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4 수애 괴롭히기

in #kr6 years ago (edited)

앗싸! 자기 무덤을 파는구나. 머리에 든 게 많다고 요리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니까. 칼을 무서워하는 가짜 요리사 주제에 감히 경주느님에게 도전장을 내다니, 이제 망신당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요리시합에 졌다며 눈물 흘릴 수애를 생각하니 갑자기 불쌍해졌다. 쯧쯧 그러게 왜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냐?

.

수애와 얘기를 끝내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막내가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큰일 났어요. 지금 주방장님께서 찾고 난리가 났어요.”

예상치 못한 변수다. 겨우 5분 정도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그 사이에 1층에 와보다니……. 수애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수애가 막내의 말을 듣자마자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서둘러 들어갔다. 주방엔 주방장이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에잇!

“막내에게 다 들었다.”

나를 노려보는 주방장의 화난 눈빛을 애써 피했다. 나는 언제나 성실하고 실력 뛰어나고 무엇을 하든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나 있었다. 게다가 주방장님의 수제자가 아닌가? 그런데 하루 중에 가장 바쁜 시간에 자리를 비웠다는 걸 봐버렸으니 이건 내게 큰 흠집이다.

수애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음식은 무철이가 빼고 있었다. 무철이도 숙련자이긴 하지만 수애가 잔뜩 밀려놓은 주문을 이어받아서 헤맸을 게 뻔하다. 정말이지 수애가 나타난 후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경주야,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내가 말은 안 했지만 네 맘은 다 안다. 그리고 부주방장, 너도 잘한 거 없어. 오늘 일 끝나고 두 사람 내 방으로 와.”

주방장은 밀린 주문지를 보더니 한숨을 크게 쉬며 주방을 나갔다. 주문이 많이도 밀려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대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주 씨, 빨리 이 주문지부터 해결합시다.”

수애가 밀린 주문지를 보고 서두르며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참견 좀 하지 말라고.

.

주방을 겨우 5분 비웠을 뿐인데 주문 순서가 엉키고 난리가 났다. 내가 수애 대신 주문지를 맡았다면 순서가 엉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문가니까!

이제야 경력이 겨우 한 달인 수애는 밀린 주문지를 보자 당황을 했다. 당황하다 실수까지 해버렸다. 먼저 나가야 할 음식이 나중에 나가는가 하면, 세 그릇 나가야 할 음식이 다섯 그릇 나가버렸다.

나는 옆에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며 실실 웃었다. 서빙하는 직원은 왜 음식이 안 나오느냐고 불만을 말했다. 수애가 드디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원래 불난 집에는 부채질을 해야 제맛이지! 내 웃음소리를 들은 수애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째려봤다. 수애의 큰 눈이 마치 여우의 눈처럼 보였다. 딱 구미호 같은 눈.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면 내가 무서워할 거라 생각했나? 난 더욱더 크게 웃으며 수애의 눈을 같이 째려봐줬다.

“이봐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웃기잖아요. 주문지 몇 장이나 밀렸다고 쩔쩔매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아세요? 여름에 손님이 한 번에 들이닥치면 주문지가 50장도 밀려요. 30장 정도는 가뿐하게 외워야죠. 머리 좋은 수애 씨에겐 식은 죽 먹기 같은데. 그렇죠?"

나는 수년을 일해서 주문서 30장 정도는 순서대로 외우며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수애라도 경험이 적어서 주문지를 외우며 일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난 여기서 좀 더 수애의 기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리 나와 봐요. 내가 할게요. 쯧쯧,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구경만 하며 실실 웃던 나는 수애에게 내가 할 테니 비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잘난 자존심을 가진 수애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며 내 도움을 거절했다. 선의의 도움까지 거절하다니, 정말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됐거든요. 일 안 하려면 방해하지 말고 좀 꺼져줄래요?”

수애는 화를 누르려고 눈을 내리감고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참아라. 참아라. 계속 참아라. 계속 참다가 화병 걸려라. 흐흐흐.
수애를 괴롭히는 일은 정말 재밌다. 당황하며 큰 눈을 더 크게 뜨는 모습도 웃기고, 나름 무섭게 째려보는 모습도 웃기고, 소리 지르는 모습도 웃기다. 그래, 수애 너는 나의 기쁨조가 되어라!

.

일을 마치고 수애와 함께 주방장실로 갔다. 뭐라고 혼내실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방장님은 나와 수애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말씀을 시작하셨다.

“오늘 주방을 비웠던 일은 없던 걸로 해주마. 하지만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둘 다 시말서를 내야 할 거야.”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주방장님 밑에서 8년을 일하면서 혼나본 적이 없는 엘리트다.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애가 정말 싫다.

“그리고 내가 너희 둘을 한 달 지켜봤는데 두 사람 왜 그렇게도 맞질 않냐? 뭐가 불만인지 나도 알아. 경주 너, 사내자식이 그런 일로 여자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어? 너는 내 수제자야. 다신 날 실망시키지 마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일은 내 인생의 오점이다.

“그리고 수애, 직장에선 계급도 중요하지만 경력이라는 것도 있어. 경주가 여기서 몇 년이나 일한지 알지? 8년이야. 수애도 잘한 거 없다. 둘이 사이좋게 주방을 꾸려나갈 수는 없냐? 난 말이야. 너희 둘이 콤비가 되었으면 좋겠어."

콤비? 내가? 수애랑?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 주방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 식당은 가장 이름난 한식집이 될 게 아니냐. 경주 너의 실력과 노하우 그리고 수애의 지식까지 더하면 정말 최고의 콤비가 될 텐데 말이야. 경주 너부터 대답해봐라. 둘이 또 싸울래?”

아, 이를 어쩐다. 수애와 같이 일 못하겠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주방장님께 찍힐 게 뻔하고, 그렇다고 알았다고 하면 내 속이 뒤집힐 텐데.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오늘 정말 제대로 꼬이는구나. 부처님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나는 정말 수애가 밉다고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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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읽기 쉽고 재미있게 쓰시는 거 같아요.
수애와 경주의 원수같은 이야기.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됩니다 :)

저의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지문에 약해요. 약점인 지문 실력을 키워야 하나, 강점인 잘 읽히고 빠른 전개와 대화체를 중점으로 써야하나 늘 고민입니다. 주위에선 강점을 더욱 키우라고는 해요. 공모전마다 예선탈락한 이유가 약한 지문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 또 흔들리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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