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orgotten favorites] 우수(雨水)가 우수(憂愁)를 불러일으키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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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절기 우수雨水가 아니다. 오늘은 시원하게 내리는 빗물(우수雨水)이었다. 이제부터 장마가 시작이라고 한다. 입춘立春후 15일을 우수雨水라고한다. 대략 2월 18일에서 19일정도이다. 우수 절기에 봄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고 한다. 사실 이 시기는 아직 춥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우수는 강인한 생명력을 끌어온다. 그러나 오늘의 우수는 그 이름이 우수雨水이다. 절기이름이 아닌 장마를 시작하는 빗줄기이다. 어제 밤부터 후덕지근하면서 끈적끈적함을 느꼈다. 약간 불쾌한 느낌이랄까? 바람도 제법 세게 불어왔다. 나는 끈적끈적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외출할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 우수雨水가 시원하게 우수수수~~~



나는 장마시즌의 이 끈적함을 싫어하지만 비의 냄새와 빗소리를 사랑한다. 도시이건 시골이건 어디서건 이 느낌은 그런대로 나에게 운치와 맛을 덧붙여준다. 그렇지. 5감이 모두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끈적한 촉감을 trade-off해주는 비의 향기와 소리, 그리고 그 기분, 그래서 인생은 완벽한 것보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는 것이 더 의미를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우수雨水가 나에게 우수憂愁를 불러일으켰다.

02


[햇빛촌 – 유리창엔 비(1989년)]

오늘 이 노래가 불연 듯 생각났다. 작년에 소천하신 엄마가 아주 좋아하셨던 노래이다. 물론 생전에 자주 들으시던 곡이 아니다. 딱 그 시절 그러니까 내가 고2였던 1989년에 즐겨 들으셨던 곡이다. 우리 엄마는 그 당시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두살 어릴 때이다. 왜 이 노래가 생각났을까? 작년에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어머님과 같은 분들을 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이다. 1달 동안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어머님을 편하게 떠나보낼 기회도 갖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물론 백수였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아 하는 가정주부이다. 나는 엄마의 기사노릇을 많이 했다. 우리 엄마는 백화점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러나 내가 백화점에 같이 들어가는 것은 무쟈게 싫어하셨다. 백수아들이 쪽팔리다고 말이다. 지금 마음 한 곁에서는 그게 죄송스럽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고 사회에서 보는 성공이라는 것은 나에게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고 솔까 말하자면 그것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제로였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없이 쫓아야하는 명예와 돈과 같은 것에 보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의 무게를 견딜만한 두꺼운 정신이 아니다. 물론 나는 총각, 다시 말하자면 결혼을 해서 점점 과격해지는 여우?같은 아이들과 곰탱이? 같은 아내를 먹여살려야할 의무감은 없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 어머니께서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 가신 뒤 중환자실에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기에 어머님 곁에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현재 병원의 시스템이 중환자에게는 무조건 격리이다. 그들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무정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의 공허감은 참으로 컸다. 엄마가 나에게는 연인이었던 거 같다. 아이러니 하지? 스팀잇을 하게 된 계기도 엄마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구닥따리 스마트 폰을 썼고 사실은 전화기의 필요성이 없었다. 집에만 있으니까. 어머니는 최신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스터와 카톡을 자주 하셨다. 엄마가 떠나신 후 그 손 폰을 내가 쓰면서 스팀잇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소통을 시작하라는 이 빌어먹을 우주가 얼기설키 엮어놓은 인연이라는 무정함에 의한 강제징집이었을까? 내가 고집이 쎄니까 말이다. 사회하고 아주 담을 쌓아두었거든.

03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고생하시는 부모님 같은 환자분들을 위해서 약손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그 기회가 왔다. 부천의 사설 요양병원의 원장님께서 내게 요청하셨다. 말기 암환자 분들이 계신데 봉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그래서 오늘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하려고 한다. 폐암 말기 환자 2분과 치매 여성 환자 1분이었다. 두 분의 여성 환자분 께 약손 손쓰기를 하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가 생각났다. 중환자실에서 고생하시던 엄마말이다. 그럭저럭 1년이 지나면서 눈물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봉사가 끝난 후 집으로 오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와 향기가 1년 전 엄마 기억의 인연따라 올라오는 우수憂愁와 버무려져 지금 번호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일기를 쓰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은 마음이 무던하다.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의 해결사이다. 그리고 지금 그냥 주문을 외운다.

