계는 무작위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고, 아마도 104번 정답을 낸다. 그래서 심문자는 바르게 식별한다.’ 여기에 흥미로운 가능성이 하나 열려 있다. 디지털 컴퓨터가 난수 발생기random number generator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디지털 컴퓨터는 어떤 답을 낼지 결정하기 위해 당연히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난수 발생기는 심문자의 염력 능력에 좌우될 것이다. 아마도 이 염력은 기계가 확률 계산에서 기대치보다 더 자주 정답을 추정하게 유발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심문자는 여전히 바르게 식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심문자는 투시를 통해 어떤 물음도 하지 않고서 옳게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능력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텔레파시가 허용된다면, 우리의 검사를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 상황은 심문자는 속으로 말하고 경쟁자 중 한 쪽은 벽에 귀를 대고 듣고 있다고 할 때 일어날 법한 일과 유사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리라. 경쟁자들을 ‘텔레파시 차폐 방’에 넣어야 모든 요구사항이 만족될 것이다.

7. 학습하는 기계

독자는 내 견해를 뒷받침할 긍정적 본성을 지닌 매우 설득력 있는 논증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반대 견해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렇게 애쓰지는 않았을 테니. 이제 내가 갖고 있는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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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려운 주제라서 그런가요 ...
아무런 댓글이 달려있지를 않네요
첫 댓글을 다는 영광을 누려보네요 ^.^;;

인간의 뇌는 아주 비효율적입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무척 비효율적이죠.
엄청난 에너지를 쓰지만 ... 결과는 그닥 ...

앨런 튜링의 글을 대학때 읽어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음... 거의 이해를 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번역된 것을 보아도 여전히 ... ^.^;;

콩나물 기르듯이 자꾸 보면 좀 나아지겠죠

첫 댓글 반갑습니다^^

번역은 거의 막바지로 가는데, 지난 번에 읽을 때 심오하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정교하게 심오하더라구요.

일단 마치는 것부터 하고, 찬찬히 수정해 가며 음미해 보렵니다.

그 결과를 해설, 주석, 참고자료 등과 더불어 다시 보고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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