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D-19] 축구와 문화 그리고 사회 (13) – 축구를 통해 본 잉글랜드

in #kr6 years ago (edited)

박지성이 뛰었고 지금은 손흥민이 뛰고 있는 잉글랜드의 프로축구리그(EPL)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만큼 이 리그와 잉글랜드 축구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잉글랜드에서 축구는 노동계급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880년대에 영국에서는 꽤 조직적인 시합이 열렸고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대부분 노동자였다. 당시 시합이 열리면 모든 산업이 일시에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다.

노동자들이 축구에 빠져 일터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자본가들에겐 골치거리였다. 이 같은 현상은 20세기 초반 남미와 유럽에서도 반복됐다. 축구의 인기도는 1901년 열린 FA컵의 관중 동원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무려 100,280명의 축구팬이 경기를 보러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잉글랜드에서의 축구 인기는 노동계급의 휴식 패턴도 바꿔놓아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이 주말(토, 일)에 쉴 수 있도록 해 주중에 축구 때문에 일을 거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주말에 축구를 하는 것과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영국의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가들이 노동계층의 축구에 대한 열망에 두 손 두 발을 든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쯤되자 잉글랜드의 상류층도 축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축구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 프로리그를 탄생시켰다. 지금과 같은 프로리그는 아니지만 이는 돈을 받고 축구를 하는 선수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1885년 쯤의 일이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1888년 풋볼리그가 창설되었고 여기에 12개 구단이 참가했다.

이때 축구리그의 기본 틀이 갖춰졌고 프로선수 보상과 규제 등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까지 프로리그라는 것은 오직 잉글랜드에만 존재했다. 따라서 잉글랜드 프로리그는 향후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가 벤치마킹을 해야 하는 그런 리그가 됐다. 잉글랜드 프로리그는 초반에는 선수들의 연봉을 제한하는 등 돈에 의해 운영되는 분위기를 막고자 했다. 온전히 스포츠맨십이 발휘되는 스포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사회주의 방식 비슷한 것이 잉글랜드 프로리그에 적용되었는데 스포츠 역사가인 빌 머리는 이에 대해 “이런 방식이 세계에서 가장 균형이 잘 잡히고 효율적인 운동경기 대회를 창조한 것도 사실”이라고 논평했다. 축구는 단순한 오락 이상이었다. 노동자들의 여가문화와 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의 ‘문명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식민지에서는 축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식민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축구가 발전했다. 축구를 당장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도 영국인이 스쳐지나간 지역에는 대부분 축구 문화가 남게 됐다. 그렇기에 영국인들은 축구의 전도자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은 이들이 국제축구사회에서 고립되도록 했다.

1930년대에 잉글랜드에서 축구의 인기는 급등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축구도박이 흥왕하기 시작했다. 축구 도박이 인기를 끌자 프로리그는 이를 막으려고 일정을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보이며 도박과 축구의 연을 어떻게든 끊으려고 애썼다. 당시만해도 축구와 돈을 연결시키는 것은 타락한 일도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허사였다. 축구 도박은 점점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축구 도박은 1950년대에 관련 산업 종사자수가 10만 명으로 증가해 잉글랜드 내에서 일곱 번째로 큰 산업으로 자리했다.

1966년은 잉글랜드 축구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였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 만연했던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챔피언이 됐다. ‘축구 종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잉글랜드가 자존심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1966년은 북한이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해였다. 당시 북한은 8강에서도 포르투갈에 3-0으로 앞섰는데 이후 5골을 허용하고 3-5으로 석패했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북한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전까지 보수적이면서 가부장적이었던 영국 축구는 1966년 우승을 계기로 개방적인 리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프로 선수들은 노예계약을 맺는 등 불평등한 환경 속에서 일했는데 이후 개혁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축구 스타들이 팝스타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영국은 달랐다. 일반 노동자보다 임금이 적은 선수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으로 잉글랜드 축구 내부에는 대혁신이 일었다. 그동안 일요일 경기는 금지되었던 관습이 있었는데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요일 경기가 열렸고, 축구 도박은 더욱 성행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임금은 수직 상승했다.

