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사랑은 냉면처럼 | 05 포기해야 하는 걸까?

in #kr6 years ago (edited)

“주방장님, 부주방장과 다시는 싸우지 않기 위해서 요리시합을 하고 싶습니다. 정당하게 실력으로 이기고 싶습니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마치 몰래 한 도둑질이 들킬까 안절부절못하는 꼴 같았다. 수애를 괴롭힌 건 사실이지만 이게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주방장 앞에서 떨고 있는 걸까?

“안 된다. 내가 네 심보를 모를 줄 알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게. 기회는 딱 한 번이야.”

주방장은 심각해 보였다. 정말 사제관계를 끊기라도 할 것처럼 큰 한숨을 쉬고는 다시 물었다.

“경주야, 넌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다. 수애와 요리시합을 할 거냐?”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착하기만 한 보통 사람이었다. 왜 수애가 이토록 미운 걸까? 내 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일까? 모르겠다.

“주방장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수애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냈다.

“그래. 내 제자답다. 내가 너를 제대로 가르쳤구나.”

주방장은 내가 믿음직스럽다는 듯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려줬다.

“수애야, 너도 대답해라. 내 주방에서 요리시합을 정말 할 생각이냐?”

“네. 해야겠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주방장은 수애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꼭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라.”

“한 달을 참았습니다. 경주 씨는 제가 밑바닥 생활 없이 바로 부주방장이 되었다고 불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같이 일할 수는 없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수애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주방장은 수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난 그런 주방장님의 얼굴이 무서워서 고개를 잠깐 들었다가도 다시 내렸다.

“허락할 수 없다. 이건 명령이야. 내 명령을 어기고 동료끼리 요리시합을 한다면 당장 해고다. 난 동료애가 없는 부하직원과 함께 일할 수 없어. 그리고 또 하나, 다시 한 번 너희 둘이 싸우는 게 내 눈에 보이면 둘 다 해고다.”

헛. 해고라니. 이런 주방장의 모습은 처음이다. 수제자인 나를 해고하겠다고 말씀하시다니, 목에 힘주며 자랑하던 그 수제자를 해고하겠다니.

“주방장님…….”

“사장님께는 너희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해서 잘 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매우 흡족해하셨어. 그만 됐으니 나가봐라.”

주방장이 수애의 말을 잘랐다. 그리곤 바로 눈을 감아버리셨다.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애도 따라 일어났다. 수애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과 눈을 찡그렸다.

주방장실을 나오자마자 수애가 한마디 했다.

“들었죠? 앞으로 시비 걸면 우리 둘 다 잘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 건들지 맙시다.”
젠장. 이건 내가 불리한 조건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수애를 내보내기 더욱 어려워진다. 수애를 괴롭혀서 그만두게 하려던 계획이 어려워졌다. 주방장 눈 밖에 나기도 싫고 수애도 싫으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옷을 갈아입으려고 탈의실로 들어갔더니 무철이가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날 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뭐냐? 나에게 할 말이라도 있어? 뭔데?”

무철이는 내 말을 잘 따르는 후배다. 머리가 좀 나쁘긴 해도 착하고 순한 녀석이다. 성실하기까지 해서 내가 곁에 두고 열심히 아껴주는 후배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뜸들이지 말고 해. 피곤하다.”

“형님, 부주에게 너무 심하게 하진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요.”

뒤에서 누군가가 각목으로 한 대 친 것 같이 골이 띵해졌다. 내가 믿는 후배가 감히 내 앞에서 부주(부주방장) 수애 편을 들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일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이유부터 들어보고 화를 내야 하니까.

“저, 부주를 좋아합니다. 저는 항상 형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랐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부주 편을 들고 싶어요. 이런 제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요."

이놈도 역시 남자였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예쁜 수애에게 반해버렸으니 말이다. 나도 남자라서 그런지 이해가 되었다. 예쁜 여자에게 마음이 가는 거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하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좋아해라. 다만, 내가 도와주진 못해. 내가 수애에게 못되게 해도 미워하지 말고. 알았냐?”

.

무철이의 대답도 듣지 않고 탈의실에서 나와 버렸다. 마음이 공허해졌다. 이 식당에 내 편은 없는 걸까? 수애가 나타나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내 편이었다. 일 잘하는 나를 모두 좋아했다. 수애가 나타났을 땐 뺏긴 부주방장 자리를 곧 되찾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줬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달인데 사람들은 변했다. 수애를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처럼 대했다. 그리고 몇몇은 수애를 괴롭히는 내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오늘은 주방장님의 최종경고까지.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여기까지가 내 운인가? 인정할 수 없다. 포기하기 싫다. 부주방장은 내 자리다.

.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음료수 캔을 하나 꺼내서 벌컥벌컥 마셨다. 뱃속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한 캔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나는 한 캔을 더 꺼내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입으로 털어 넣었다. 배가 차오르긴 했지만 빈 것 같은 느낌은 여전했다.

휴대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카운터를 보는 지은이었다.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나와 나이가 같은, 그래서 친한 친구 지은이.

‘오늘 주방에서 있었던 일 소문 다 났어. 지점장도 알고 있더라. 이미지관리 잘해. 걱정이 돼서 그래.’

아직 내 편이 한 명 남아 있었다. 내 친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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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서 한참을 보고 가는군요.
좋은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연재군요. 시간내서 천천히 읽어볼게요. 요즘 스팀잇에 연재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ㅗ

고마워요. ^^ 저도 읽고 있는 연재가 있어요. ^^

^^ 즐거운 스티밋!!!

오늘도 즐거운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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