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공연후기] 경기 필하모닉, 얍 판 츠베덴, 김봄소리와 함께한 토요일 저녁의 열기^^

in #kr8 years ago (edited)

"아, 그 양반, 파워가 넘쳐서... 꽉꽉 눌러서 하고 있는데도 계속 더 강하게 하라고 사인을 주지 뭐야... 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ㅎㅎ"

어제 저녁, 공연 관람을 마치고 탄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푸념입니다. 슬쩍 곁눈으로 봤더니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경기필의 남성 첼로 연주자네요. 사실 푸념이라기보다는 힘든 경기를 잘 치러낸 운동선수들끼리 나누는 무용담에 가까웠습니다. 그만큼 어제 공연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경기필의 공연들이 쭉 그러했듯, 대단한 전투(?)였고 대단한 성공작이었습니다.

넘치는 파워와 카리스마로 경기필의 단원들, 그리고 관객들을 일거에 사로잡은 지휘자의 이름은 얍 판 츠베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네덜란드 출신으로 홍콩필을 단기간에 반석 위에 올려놓은 후, 작년에 뉴욕필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분인데, 사진만 보면 이종격투기 사범님 같다는...ㅋㅋ


얍판츠베덴.jpg

사진: 경기도문화의전당

바이올린 신동 출신(?)인 츠베덴은 줄리어드를 거쳐, 19세 때 저 유명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의 악장으로 선임된 '최연소 기록'의 소유자인데요. 그 때문인지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연습량도 많아서 여러 악단을 거치는 동안 단원들과 마찰음을 내기도 했다는 후문...

지휘자의 전설 레너드 번스타인의 권유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번에 경기필과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5번'을 200번 넘게 지휘했다는군요. 경기필 단원들이 그와의 리허설을 앞두고 살짝 쫄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연습량'에 대한 그의 악명과 '차이코프스키 5번'과 관련된 그의 명성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차이코프스키 5번은 귀에 쏙 들어오는 주제부의 멜로디(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인가? 민해경의 노래 앞 부분과 비슷해서 더 익숙한...ㅋㅋ)를 때로는 서정적인 안단테로 때로는 격렬하게 물결치는 알레그로 비바체로 표현해야 하는 드라마틱한 곡이이죠...

백문이 불여일청. 츠베덴의 지휘로 댈러그 심포니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5번 4악장입니다. 들어보시죠~


한편, 제가 관람한 고양아람누리 공연의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였습니다. 상업적으로 포장되기 마련인 '부모의 판단에 따른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20대 이후 '본인의 선택에 따른 후천적 노력'이 돋보이는 연주자인데요. 이번 공연에서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연주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5분쯤 흘렀을까? 와우... 자그마한 체구의 귀염성 있는(?) 외모와 달리 공연에 돌입하자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더군요. 리즈 시절 정경화(김봄소리의 은사이기도 한)가 보여주었던 듣는 이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두렵기조차한 마성과는 조금 다른... 듣는 이를 휘몰아치듯 감싸는 느낌이더군요. 좀더 연주에 집중하게 만드는 마성이랄까요?

이번에도 백분이 불여일청. 김봄소리가 지난 2015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바이올린 경연대회에 출전했던 당시 같은 곡을 연주한 동영상입니다. 단언컨대 (물론 제가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영향도 있겠지만) 이 때보다 훨씬 여유있고 유연하면서 열정적인, 스스로 즐기는 듯한 연주였음은 감안해 주시길...


앵콜 곡은 파가니니 카프리스 5번. 동영상은 2014년 공연 모습입니다. 이 동영상에선 왼손 핑거링이 살짝 무겁다는 느낌이 있지만, 어제는 전혀!!

파가니니 5번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폭풍 속을 날아가는 작은 새의 날갯짓'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끝나자마자 '브라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더군요.


이번 공연 프로그램 상으로는 첫곡이었지만,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경기 필하모닉이 성시연 씨가 상임지휘자를 맡은 지난 4년간 많이 안정되고 특히 현악 파트의 연주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들 하는데요. 어제 공연에서는 특히 츠베덴과의 빡센^^ 리허설 덕분인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발군의 연주력을 보여주었다는 중평입니다.

성시연 씨와의 계약 종료 이후,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모양인데, 좋은 지휘자를 만나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더욱 발전해 가기를 빕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애호가들의 관심과 사랑도 필요하겠죠.

(참고: 어제 저는 R석을 4만원에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는데요. 경기필의 공연 티켓은 대체로 R석 기준 5-6만원으로, 관현악 공연 치고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인데다, 저처럼 고양시민인 경우 고양아람누리 공연은 고양시 도서관 대출증만 가지고 있어도 20%를 할인해 준답니다. 게다가 청소년은 50퍼센트 할인이어서 어제 저랑 같이 간 우리학교 아이들은 25,000원이라는 기적적인 입장료로 관현악 관람을 R석에서 즐겼지요.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경기필! 부담없는 가격으로 많이 사랑해주시길...ㅋㅋ)

끝으로 올려드리는 동영상은 클라우스 페터 플로어의 지휘로 로테르담 필이 연주하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입니다.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커피 한잔 하면서 들으시기에 적당할 듯합니다.
스티미언 여러분~ 즐거운 주말 오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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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리스팀은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욱 힘차게 만듭니다!
지혜를 나르는 마법의 주문, 리스티모스~!!ㅎㅎ

resteemo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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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마법사의 그 격조가 느껴지는 클래식 관람 후기입니다. 클래식을 들은지가 오래군요. 커피를 한잔 끓여야겠습니다. 남은 주말 평안히.

에고... 품격, 격조... 과분한 표현에 몸둘 바를... 부스스한 머리에 파자마 바람으로 소파에 퍼질러져 앉아서 진저밀크를 홀짝이며 음악 듣고 있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ㅎㅎ 카우보이님도 즐거운 주말 오후 보내세요~~~

오랜만에 뵙는거 같네요.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그러게요. 매일 들어는 왔는데 피드를 꼼꼼히 챙겨볼 여유가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제이미님도 남은 주말 오후 즐겁게 보내십시오~~~

클래식에도 소양이 깊으시군요!

소양은요;;; 그냥 경제적으로 큰 부담없는 좋은 공연들 챙겨 보고, 보기 전에 이것저것 미리 알아보는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잡지식이 쌓인 거구요...^^;;;

오! 갑자기 떵덩어리가 생각나는건 참... 이건 또 제가 변태(존대말변태, 덩변태)인걸로 ㅋㅋㅋ 정경화의 신들린듯한 바이올린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요. 덕분에 김봄님 연주도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아~ 무슨 말씀인가 했네요... ㅋㅋㅋ 아니, 에너자이저님~ 그 일은 혼자만의, 고독과 맞서 싸우는 작업이어야 하는 거 아닙니꽈아아~~ㅎㅎㅎ 음악이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클래식 공연 후기 올렸다가 급속 냉동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니 다행이네요.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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