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야학

in #kr6 years ago (edited)


4월 이맘때쯤 되면, 몇 년 전 몸담았었던 야학 (야간학교) 생각이 난다. 4월과 8월은 한해 공부한 것을 마무리하고 검정고시를 치루는 달이기도 하다. 나는 4월에 야학 학기를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마무리 정리할 때의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대체로 야학은 70-80년대로 기원이 거슬러올라가는데, 원래는 일을 하느라 바빠서 공부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녁 혹은 밤에 가르치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실 청소년들보다는,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국민학교, 혹은 중학교 정도 졸업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하게끔 가르치거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배우기가 쉽지 않았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있었던 야학은 6-70대 정도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했었다. 대체로 대학생들이 검정고시에서 치루는 과목 하나씩 맡아서 가르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야학에 들르곤 했다. 나는 국어를 맡아서 가르쳤는데,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웠었다. 배움의 기회가 적었건 많았건, 시나 소설은 자신의 삶의 경험과 그 깊이에 따라 와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나는 문학 작품을 어르신들과 같이 읽으면서 이 화자는 왜 이렇게 적었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줄거리가 진행되는 것이 맞는 걸까요 - 검정고시의 합격과는 사실 별 상관 없을지도 모르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는데, 오히려 내가 잘 모르는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반은 중등, 고등, 특강반으로서 크게 3가지로 운영되었다. 야학마다 반을 운영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내가 있었던 야학의 경우에는, 우선 중등과 고등은 각각 교과과정에 해당하는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하고, 특강의 경우에는 이미 중등과 고등 검정고시를 합격한 사람들에 대해, 일종의 교양 수업을 하는 반이었다. 생각보다 특강반의 인기가 좋았는데, 이미 중등과 고등 검정고시반을 겪으면서 서로 친해진 어르신들이, 그 시간을 그냥 집에서 보내거나 다른 일을 하기엔 허전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세계를 지탱하는 각자의 기둥이, 공간 안에서 서서히 세워지고 모여 다시 공간을 이루는 느낌이 들었다.

종종 어르신들이외에, 청소년들 몇 명을 대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물론 청소년반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어서, 이 친구들의 경우에도 어르신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받곤 했다. 우리는 사실 청소년 반을 따로 두고 싶었지만, 야학이라는 곳이 애초에 각자 구성원들의 선의로 굴러가는 곳이기도 하고, 청소년 반을 따로 만들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은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야학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야학의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경우가 많았는데, 대체로 자발적으로 들어왔다가 자발적으로 떠났다. 아무래도 반을 구성함에 있어, 이질적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같은 진도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손주를 보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했지만, 사실 받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부담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어떻게 했어야 최선이었을까. 그 친구들을 붙잡는게 맞았을까.

당직날이 오면, 다른 대학생 선생님들과도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당직이라고 해서, 숙식을 야학에서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문을 열고 공간을 정리하는 것과,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을 할 때, 혹시 야학에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이 있나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 마무리하고 문을 닫는 것이 역할이었다. 대학생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나 목표는 - 사회적인 기준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는 - 상당히 소박했는데, 나는 이러한 꿈과 목표에 대해서, 더 크게 꿈을 가지라던가 아니면 뭐든지 할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소박하다는 느낌이, 사실 그 친구들에게는 전혀 소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내가 소박하다는 프레임으로 잘못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이야기라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보이는 것이 많아져서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길들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그리고 그 다양한 길의 예시를 들어주는 것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야학에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역할을 바꾸어가며 운영했던 것 같다. 검정고시 과목에 있어서야 대학생들이 선생님들이고 어르신들이 학생이지만, 친목 행사를 가질 때엔 그 역할이 뒤바뀌곤 했으니까. 음식을 가져다 주시며 서울에 보낸 자식 생각이 난다며 하나라도 더 먹어보라는 어르신과, 가족의 병수발을 하시면서도 야학에 오실 때엔 항상 유쾌하게 웃고 계셨던 어르신, 시장에서 장사할 때에 팁을 알려주시겠다는 어르신, 여행갈 때 그동안 배웠던 영어를 써봐야겠다며 고마워하시는 어르신, 여러 어르신들이 생각이 난다.

