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D-24] 축구와 문화 그리고 사회 (7) – 축구를 통해 본 미국의 자본주의

in #kr6 years ago (edited)

미국에서 축구가 주요 스포츠로 발전하기 어려웠던 경기 외적인 요소는 분명히 있다. 스테판 지만스키와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라는 책에서 “축구와 야구의 조직은 그것이 탄생한 사회를 반영한다”고 했는데 이 책 내용을 토대로 미국 사회가 왜 축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윤추구의 문제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돈을 사랑하는 나라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19세기에 쓴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나는 미국과 같이 돈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토크빌은 또한 “종교적인 신념으로 친구, 가족, 고향을 등지고 아메리칸 대륙으로 온 사람들은 그러한 정열을 부를 쫓고 즐김과 평안을 얻는 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9세기에 감지된 이러한 미국의 분위기는 20세기 그리고 21세기에도 이어졌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각 지역을 돌아본 프랑스인 앙드레 지그프리드는 미국이 물질적인 사회이며 사람보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더 익숙하다고 지적했고 USA 투데이지는 2006년 7월 4일 자에서 미국인들이 21세기 들어 더욱 물질주의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How are we to live)’에서 “너를 부유케 하라”는 구호를 들고나온 레이건이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의 부에 대한 추구는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부자 리더를 쫓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축구는 돈벌이가 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미국에서는 돈을 벌기 어려운 종목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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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미식축구 경기 장면] Description: Pittsburgh Steelers vs New England Patriots at Heinz Field, Pittsburgh, Pennsylvania, USA /Date: 25 September 2005 /Author: Bernard Gagnon

경기의 중간에 쉬는 시간이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스포츠를 보자. 대부분 쉬는 시간이 많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풋볼, 야구, 농구를 보자. 모두 적어도 4번의 휴식 시간이 있다. 풋볼과 농구는 4쿼터로 나누어지고 야구는 9회로 펼쳐진다. 휴식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광고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고 구단주들의 주머니를 두툼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야구는 최소한 18번의 TV나 라디오 광고를 ‘정당하게(?)’ 내보낼 수 있고 투수가 바뀔 때도 광고를 할 수 있다. 야구가 오랫동안 미국 스포츠 ‘넘버1’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풋볼은 경기의 다이내믹한 면 때문에 야구의 인기를 넘어서기 시작했는데 4번의 휴식 시간 외에도 각종 TV 광고 타임이 있어 TV 중계에 적합한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미디어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은 지난 1999년 1월 미국 프로풋볼(NFL)의 내셔널컨퍼런스(NFC)에 6년 동안 중계하는 대가로 44억 달러(약 4조2천억 원)를 지급했다.

머독이 운영하는 폭스(Fox)사는 또한 지난 2000년 9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6년 동안 25억 달러를 주고 토요일 경기, 올스타게임, 디비전 시리즈, 리그 챔피언십 경기, 월드시리즈의 중계권을 따냈다. 이 밖에 폭스사의 지역 케이블 방송은 각 지역팀과 중계권 계약을 맺어 구단들의 구단 운영을 도왔다. 물론 이는 단순히 돕는 차원은 아니다. 폭스와 같은 스포츠 방송은 야구 및 풋볼 중계를 통해 얻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러한 거액 계약을 맺는 것이다.

미국에서 방송사들이 스포츠 중계를 위해 지급하는 액수는 프로그램 예산의 15%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방송사들은 두 가지 이유로 스포츠 중계권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광고 수익이다. 슈퍼볼의 광고 수익을 살펴보면 미국 최고의 스포츠 행사에 TV 광고 수익은 매년 크게 증가했다. 시청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약 4천6백만명의 스포츠 팬이 지켜봤던 1971년 슈퍼볼의 전국 TV 30초 광고비는 7만2천 달러였으나 10년 후에 열린 15회 슈퍼볼의 30초 광고비는 무려 27만5천 달러로 뛰었고 이때부터 광고단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약 1억2천7백만 명이 시청한 1986년 슈퍼볼의 30초 광고비는 50만 달러까지 치솟아 올랐고 1991년에 80만 달러가 되더니 1996년엔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1년에 역대 최고치인 230만 달러로 치솟아 올랐던 슈퍼볼 30초 광고단가는 2002년에 잠시 주춤 했다가 9.11 테러와 경제난으로 200만 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2003년에 다시 210만 달러로 책정되면서 200만 달러 시대를 이어갔다.

