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11 내가 누굴 닮았다고?

in #kr-novel6 years ago (edited)

“뭐라고요?”

말한 나도 어이없는데 들은 수애는 얼마나 놀랐을까? 내 입에서 왜 이렇게 심한 말이 튀어나왔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못 들었으면 마세요."

차마 두 번 말할 수 없어서 대충 넘겨보려 했다. 못 들었으면 말라고 대답했다.

“그러죠. 방금 한 말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따질 줄만 알았던 수애가 예상외로 쉽게 알았다고 했다. 수애는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주방을 나갔다.

후회되었다. 내가 왜 그런 몹쓸 막말을 했을까? 수애가 밉기는 하지만 내가 남에게 막말을 할 만큼 인간성이 저질은 아니다.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까불지 말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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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원이 왔다고 오랜만에 회식이 잡혔다. 직급은 과장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수지를 예 과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업무상으론 예 과장이라고 불렀지만 사적으로는 이름을 불렀다. 지은이는 늘 이름을 불러댔다. 자기도 과장이니까 호봉수로 상사라는 장난도 잊지 않았다.

10시에 퇴근하면 회식은 언제 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별거 없다. 보통 회사와 똑같다. 영업은 밤 9시30분까지다. 그리고 10시면 문을 닫고 퇴근한다. 회식 날은 9시까지만 손님을 받고 9시30분부터 2층 홀에서 회식을 한다. 보통은 돼지불고기를 구워먹고 술을 마시고 끝난다. 지하철 끊기기 전에는 파해야 한다.

술을 좋아하는 몇몇 직원들은 늦게까지 마시고 탈의실에서 자기도 한다. 보통은 탈의실에서 자는 걸 못하게 하지만 회식 때만 예외다. 집에 가라고 택시비를 줄 것도 아니니까 회식 때만 탈의실을 밤에도 개방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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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 되어 회식판이 벌어진 2층 홀로 가봤다. 까불지 말라는 말에 삐쳤던 건지 저녁시간 내내 주방에 안 보이던 수애는 수지, 지은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자리는 안 지키고 어디서 뭘 하다가 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난 일부러 수애와 멀리 떨어진 반대편 끝에 앉았다. 수지와 가까이 앉고 싶었지만 수애 얼굴을 보긴 싫었다.

홀을 정리하고 늦게야 회식자리에 합류한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이 내 앞과 옆으로 앉았다.

“안녕하세요. 경주 아저씨.”

얼굴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한 여학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어? 그, 그래. 근데 아저씨가 뭐냐? 오빠지.”

“아저씨 맞아요. 서른 넘었잖아요.”

서른 넘으면 아저씨라는 법은 누가 만든 걸까? 서른이 넘어서 아저씨라는 논리를 들이민 학생은 스무 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그 아이는 대학생이고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고 말했다. 요즘 등록금이 비싸다던데 등록금은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나보다.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했더니 용돈 적게 줘서 별로 안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내 나이 벌써 서른둘. 이제 나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지. 아저씨라고 불려서 기분이 나빴지만 멀리 앉아있는 수지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위로해줬다.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수지 얼굴을 보며 ‘매일 볼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경주야, 이리로 와.”

지은이가 자기 옆자리가 비었다고 불렀지만 싫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린 대학생들이 더 좋으냐며 투덜댔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다. 어린 대학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받느니 옆으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옮겼다. 내 옆으로 지은이가, 정면에 수지가, 그 옆에 수애가 앉게 되었다. 수애는 대각선에 앉아있으니까 신경 끄기로 했다.

“경주 취향이 어린 여자였어?”

수지가 먼저 말을 붙였다.

“에이, 설마. 내 이상형은 너야.”

내 입으로 내뱉고도 놀랬다. 이런 닭살 멘트를 내 입으로 날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

수지는 잠시 히죽이더니 말을 이었다.

“네 이상형이 뭔데?”

“별거 없어. 그냥 너 같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

수지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생글생글 웃었다.

“언니, 이상형이라니까 기분 좋아?”

가만히 고기만 먹던 수애가 말했다.

“그럼, 좋지.”

“좋으면 사귀어라.”

“어, 야. 본 지 며칠이나 됐다고.”

“시간이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한 거지.”