수업 시간에 가르치기도 했고,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며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이청준 선생님의 소설 '눈길'을 갑자기 왜이리 다시 읽고 싶은지.

Sort:  

야학 교사도 하셨었군요. 웃는 상에...의외의 포인트 하나 더 알고 갑니다.

제가 원래 의외의 포인트가 좀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저 스스로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

야학 교사를 하면서는, 배움에 대한 어르신들의 열정과 한(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시대에 사셨죠. 조금 더 윗 세대의 생각들, 저도 잘 모르는 삶의 부분들을 간접적이나마 엿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잠시 피드를 보다가... 살짝 낯익은 아이디에 방문했습니다. ^^
대학생에게 약간 버거운 일이었을것 같기도 한데요.
잘 모르는, 이 경험이 아니었다면 잘 몰랐을 삶의 이야기들을 기억하신다는 데 미약한 보팅이나마 드리고 싶었습니다 :)

야학은 사실 이제는 주위에서 찾아보기 쉽지가 않죠. 몇몇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마주한 대학생 친구들은, 그래도 마음 편히 너무 부담갖지는 않는 선에서, 구성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고 그게 참 좋아보였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옛날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고, 그렇게 사라져가겠지요.

제가 있을 때, 야학이 한번 이사를 한적이 있는데, 70년대에 찍었던 흑백 사진이 나오더군요. 1회 졸업 기념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진의 유래나, 찍을 당시의 이야기를 알기는 어렵겠지만, 어딘지 어떻게든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표정들은 생생하게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든 사진이든 많이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와 70년대...! 지금 사진도 옛날 사진이 될 때가 오겠죠 :)
특히 서울은 너무 잘 밀어버려서~ 찍어뒀으면 좋았을걸, 하는 때가 있습니다. 역시 사진 남겨야겠네요.

예전에는 저도 귀찮아서 잘 안남기다가도, 요즘에서야 부랴부랴 남기고 있습니다. 남겨놓은 것들에 대해서 뿌듯해하실 날이 오리라 봅니다.

저도 봉사로 야학교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 수학 가르칠때 굉장히 고생을 했어요.. 다들 어려워 하시더라구요.... ^^

아. 그러시군요! 수학이 정말 힘든 과목이긴 합니다. 사실 수학을 배우려면 추상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삶을 견디고 살아내신 분들이라, 한편으론 사실 그 분들의 삶에 있어서는, 의미 없을 수 있는 기호의 집합들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기호와 수식을 넘어, 삶의 굴곡을 지나오신 분들에게요.

어르신들이 인생에선 선배니까 깊이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ㅎㅎ 행사에서 역할이 뒤바뀌곤 했다는 부분에서 슬며시 미소 짓게 되네요 ^^

젊은 친구들의 삶과 상황을 많이 이해를 해주시더라고요. 정말로 같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척 좋았습니다. 이분들을 통해, 부모님들을 더 이해하게 되기도 했어요. :)

좋은 일 많이 하셨습니다.
그분들 아마 지금까지 고마워 하시겠지요.

감사합니다. 사실 그분들께 제가 더 감사하기도 합니다. 사실 젊은 세대들한테 정(情)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낡고 고루한 가치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말로 반짝거리는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야학이 아직 있군요...
4월과 8월이 검정고시를 치르는 달이란 것도 처음 알았어요
@qrwerq 님의 사람냄새나는 글을 읽으니 참 좋아요

신기하게 간격이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습니다. 그래서 보통 4월 하순과 8월 하순에 방학을 가지곤 해요. 그때 선생님들도 바뀌기도 하고, 학생들(?)도 반에 남거나 하나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거나 합니다. 옛날의 야학이 노동자/일꾼들을 위한 측면이 있었다면, 요즘에는 어르신분들이나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실, 공장 등지에서 미싱을 돌리시며 열심히 일하시던 분들 세대가, 지금 야학을 찾는 어르신 세대입니다. 세대가 얼추 동일하지요. 이삼십대의 청춘을 바치신 세대가, 지금에서야 학교에 왔어요.