방송사들이 단순히 광고비 때문에 스포츠 경기를 유치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출과 수입을 따지면 손해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여전히 인기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따내려는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장시간 채널 고정을 하도록 한 후에 다른 주력 프로그램을 선전하기 위해서이다.

야구 경기의 시간이 보통 3시간 안팎이고 풋볼 경기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타프로그램을 선전하기에 아주 좋다는 것도 방송사 주머니를 여는 주된 이유다.

김영석은 이를 스포츠 문화와 미디어 문화의 결합 현상 또는 상호의존적인 공생(symbiosis)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스포츠가 텔레비전과 결합하면서 텔레비전의 스포츠 방송은 단순한 스포츠에 관한 객관적 뉴스 보도가 아니라 스포츠 그 자체가 되었고, 스포츠에 대해 텔레비전은 그 존립의 근거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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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LS 경기장의 전경] Description: Pre-game at Qwest Field in Seattle, USA in April 2009. The ground is home to the Seattle Sounders of Major League Soccer. /Date: 11 April 2009 /Author: Luis Antonio Rodríguez Ochoa

미국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에는 어김없이 투자하는 나라다. 그런데 축구는 그 이윤 추구를 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미 기업가들은 생각한다.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후반 각 45분씩을 치르는 경기를 4등분으로 나누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이는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제안이다. 전후반 사이의 휴식 시간 동안 광고를 해야 하는데 이것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휴식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미국 내에서도 이것이 항상 문제가 된다. 경기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미국 축구리그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방송사와의 상호의존적인 공생이 어렵다는 것이 핸디캡이다.

축구는 또한 구단주들이 부가 수입을 올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 야구의 구단주들은 관중이 경기장에서 돈을 많이 쓰게 할 수 있다. 1회부터 9회까지 총 18번 자리를 떠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식음료 판매로 꽤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다. 반면 축구는 자리를 뜰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 여기에 축구장은 야구장과는 달리 “음식과 음료가 관중석으로 배달되지 않”는다. 축구는 돈벌이를 위한 스포츠가 될 수 없었기에 미국의 자본가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국에서 스포츠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머독이 메이저리그 축구(MLS)에 투자를 하지 않고 대신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10억 달러에 매입하려고 했던 것은(실패로 끝났지만) 미국 축구 시장의 현실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단 팬층이 넓지 않고 축구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고 여기에 미래를 위해 거액을 쓰기에는 경기 운영 방식이 미국의 자본주의 방식에 맞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 축구 저변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전 세계 두 번째 프로축구리그가 탄생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지만스키와 짐벌리스트에 따르면 야구의 내셔널리그 구단들이 1894년 전미프로축구리그(American league of Professional football)를 창설했다.

야구 구단주들이 축구리그를 창설한 이유는 겨울철에 놀고 있는 야구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면 “야구에 계속 마음을 묶어 두는” 일이 가능한 것도 이들이 축구리그를 시작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했다. 어떤 경기에는 당시로써는 많은 8천 명이 모였다.

