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6 드디어 미쳤군

in #kr6 years ago (edited)

‘고마워. 요즘의 나를 보면 미친 사람 같아.’

바로 답장을 보냈다.

‘부주방장 자리에 너무 집착하지 마. 네가 부주방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네 실력을 인정하잖아. 대한민국에 너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게다가 넌 주방장님 수제자잖아.’

오랫동안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한 친구여선지 나를 잘 아는 지은이.

‘역시 넌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네. 네가 내 친구여서 행복하다. 고마워. 난 이제 퇴근.’

.

옷을 갈아입고 식당을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려는데 식당건물 앞에 서있던 수애가 나를 불렀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경주 씨, 잠깐만요.”

“왜요?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데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째려보자 수애가 내게 다가왔다.

“할 말이 있어요.”

“추우니까 빨리하세요. 날씨 겁나 춥네.”

2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겨울이다. 늦은 밤의 거리는 한산했다.

수애는 화가 났거나 못마땅한 표정은 아니다. 그냥 무표정했다.

“맥주 한잔 안 할래요?”

“됐어요. 내가 당신하고 왜 맥주를 마셔요? 그냥 용건이나 말해요.”

“에이, 한잔합시다. 할 말 있다잖아요.”

“사람 참 귀찮게 하네.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 술을 마시자니까 이상하잖아요.”

환영회 때도 회식 때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 술을 마시자니까 더 이상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꼭 요리시합을 해야겠다고 바락바락거리더니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사과하고 싶어서 그래요.”

드디어 미쳤군. 내게 절대 지지 않으려던 사람이 사과는 무슨 사과.

“뭐라고요? 사과? 혹시 먹는 사과를 말하는 건 아니겠죠?”

“사람이 진심으로 말하면 좀 들으세요.”

수애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렇지. 이게 바로 수애다운 모습이지.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화를 내는 모습이 바로 수애의 진짜 모습이지.

“진심이라고 느껴져야 진심으로 들을 거 아닙니까.”

수애는 내 말을 듣자마자 입을 삐죽거렸다. 그럼 그렇지. 분명 불만이 가득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미안해요. 아, 진짜로 미안하다고요.”

이 여자가 사과를 하려는 건 맞나 보다. 사과는 하고 싶은데 자존심이 허락 안 하는지 내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사과를 했다.

여자가 먼저 사과를 하는데 남자가 쪼잔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진짜 사람 참 난감하게 만드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여자다.

“됐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빽 없는 놈은 바닥부터 빡빡 기어도 늘 2인자 하는 거고 빽 있는 놈은 남들 빡빡 길 때 놀다가 와서는 1인자 하는 거고 그런 거죠. 수애 씨 빽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참 부럽네요.”

“뭐라고요? 사람이 숙이고 들어가면 받아줄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또다시 목소리 높이는 수애. 역시 저 성질머리는 어쩔 수 없구나. 수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나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바로 또 소리 지를 건 뭐람.

“두 분 또 싸우세요? 이러면 곤란한데. 주방장님이 두 분 싸우면 바로 보고하라고 했거든요.”

깜짝이야. 주방 뒷정리를 하고 이제야 퇴근하는 막내다. 이 녀석은 눈치 없기로는 국가대표 급이다.

“야, 이게 싸우는 걸로 보여? 똑바로 봐봐 우린 대화하는 중이라고. 우리 이제 안 싸우기로 했거든. 봐봐 지금 우리 화해하고 있잖아.”

나는 억지로 수애의 손을 덥썩 잡고는 악수하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하하하하. 그래 막내야. 우리 화해하는 중이야.”

수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내 거짓말에 동의해줬다. 그리고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졌다.

“네. 그런 것 같네요.”

막내가 악수하는 나와 수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런 거 같은 게 아니라 그런 거야. 대화를 하다 보면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리는 열심히 화해를 하고 있었거든. 너무 열심히 화해를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커지는 줄도 몰랐던 거야. 하하하하.”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막내는 믿어줬다. 아니 속아줬다. 눈치가 없다고 늘 구박했는데 이제 조금씩 눈치가 생기나 보다.

.

난 이 식당에 좀 더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8년 동안이나 칭찬해주고 열심히 가르쳐준 주방장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갈 때 난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 방황할 때마다 주방장님은 날 잡아주셨다. 그깟 대학 안 가면 어떠냐고 자신의 모든 기술을 가르쳐줄 테니 꼭 성공하라고 격려해주신 주방장님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주방장님의 기대대로 부주방장이 되어 뒤를 이어야 한다.

나는 내 꿈이 조금 미뤄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의 부주방장은 수애이고 나는 냉면장(냉면부 책임자)일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부주방장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주방장도 되고 나도 성공할 수 있겠지. 그날을 위해 조금 더 나를 단련해야겠다. 그런데도 수애는 밉다.

다음 날, 난 출근하자마자 주방장을 찾아갔다. 나는 2층 준비팀으로 자리를 옮겨 주방장님 옆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좀 더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주방장님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말로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은 수애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1층 조리팀에서 일하면 계속 수애 얼굴을 봐야 하고 내가 또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2층에서 일한다고 해서 수애 얼굴을 전혀 안 보는 건 아니다. 밥 먹을 때라든가 휴게실 다닐 때라든가 아침조회 시간이라든가 언제든 마주칠 수는 있다. 그래도 함께 일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수애와 싸울 일은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칼을 가지러 1층으로 내려가서는 조리팀 조리사들에게 앞으로 2층에서 일하게 됐으니 부주방장 수애의 말에 잘 따르라고 말했다. 수애가 경험이 적긴 해도 무철이가 많이 도와줄 것이다. 그놈은 수애를 좋아하니까 잘 하겠지. 내가 없어도 1층은 문제없이 굴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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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밥을 3층 주방에서 먹는다. 주방 한쪽에 조리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이 있다. 나는 늘 지은이와 함께 밥을 먹었다. 같은 1층에서 일하다 보니 밥 먹으러 가자고 자연스레 말을 건넬 수 있었다. 2층으로 오게 되자 점심쯤 되어 지은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밥 먹으러 고고싱.’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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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직접 쓰시는군요. 일단 아침에 할일이 많아서 보팅부터 하고!! 점심시간에 01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뭔가 제목이 재밌어보입니다.^^

아핫, 고마워요. ^^ 제목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

항상 고마워요. ^^

사랑은 냉면처럼, 냉면의 어떤 모습과 사랑이 비교됐을까요 궁금하네용ㅎㅎ
연재 읽어보도록 할게요
응원합니다!!!!

끝까지 읽으셔야 답이 나온답니다. ^^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중간에도... ^^

1일 1회 포스팅!
1일 1회 짱짱맨 태그 사용!
^^ 즐거운 스티밋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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