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독을 채우는 고픔 - Q : 외로움을 어떻게 마주하시나요?

in #zzan5 years ago (edited)
  • 평소 스팀잇에 쓰던 에세이 형식과 사고다를 결합해 보았습니다 :)

photo-1512161831-711a3fe80197.jpg




고독을 채우는 고픔
Sagoda Q. 외로움을 어떻게 마주하시나요?

요아


새벽마다 찾아오던 녀석이 이제는 시간 구분없이 나를 찾아댔다. 심지어 '홀로 있을 때만 올 것'이라는 제 1법칙을 무시하기도 했다.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분명 온갖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좌우하길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시끌벅적함 안에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그럴 때면 컨디션을 핑계로 집에 돌아와 무언가를 먹었다. 하염없이 씹고 삼켰다. 설령 그게 맛이 없는 음식이더라도. 술로 음식의 맛을 덮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포만감이 생기면 기분 역시 한결 나아졌으므로, 끝끝내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악습을 취미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배부름이 잦아들면 다시 또 기분이 나빠졌다. 올 여름 내내 유행을 끌었던 흑당 버블티 역시 놓은 적이 없었다. 내 몸 중 가장 많이 쓰는 신체부위를 꼽으라면 손가락이었는데,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치아였다. 나는 쉴 틈없이 음식을 던져주었고, 가련한 내 치아는 소화를 위해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7월 초, 엄청난 양의 과제와 논문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있었던 한낮의 여름.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금세 다시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실소가 터졌다. 몸이 무거워 물을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불쌍한 나를 위하여 바치는 웃음. 고개를 돌리니 분리수거통에는 맥주 캔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마른 세수를 하고 억지로 일어나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체중을 잰 건 도대체 얼마만인지, 건전지가 닳아버려 잴 수 없었다. 짜증과 안도가 섞인 한숨을 뱉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은 바로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다행.


내일이면 다시 충격을 잃고 무언가를 또 씹어댈 게 분명했으니 건전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귀찮음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렇게 힘겹게 잰 내 몸무게는 매우 충격적인 숫자였지만, 웃긴 건 그리 충격 받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물을 마시지 못했던 침대에서의 내가 가장 충격이었으니까. 그 날 저녁부터 식이요법에 돌입했다. 최소 한 달간은 술을 끊기로 했다. 그러자 술과 음식이 사라져버린 시간이 둥실 떠올랐다. 고독을 대했던 나의 시간들이.


두 달 가까이 음식의 반을 먹는 반식(半食)에 돌입했다. 외로울 때는 운동으로 마주보기. 몸이 무거워져 처음부터 격한 운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맛없는 음식도 남기기 싫어 꾸역꾸역 해치웠었던 나를 숟가락과 함께 내려놨다. 무언가를 씹고 싶을 때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버텼다. 어디선가 출출할 때가 인간의 집중력이 가장 높아진다, 라는 이상한 글을 보았고 그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공복감을 즐기며 몸을 움직였다. 배는 채워지지 않았으나 마음의 공허함은 서서히 채워졌다. 두달만에 8kg를 감량했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기쁨과 더불어, 더 이상 고독을 알코올과 안주로 마주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장한 기분이 든다. 사람이라면 찾아오는 고독, 외로운 감정들. 그들이 문을 똑똑 두드리는 날이면 음식으로 막아버렸으나, 이젠 비로소 문을 열어줄 수 있을 듯하다.

ㅡ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잠시 머물렀다 가.




SAGODA Question.

여러분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어떻게 마주보시나요?
견디거나 버티시는지, 혹은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24이 되어서야
천천히 배우고 있는 중이기에 😂 )



Sort:  

걍 받아들이셔요. 날때도 혼자왔고 갈때도 혼자갑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100% 아는 사람은 우주에 나 하나뿐입니다.

천상천하요아독존

그니까 걍 받아들이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천상천하 요아독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현웃 터지고 갑니다 감사해요 피터님ㅋㅋㅋㅋㅋㅋㅋㅋ 김동률 노래도요! ㅎ_ㅎ 노래 들으니까 감성 폭발하는 걸요 ㅠㅠ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

(사랑한다 말해도 계속 듣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좋아요)

댓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마주해 버린
해당 댓글로 댓글을 지우고 해당 음악을 듣고 있는 제가 있네요 ㅋ

@sindoja님의 댓글 궁금한걸요 😂

저도 그 나이때 지방에서 혼자 다짜고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ㅋㅋ 그렇다보니 서러운것도 많았고 외로운것도 많았죠.
그런데 뭔가 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꽤 도움이되기도하구요.
또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것도 정말 많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서울에 친구가 몇 없는 대신 오히려 더 많은 스티미언 분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기승전스팀잇 ㅋㅋㅋ

서러운 것도 많고 외로운 것도 많다는 말이 큰 공감이 됩니다 ㅠ_ㅠ
정말 고향인 본가에 있을 때보다 더욱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더 늘리고자 합니다.

@ukk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접점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날 힘이 생기고 있어서 그것도 한번 도전!
기승전 스팀잇ㅋㅋㅋㅋ 스티미언분들 참 따사로워서 너무 좋아요..♥ 저도 인정이요!