그러나 “볼티모어 구단이 영국 프로선수들을 수입한 것에 대해 미 정부가 조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즌이 중단”됐고 프로축구리그는 사라졌다. 1920년대에도 미국축구리그가 창설돼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이 리그는 1930년대에도 이어졌지만, 문제는 당시 불어온 경제공황으로 리그를 더 운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축구 전문가는 그 일만 없었다면 축구는 풋볼의 인기를 능가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당시 축구의 관중 동원은 미식축구를 앞섰다. 이후 1990년대까지 ‘지속하는’ 프로리그가 세워지지 않았다. 미국 축구 리그(ASL)나 북미 프로축구 리그(NASL)가 있었지만, 전국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과거 펠레, 베켄바우어, 크루이프 등을 앞세워 축구 팬들을 축구장으로 끌었지만, 이는 단발성 인기였다. 미국은 팬층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점점 미국식 자본주의에 묻힌 축구는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가 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축구가 미국의 주요 스포츠 대열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이유로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가 있다. 보통 축구는 노동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이지만 미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면서 ‘풀뿌리 스포츠’가 되지 못했다. 프랭클린 포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축구는 히스패닉계 이민자를 제외하면 연수입 5만 달러 이상의 가정에서 주로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중산층 이상의 스포츠로 여겨지다보니 계층간의 갈등이 심했던 미국 근대사에서 노동자들의 미움을 샀다. 80년대에도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 양상이 첨예화되면서 ‘문화 전쟁’이 일기 시작했고 특정 스포츠나 문화가 적당히 섞이지 못하고 계층과 이념에 따라 좋아하는 분야가 확연히 구분되면서 축구는 더더욱 설 땅을 잃었다.

따라서 특정 계층이 좋아하는 스포츠는 반대 계층에서 신랄하게 비난했는데 축구는 바로 그 타깃이 됐다. 축구를 공격하는 일에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축구는 그로기 상태가 됐다.

USA 투데이지의 톰 위어 기자는 “축구를 싫어하는 것이 가장 미국적인 행동이다”라며 독자들에게 축구를 미워할 것을 종용했고 유명한 스포츠 토크쇼 진행자인 짐 롬은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런 경기가 TV에서 중계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反)축구 대열에 섰다.

정치인 잭 켐프도 대표적인 축구 반대론자다. 프로미식축구(NFL) 프로 보울(올스타)에 7번이나 뽑혔던 풋볼 쿼터백 출신의 켐프는 1971년부터 89년까지 뉴욕주의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데 그는 1996년에는 밥 돌의 러닝메이트로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정계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켐프는 1986년 미국의 축구 월드컵 개최 신청을 앞두고 "미식축구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이지만 축구는 사회주의자들의 운동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 스포츠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월드컵 주최를 반대한 바 있다. 미국은 사회주의라는 굴레가 씌어지면 절대 클 수 없는 나라다. 피터 싱어는 이에 대해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명칭은 계속해서 하나의 욕설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앨런 바라(Allen Barra)는 “OK, 축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쌀도 가장 있기있는음식이다. 그래서 뭐? 아마 다른 나라들은 풋볼, 농구, 야구 리그를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하면 축구보다 더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식 예외주의와 세계화 거부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절대 축구가 자리를 잡을 수 없는 나라일까? 미국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은 자녀가 축구를 하도록 배려하기 때문에 여건이 갖춰진다면 축구가 도약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포어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리틀 야구에 참여한 어린이와 축구를 한 어린이를 비교해 보았더니 축구가 130만 명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 히스패닉은 자녀를 많이 낳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인구 중 비율이 20%, 30%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에서 히스패닉이 속속 주류사회로 진출하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도 인기 스포츠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의 영향력은 인구수에서 나타난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와 경제가 이들의 움직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총인구는 2016년 현재 약 3억2천만 명이고 이중 히스패닉은 전체 17%에 해당하는 약 5천500만 명이다.

여기에 서류미비자(소위 불법체류자)들의 숫자도 상당수라 히스패닉 인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늘어날수록 축구의 인기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를 끈다면 순전히 히스패닉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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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8년 임명한 히스패닉계 주요 공직자들] Description: President Clinton's Latino Appointees (1998) / Date: October 1998 / Source: http://clinton4.nara.gov/WH/New/HHM/appointees.html /Author: White House Photographer

[거꾸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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