諸行無常 故苦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고통이다



무너지기 때문에 감당해야하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덤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죽고 매순간 살아난다. 늙어간다는 것이 잘 생각해본다면 순간순간 무너지고 그 무너진 상태에서 다시 약간 더 무너진 똑같음이 복제되어 생겨나는 것과 같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매순간의 생겨남은 그 이전의 사라진 순간과 다르다. 우리가 의식속에서 똑같다고 착각할 뿐이다. 들숨과 날숨의 사이, 꿈과 깨어 있음, 1초전의 나와 1초 후의 나, 모두가 사실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죽고 또다시 살아난다. 컴퓨터로 보는 세상만 디지털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그리고 이 몸도 디지털이다. 순간의 일어남과 순간의 사라짐, 그와 함께 우주도 일어나고 우주도 사라진다. (나의 이 표현이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쓰는 나의 사유의 흔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이미 많았고 고대 전승지혜의 마법사/수도자들은 이를 체험으로써 확인했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고 머리로만 이해한 바를 서술할 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그 순간순간을 관찰/체험하기 위해 위빳사나 수행을 한다고들 말한다. 명상이라는 관찰을 통해서 말이다. 나도 죽기 전까지 이 찰나생찰나멸刹那生刹那滅 의 현상을 관찰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소중한 인연이 사라지는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무덤덤한 내성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체험으로 얻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화를 내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그저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니다. 체험으로 얻어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다. 지혜知慧란 알고 슬기롭게 빛나는이다. 알기 때문에 환해지는 것이다. 어둠을 순식간에 밝히는 촛불과 같이,

03


Buddy Holly – Raining in My Heart

너무 무거워졌다. 학창시절 내가 즐겨듣던 노래는 이 노래다. 나는 Buddy Holly를 무쟈게 좋아한다. 미국사람들이 nerd라고 표현하지? 멍청하고 따분하고 공부만 하는 남자, 뿔 태 안경을 끼고 어리버리한 남자, 뭐 그런 인상이랄까? 나에게 있어서 Buddy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실재로 이 Buddy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대단한 뮤지션인거 같다. 불꽃같은 젊음을 살다가 불꽃같이 사라져간 영혼이다. 내가 Buddy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라밤바 때문이다. 나는 Oldies But Goodies를 엄청 좋아하는데 그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게 바로 이 영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때의 영화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노래 라밤바 보다는 그 다음 곡 We belong together를 조아라했다. 단순한걸 좋아하라는 숙명이었을까? 그당시에는 한참 프로그레시브 롹이나 하드락을 즐겨 들었었다. 그런데 이곡만큼은 아주 조아라했다. 이제는 점점 단순한게 좋아진다. 단순한 기쁨이주는 안식 말이다. 이전 포스팅에 라밤바 OST에서 즐겨듣던 Sleepwalk을 덧붙였던 적이 있다. OST에서 Richie Valens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함께 비행기 사고로 죽었던 가수 Buddy Holly의 음악은 모두가 주옥같다. 언젠가는 Buddy형의 음악을 정리할 계획이다. 나의 추억과 함께 말이다.


영화 라밤바 OST 1987(La Bamba & We Belong Together)


내친김에 듣는 Raining in My heart


Buddy의 노래를 검색하다 얻어 걸린 노래 두 개가 더 있다. 같은 제목 다른 노래일 뿐이다. 이런 날씨에 젖어들고 싶다.


Frank SINATRA – Rain In My Heart

우수(雨水)가 우수(憂愁)를 불러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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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밤바 영화보고 안타까와서 자료 막 찾아보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원곡도 감상하시죠

무척이나 우수(優秀) 글입니다. 비오는 오늘 @peterchung님의 글을 읽으니 어머니 생각이 나는군요. 어제 통화하다 툴툴댄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지 마삼. 엄마에게 아들은 영원한 연인입니다. 아낌없이 주시는 戀人

아이쿠... 여기에도 엄청 머리 좋으신 분 한 분 계셨네요... 역시나....

박학다식하면서 굉장한 필력입니다.

항상 비행기 태워주시니 쑥스럽습니다.