오랜만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가 듣고 싶네요 :)

야학의 대상은 결국 그 분들이시네요..
빨간 꽃, 노란 꽃이 꽃밭 가득 피어도 공장 안에서 젊음을 삭혀야 했던...
그래도 지금은 낮에는 꽃보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으니 행복하....시겠죠?
배움의 뜻을 펼쳐가고 있는 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해요

댓글을 달려다 ddllddll님의 댓글이 제가 쓸려는 글과 너무 비슷해서 그리고 답도 여기에 있기에 여기에 댓글 달아요 ^^
대학 때 야학선생님을 해보려고 찾아가기까지 했었는데..
그 때는 운동과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탄압이 쫌 심했던 시기였기에..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었죠..
정말 좋은 일 하셨네요. ㅎㅎ qrwerq님에도 도움이 됐을 거 같고 ^^
저두 오랜만에 사계가 듣고 싶네요.ㅎㅎ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제가 활동했을 시기보다, 좀 더 예전이라면 아무래도 야학을 시작하시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 있을 시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지금이야 대학에서 운동과 관련한 분위기를 상상하기 쉽지 않겠지만, 제가 대학에 갓 입학 했을 시절만 해도, 약간은 그러한 분위기가 남아있었기에,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시고 찾아가보신것 만으로도 큰 용기 내셨다고 생각해요.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야학 이라는 단어를 참 오랜만에 들어보았습니다. 여전히 야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제 무지함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에도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겠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역할을 바꿔가며 운영했다는 것이 흥미롭고, 참 좋습니다. 결국 배움이라는 과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저에게도 야학은 추억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야학 안내 전단지를 보내 못했다면 아마도 저 또한 야학은 옛날의 모임일 뿐,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배움의 시기가 늦어진 어르신들을 보면, 괜히 제가 죄송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저도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 상호작용을 통해서 서로 성장하는가 봅니다.

제가 qrwerq님 블로그를 너무 오랜만에 온걸까요 왜 이 글을 이제서야 봤죠?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는 대학생때 해봤는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건 전혀 경험이 없네요. 왠지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더 재미있거나 더 보람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치만 제가 야학교사 경험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글은 적지 못했을 거예요. 늘 마음을 울리는 글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홍보해

중고등학생과 어르신들 모두 가르쳐보았는데, 확실히 느낌이 다릅니다. 청소년기 친구들은 잘 습득하는데 왜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동기 부여를 시키기 어려운 반면, 어르신들은 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좀 늦더라도 정말로 배우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잘 닿는 느낌, 그리고 마음만큼 배움이 잘 따라와주면 좋겠는데 하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요. 야학 통해서 제가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qrwerq님 안녕하세요. 개수습 입니다. @wonderina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아지의 표정은 제 맘을 울리는군요. :)

'배움의 기회가 적었건 많았건, 시나 소설은 자신의 삶의 경험과 그 깊이에 따라 와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공감가요. 여기에 자신의 삶과 경험에 따라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보게되고 그 관점을 나누는 즐거움이 매우 컸던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읽을 때. 다만, 시험은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의 해답으로 귀결시켜버려서 고통스러웠지만.. :) 오늘 이 글을 접했어요.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

문학을 배우는 입장에서, 시험이라는 제도는 사실 참 애매하다고 생각이듭니다. 기본 소양으로서의 문학적 능력을 '측정'하는 것과, 실제 삶에 있어서 다면화된 시선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 고르라면, 사실 저는 고르기가 참 힘듭니다.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하지만 문학 작품이 우리 젊은 세대들 보다 좀 더 나이 드신 세대들에게 어떻게 와닿을 지, 삶의 경험과 맥락과 결부된 해석이라는 것은 (추상적 상상과 관념으로 읽는 것과 다르게)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짚어나가는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끔 소설 중에 막장드라마(?) 같은 것도 있었는데, 어르신들 반응은 흡사 아침드라마를 즐겨보시는 시청자 입장으로 와닿기도 했어요 :)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2
JST 0.030
BTC 61014.18
ETH 3412.53
USDT 1.00
SBD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