수지와 수애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수애가 수지에게 나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수애는 보기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좋으면 사귀라는 말도 하는 걸 보니 내가 그리 밉지는 않은가 보다. 이상하다. 나는 수애를 괴롭히고 있는데 수애는 정말 날 미워하지 않는 걸까? 설마.

“응? 그, 그래.”

“언니, 설마 경주 씨에게 마음 있는 거야?”

수지가 얼버무리며 대답하지 수애가 기겁을 하며 물었다.

정말일까? 수지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걸까? 수지의 표정을 살펴보니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나의 이상형 수지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봤다. 행복해하며 잠시 혼이 빠진 사이 지은이가 옆구리를 툭 쳐서 깜짝 놀랐다.

“뭐하냐? 마셔.”

지은이와 나는 연신 술을 들이부었다. 수지와 수애는 교회 다닌다며 사이다로 건배를 했다.

수지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주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피하고를 반복했다.

“정말인가 보네. 수지야, 네 눈에서 광채가 난다야. 너 경주 맘에 드냐?”

눈치 빠른 지은이가 수지의 행동을 발견 못 했을 리가 없지.

“어, 야.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하고 많이 닮아서 신기해서.”

“언니, 진짜 많이 닮았지? 나 식당 처음 온 날 깜짝 놀랐잖아.”

내가 누굴 닮았다고? 수애도 아는 사람인가 보다. 수지와 수애가 같이 아는 사람이라면 둘과 매우 친했던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그 누구라는 사람이 누굴까?

“내가 누굴 닮았는데?”

“응. 있어. 비밀이야. 헤헤”

수지는 비밀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비밀이라니 더 궁금해졌다.

.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는 주방풍경. 칼날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와 육수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어우러져 귀에서 춤추고 있었다. 수애는 조리사들과 함께 호박을 조심조심 썰었다. 채소 중에서 썰기 쉬운 호박은 칼질 초급자들에게 알맞은 연습코스다. 칼과 친해지기 딱 좋은 과정이다. 칼을 무서워하는 수애는 무른 호박도 천천히 신중해서 썰었다. 빨리 배워야 하는데 저런 속도라면 절대 칼질 실력이 늘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호박을 썰며 칼과 친해진 다음 난이도가 높은 딱딱한 채소인 당근도 썰어야 한다. 호박을 썰 때도 바짝 긴장을 한 수애는 당근을 썰 차례가 되자 차마 칼을 당근에 대지 못하고 있었다. 칼을 당근 위에 올려놓고 힘을 줘봐도 딱딱한 당근은 썰기 쉬운 대상이 아니었다.

“이봐요 경주 씨, 나 당근 잘 써는 방법 좀 알려줘요.”

“싫어요.”

그냥 솔직히 칼이 무섭다고 말을 해라. 난 칼질을 하든가 말든가 상관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줘요.”

수애는 친한 척하며 콧소리도 살짝 넣어 말을 했다. 이런 수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기요, 혹시 나 좋아해요?”

“제가요? 아뇨. 미치지 않고서야.”

“그럼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해요?”

“치사해라. 싫으면 싫은 거지 사람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짜증 나.”

그렇지. 이렇게 톡톡 쏴줘야 수애답지.

“칼이 무섭죠? 쯧쯧. 칼이 무서운 조리사도 있나?”

비아냥거리며 약을 올렸다.

“가르쳐 주기 싫으면 말지 왜 시비예요?”

“열심히 연습해보세요. 계속 연습하면 칼이 안 무서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수애는 대답 없이 눈을 흘겼다.

.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는 휴게실로 올라와 버렸다. TV를 켜긴 그래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는 신문을 펼치니 정치면과 경제면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치 남의 나라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어제일이 생각났다. 회식 내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수지는 내가 누군가와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수애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누굴까?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 내 머리로서는 이게 한계였다. 그리고 어제 회식은 수애가 수지에게 나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하진 않았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만약 내가 수애 입장이라면 쌍욕을 하면서 ‘언니, 경주 미친 사람이야.’라고 말했을 텐데. 갑자기 수애가 고맙게 느껴지면서 미안해졌다. 그리고 수애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내가 미웠다.

민수가 숨을 헐떡이며 급히 휴게실로 뛰어 올라왔다.

“형, 큰일 났어요.”

“큰일?”

“부주가 당근을 썰다가 손가락이 잘렸어요.”

“수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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