월드컵보다 자국 리그를 중시하는 경향도 조금씩 바뀌었기는 했지만 자국리그를 중시하는 경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축구 종가’로서 자존심의 표현일지 모른다. 1966년 월드컵은 영국 축구의 혁신을 이끌었지만 한편으로는 훌리거니즘이 만방에 열려진 계기가 됐다.

훌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등장했지만 영국은 이를 애써 무시했는데 1966년 월드컵 당시 문제점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영국은 1970년부터 축구장에 담장을 세웠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던 것이다. 훌리건 문화는 영국 축구 전반에 확산했다. 머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팬들은 처음에는 골을 축하하러 경기장에 갔으나 나중에는 상대방을 약 올리러 갔으며 때로는 자기 팀이 지고 있을 때 경기를 중단시킬 목적으로 가기도 했다.”

축구가 점점 훌리건 문화와 융합하는데 영국 언론도 한 몫을 했다. 영국 언론은 축구를 다룰 때 점점 황색언론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전통주의, 훌리건 문화, 자존심 등이 합해 영국의 축구에는 인종차별주의가 팽배해졌다. 1970년대에 그런 현상은 극에 달했다.

이에 반대 운동이 일어났는데 지식인을 자처하는 젊은 축구 팬들이 축구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부패, 훌리거니즘 등을 몰아내려는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황색언론에 대한 대응으로 스스로 잡지를 만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이는 1980년대 이후 잉글랜드에 새로운 축구 문화가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운동의 영향으로 1985년에는 축구 서포터 협회가 발족해 거친 팬들을 교육하고 즐기는 팬을 만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화 작업의 노력은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경기에서 리버풀 팬이 39명의 사망으로 이끌려진 폭동의 주범이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당시 잉글랜드 클럽팀들은 1990년까지 모든 유럽 대륙에서 열린 대항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1990년대에 영국 정부는 축구와 관련된 모든 범죄의 소탕에 매진했다.

정부의 노력으로 훌리거니즘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 명맥은 계속 이어졌다.

축구계의 개혁의 바람을 타고 영국에는 새로운 축구 경기장이 속속 건설됐다. 새 경기장 또는 리모델된 축구장으로인해 티켓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이후 축구 문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많은 축구 팬들이 경기장이 아닌 맥줏집에서 축구를 보는 문화가 팽배했다.

축구 개혁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가 세계적인 리그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새 경기장, 높은 TV중계권료가 스타들을 EPL로 이끌었고 이 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가 됐다.

이런 현상은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부자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리그의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파산하는 구단이 생겨났고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자존심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를 운영하는 잉글랜드는 2018년, 2022년 월드컵 주최 후보국으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EPL은 그럼에도 건재하다. EPL 경기는 전 세계 212개국에서 중계되며 6억4300만 가구가 이 리그의 경기를 시청하며 그 총수는 47억 명에 이른다.

잉글랜드 축구는 글로벌화 되었음에도 대표적인 선 굵은 플레이를 지향함이 변하지 않았다. 킥 앤 러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직역하면 차고 달리는 플레이다. 킥 앤 러시의 빠른 공수전환이 잉글랜드 축구의 특징이다.

스포츠 둥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축구가 잉글랜드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잉글랜드인들이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기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잉글랜드는 날씨가 매우 안 좋기로 유명하다. 1년 내내 기온이 낮고 흐리며, 안개가 자주 끼고 수시로 소나기가 내린다. 그래서 잉글랜드인들은 가끔씩 해가 날 때마다 일광욕을 즐긴다. 이러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서 선수들은 강인한 육체를 만들어야 했고, 비로 인해 질퍽거리는 땅과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가 잘 안되는 곳에선 짧은 패스보단 긴 패스가 유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잉글랜드인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강인함과 우직함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킥 앤 러시는 잉글랜드인들의 이러한 성향과도 잘 어울린다.”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선수는 보비 찰튼이다. 그는 영국 대표로서 49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서 249골을 기록했고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선수다.

역대 2위 선수는 보비 무어, 스탠리 매튜스, 고든 뱅크스 중 한 명인데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

[거꾸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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