ㅋㅋ 나중에 밋업도 나가보시고 해보세요
더 좋은 인연인 분들 많이 만나실 겁니다 ㅎ

지금까지는 차마 부끄러워 나가지 못했지만 좋은 분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다음번에 열리는 밋업은 꼭 참석해야겠습니다!

한번 주최를 해보시는것도 좋을 것 같네요

헛 저의 리더십은 땅굴을 파고 지하도시를 건설했답니다...

리더십으로하는건 아닙니다~~ ㅎㅎ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저의 고독은 글과 함께해요. 고독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면이 뭐랄까 안정되거든요!! 이런저런 글 쓰면서 저는 보내네요.

고독을 글과 함께한다는 것 :) 정말 건강하게 풀어나가시는 방식입니다.
이런저런 글 읽기위해 @dlfgh4523 님의 스팀잇을 자주 방문해야 하겠는걸요!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정말 큰 성장인 것 같네요. 멋지십니다.
저는 고독하고 외롭다고 느끼면, 사실 그냥 좋지 않은 감정이 들면 더 침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 같네요. 그런 우울한 감정을 직접 마주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이불 속에서 끙끙 앓는다면 내 작은 일상까지 모두 무너질 것 같아서. 그러니 바람을 쐬고,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해보고, 내적 댄스 유발하는 노래들로 시간을 보냈다. 뭐든 그렇게 두 달만 지내면 무뎌졌으니 나름 건강하게 감정 컨트롤을 하는 편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간다고 하시니, 제가 작년에 썼던 글이 떠오르네요.
저는 반대로 요렇게 이불 밖으로 도망치곤 했죠 ㅠ_ㅠ
우울한 감정을 마주하는 건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겪고 있나 보아요.
어떻게 해야할까나 ㅠㅜ

그렇군요. 요아님은 드시는 걸로. 저도 먹고 취하는 걸로. ㅎ
질문에 답해주는 sagoda 방식이 특이하네요.
근데 사고다가 무슨 뜻인가요?

ㅎㅎㅎ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는 @dozam님 오늘도 오셨네요 :) 반갑습니다!

사고다는 요번에 생긴 새로운 플랫폼이더라구요!

이거.. 생각보다 재밌잖아?

@ukk님이 정리해주신 글이 있기에! 쏘옥 데리고 왔습니댜 :-)
토론 느낌의 장 같아요! 질문과 답변이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에 한번 저도 질문으로 참석해보았습니다 :)

음...사고다의 뜻은...(@ksc님 소환......) ㅠ_ㅠ

소환당한건 본캐지만 부캐로 활동중이어서 이걸로 왔습니다ㅎㅎ..
영어로 SAGODA지만 한글로는 사고다입니다.
사고의 사전적 의미는 네이버 국어사전 기준 21가지나 있지만, 그 중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thinking으로서의 사고와 accident로서의 사고겠죠.

thinking으로서의 사고다 :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토론거리를 내놓고, 사람들은 그것에 답하는 의견 나눔의 장이 될 것이라는 목적
accident로서의 사고다 : 현재 암울한 스티밋 상황에 사고 한번 쳐서 살아나게 해보겠다는 포부

가 담겼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오 정말 뜬금없이 소환했는데 요렇게나 정성어린 설명을 ㅠ_ㅠ 감사합니다!

도움이되셨다니 다행입니다!^ㅁ^b

예시로 여러 게시글까지 포함되어 있어 편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ukk님!

Loading...

소설장이를 꿈꾸시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통찰을 녹여내야하기에 많은 경험과 더불어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꼭 혼자여야만 하죠.
그러기에 고독은 우리들에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고 친숙해져야 하는 실체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고독이라는 것이 창작자에게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기에,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만큼 힘이 들 때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위안을 삼습니다.

문장들은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서 고독 하면 떠오르는 그림 한 점 남기고 갑니다.
hopper.jpg

@carbonrocket님, 댓글 읽고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소설장이를 꿈꾸시냐는 말씀은 스팀잇 이후 처음 듣기에 :)
사실 '쟁이'가 아닌 '장이'를 일부러 골랐는데 말이죠. 이렇게 짚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예민함이 강점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카본로켓님의 말씀처럼, 대개 글은 홀로 집필하는 과정이기에 고독함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나봅니다.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고독을, 무작정 내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글을 읽으며 들었습니다. 물론 음식으로 고독감을 내치는 방법은 이제 다시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글이 막힐 때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는 이유도 무언가 정의내려진 느낌이 들어 행복하네요. 또한, 다른 관점으로 고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역시 행복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 했습니다. 좋은 밤 보내시길 바라요!

글을 참 잘쓰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과찬 감사합니다. 칭찬에 부응하는 글 써내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어느 시인은
글이 안 나올 때면
본인보다 잘 쓰는 시인의 작품집과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작품집(물론 본인의 기준으로)
각각 한 권씩, 그리고 밀란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렇게 세 권을 배낭에 챙겨 길을 떠난다고합니다.

이 정도면 소통과 고독이 충돌하지 않는 지점에서
절묘한 만남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소통과 고독이 충돌하지 않는 지점에서의 절묘한 만남, 맞습니다.
책의 장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시공간을 뛰어넘고 소통과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jjy님, 읽어주심과 함께 정성어린 조언도 감사합니다 :)

Loading...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3
JST 0.029
BTC 66239.71
ETH 3448.83
USDT 1.00
SBD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