어머님이 좋아하셨다는 유리창엔비 저도 많이 좋아했어요
그 당신 인기가 많았던것 같아요.
이별은 항상 안타까움을 남기는것같아요..!!
약손 봉사를 하고 오셨나봐요. 피터님 에게 약손치료 받으시는
분들 몸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

01
한분은 제 지인의 어머니이신데 혈색이 아주 좋으셨어요. 치매환자시거든요. 이주 뽀야시더라구요. 이런분들은 병원에 계시면 안 되는데 지인과 형제들이 돈벌어야하니 어쩔수 없는거죠. 돈벌기위해 가족이 붕괴되버린 거죠. 사회가 찾은 고육지책이 요양병원이니 씁쓸합니다.

02
여성환자 한분은 폐암말기 때문인지라 뼈밖에 안 남았어요. 그래도 사람 손이 그리우셨나 봅니다.

03
남자분인데 폐암이 뇌까지 전이됐습니다. 7년 고생하시고 계십니다. 다리가 비틀어지셨지요. 그냥 숨만 쉬시는 거지요.

이렇게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니까 반성도 해야겠구 그저 저의 상황에 감사해야할 뿐이라고 되내이게 되네요. 사실 저는 그냥 그분들의 고통에 잠시 동참하는 정도이지요.

요즘은 늙거나 병이나면 거의 요양병원 으로 가는것 같아요.
가족들이 바쁘기도 하지만 병 수발을 거부 하는경향이 많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매 가 이세상에서 가장 불행한병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가족도 못 알아보고 죽는지조차 모르고 죽어간다는것처럼 슬픈일은 없을것 같아요.
폐암이 머리까지 전이 되고도 7 년을 살으셨다는것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들어요. 아프면 모두에게 소외되어 살아가는데
피터님 약손의 따뜻한 손길은 환자분들에게 활력과 기쁨 을 주었을
것 같아요.
한분하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수고가 많으셨어요 ^^

어머니가 세상과 소통하라고 각본을 짜두셨던것 같아요:) 라밤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치요? 보얀님도 라밤바 좋아하셨군요. 원곡보다 리메이크 버전이 더 나은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예쁜 마크다운이 눈에 들어오더니, 어머님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져요. 노래를 쭈욱 들었어요. 시나트라로 끝나는 마무리가 무척 좋네요. 잘 듣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낮부터 내리~~인 비는...ㅋㅋ
저 노래가 제가 대학 4학년 때입니다. 제가 군에 가지 않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시기라 참 힘들때 였는데, 저 가녀린 목소리가 위로가 조금은 되었습니다.

라밤바를 알다니, 역시 저랑 통하는 점이...ㅋㅋ 한문만 많이 안 쓴다면
대학 2학년때에 우리 친구 하나가 참 좋아 하는 동기 여자친구랑 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었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안 되어서 친한 친구들 합해서 7~8명이 같이 보러 간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 영화였던지라 영화 다 보고 나서 길거리에 길보드 테이프 사고 같이 맥주 마시고 놀았던 기억이 어슴프레 납니다. 아마 비행기 사고도 비가 왔던 것이 아니었나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아이들 기말이라서 공부방 아이들은 다 보내고 작은 아이 공부 봐주려고 잠깐 쉬는 시간에 이벤트 정리하고 행운 스럽게도 글을 봅니다.

비가 오니 또 추억입니다. ㅋㅋ

형님, 글탐 요거또

제 로망었죠. 여자앞에서 크~

비오는 저녁입니다. 빗소리, 포도를 가르는 자동차 바퀴소리가 요란한 밤입니다.

빗 소리, 빗 줄기는 가라앉힙니다. 그렇게 살포시 가라앉는 느낌에 안온해지는 밤입니다.

상념들 모두 가라앉는...

저는 마음 우울하거나 불안할때 자비경과 자비의기도를 읽습니다. 선생님과 나누고 싶어 댓글에 링크시킵니다.

자비경과 자비의 기도문

나누심에 감사합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는군요.

자주 읽겠습니다.

" 우수(雨水)가 우수(憂愁)" 같은 음이지만, 한자어로는 묘한 공통점이 있는 단어군요.

한자와 한글음의 글맛을 찾아들어가다 보면 새로운 풍미를 느끼게 되지요.

비오는날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창문에 맞고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도 좋고, 차에 앉아 있을 때 들리는 빗소리도 좋고, 지붕에 맞는 빗소리도 너무나 좋아요. 하지만 비오는날 대중교통은 극혐 ㅠㅠ

비를 아는 낭만 시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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