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D-26] 축구와 문화 그리고 사회 (5) – 축구를 통해 본 한국인의 의식I

in #kr6 years ago (edited)

한국인의 민족성, 사회 분위기를 축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축구 자체에도 드러나지만, 국가대표 축구에 대한 국민의 열광 그리고 언론의 보도내용을 통해 대한민국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사람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축구는 한국 사회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국 최고의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SI)의 축구 전문기자 그랜트 월은 자사의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바 있다.

"이제 나를 명예 한국계 미국인으로 불러달라. 한국에 머무른 지 32일째지만 축구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한국이 주는 놀라움은 끝이 없다. 오늘 횡단 보도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데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씌워줬다. 지난주에 한 동료 여기자는 피곤함에 지쳐 지하철 안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옆에 앉은 한국 여성에게 안마를 받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한국 축구팀의 경기 스타일을 사랑한다. 이들은 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이 뛰어나고 강인하다. 무엇보다 수비로 전환하는데 뛰어나다. 심판이 봐줬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홈그라운드 이점이라는 말이 있는 거다. 한국은 4강전에 진출할 만 했다. 그러니 유럽인들은 그만 징징대라. SBS 방송의 축구 해설자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경기를 오락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한국이 골을 넣으면 서로에게 고함을 쳐대며 8강전에서 한국이 승리했을 때는 심지어 울음까지 터뜨렸다. 떠들썩하지만 사랑스럽다. 광장을 가득 채운 한국인들이 경기가 끝난 뒤 앉았던 깔개를 치우는 것을 사랑한다. 한국 축구 애호가들의 붉은 악마 필승 코리아 티셔츠를 사랑한다."

그랜트 월 기자는 한국인의 속사람을 보게 됐다. 그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8년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면 그랜트 월의 ‘한국 사랑’은 여전하다. 트윗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많은 사람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좋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과 지하철에서 인터넷 연결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 준 나라이며 정말로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이다.”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민족이었다.

이웃집 숟가락 수도 알 정도로 '이웃=가족'인 민족이었다. 그러나 차츰 서양의 개인주의가 스며들면서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안타까운 사회에 살게 됐다. 2002 월드컵은 이웃들과의 벽을 허무는 좋은 기회가 됐다. 당시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자 온 국민은 기뻐했고 이웃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려고 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의 아파트촌 주민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주차장에 모여 음식과 음료를 나누며 조상이 했던 것처럼 이웃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저게 우리의 본 모습이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전에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옛날에 풍년을 기뻐하며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또 많은 사람은 아파트 문들을 열어젖히고 한국을 응원했는데 이는 전에 없던 모습이었다. 미국의 한인 인권운동가는 이에 대해 "조건 없는 감격이 있으니까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렸고 아파트 문도 열렸다고 본다."며 "이는 정말 바람직하다"라고 설명했다.

마음의 문이 빨리 열린 가깝고도 먼 가족이 있었는데 바로 북녘의 동포들이었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이탈리아의 경기를 1시간 분량으로 편집, 방영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선중앙TV는 중계 중 “남조선 팀이 54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뒤 한동안 참가하지 못하다 86년부터 5회 연속 출전해 1승도 건지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미국팀과 비기고 폴란드·포르투갈전을 승리로 이끌어 선수들의 사기가 높아졌다”며 다소 파격적인 소개를 했다. 이는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민족의 단합된 모습이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가 됐다.

축구를 통해 볼 수 있는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인들은 국내 리그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유난히 국가대항전인 월드컵에 목을 매는 것이 대표적인 부정적인 면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에 최초의 메달을 안겨준 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역적이 된 홍명보는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한국축구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국가대표팀 경기는 인기가 무척 높지만, 프로 경기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형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다. 그 나라 축구가 발전하려면 대표 축구보다는 클럽 축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

평등의식이 자극돼 이러한 현상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서양인(미국인)들한테는 우리가 안 돼’라는 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으려고 한다. 이는 한국인의 평등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평등주의는 남과 꾸준히 견줘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의 성공을 부러워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욕을 자가발전시킨다”고 했다. 한국인이 미국을 배우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심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역시 사회학자인 강준만 교수도 명저서 ‘한국인 코드’에서 “유럽 사람들은 상황이나 사정 또는 환경이 바뀌면 그에 맞추어 자연스레 하향하지만, 한국인은 사정이나 상황이 달라졌다 해도 하향은 끝내 하지 않으려 하며, 어찌할 수 없이 하향하게 될 때는 처참하고 처절한 심경에 빠지고 만다”고 한국인의 평등의식을 설명했다.

한국 축구 팬들이 국내 축구보다 국가대표 축구에 더 관심을 쓰는 이유는 위에서 쓴 내용처럼 평등주의 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축구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소수의 팬들이 있다. 지금하는 말은 그들을 제외한 팬들에 대한 말이다.

서양인들의 머릿속에는 아시안들을 얕잡아 보는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평등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올림픽 수영에서 메달을 독차지했을 때 서양인들은 중국의 피땀 어린 노력은 무시한 채 약물 복용 의혹을 제시하면서 그들의 성공을 평가 절하 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사실로 드러나긴 했지만, 중국의 일취월장에는 단순히 약물 복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 없이 그러한 성공을 이뤄내지 못했었다는 것을 서양인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하자 일부 서양 언론들은 '약물 복용'을 운운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한국을 바라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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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 October 2012 / Source: http://ypa.ir/2013-01-23-19-16-46/item/523-ايران-1-كره-جنوبي-0-مقدماتي-جام-جهاني.html
Author: ypa.ir

누가 뭐라고 해도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얻은 것은 자신감이었다. '아시안은 축구에서는 안 돼'라는 사고방식이 조금씩 사라졌고 우리도 선진 축구를 구사하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축구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서양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축구의 문화사’라는 책을 쓴 이은호는 저서에서 “외국의 지인들로부터 한국에 축구는 있지만, 그 문화는 없다는 뼈 있는 지적을 자주 듣곤 한다.국가대표팀 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면서 정작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라며 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대한민국 정부의 시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축구의 역사’의 저자인 빌 머리는 “(한국은) 국가적 이익이 항상 클럽팀의 이익보다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월드컵이 열릴 때면 클럽팀들은 국가대표팀에 우수한 선수들을 장기간 차출당했으며, 결과적으로 국내리그는 힘겹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국가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고 썼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에서 “선진국과의 비교 중독증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늘 더욱 높은 곳을 향하여 따라잡자는 전투력을 배양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적 자기 모멸 또는 자학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큰 성과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계속 자존감 투쟁에 일로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축구는 바로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선진국을 위협할 만한 팀을 만들었지만, 국내 축구리그는 형편없는 것이 현실이다. 2002 한ㆍ일 월드컵 축구가 끝난 후 한국 프로축구리그(이하 K-리그)는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말 경기 총관중 수가 15만 명을 훌쩍 넘을 때가 대부분이어서 "이렇게 가다간 유럽에서의 축구 인기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한 시즌도 채 가지 않았다. 몇 달도 안 돼 경기장에 빈자리가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축구 열기 몰이를 중단했다. 1면부터 6~7면까지를 축구 기사로만 채우던 스포츠 신문들은 야구여 나의 품으로라고 외치며 야구에만 집중된 또 다른 불균형 신문을 독자 품에 안겼다.

강준만 교수의 지적처럼 국내리그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따라잡는 일을 하는 리그로 여겨지지 않았기에 한국인은 외면했다.

[거꾸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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