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D-30] 축구와 문화 그리고 사회 (1) – 축구를 통해 본 미국의 문화충돌

in #kr6 years ago (edited)

메이저리그 야구(MLB)가 미국 사회를 투영하는 것처럼 축구는 각 대륙이나 국가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다른 대륙이나 국가에서는 축구의 인기가 최고인데 반해 미국에서는 축구 인기도가 너무 낮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도 그랬고 2006 독일 월드컵이 시작돼 전 세계가 들썩였을 때도 미국만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과 2014년에는 조금씩 그 인기가 높아졌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었고 다른 스포츠에 비하면 관심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지만 괄목할만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 탈락이라는 결과를 냈음에도 미국 내에서 축구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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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Info: Date - 19 May 2012, 21:28 / Source - RA1_6425 /Uploaded by Yoda1893 / Author - rayand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미국 문화와 사회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충돌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미국 내에서 축구의 낮은 인기도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의 중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과거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인 ESPN은 ESPN 본방송이 아닌 ESPN2에서 주로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곤 했는데 이것까지는 별문제 없었지만 경기 내내 다른 종목의 경기 결과와 최신 스포츠 소식이 하단 자막으로 나오는 것은 팬들의 눈을 괴롭혔다. 미국 스포츠 팬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진 스포츠이지만 여전히 언론들 사이에는 ‘인기 없는 스포츠’로 여겨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야구나 풋볼 경기 중계 시 이런 일이 있다면 방송사 전화는 불통이 될 정도로 항의전화가 빗발쳤을 것이다. 미국의 축구팬들은 ESPN이 월드컵 전 경기를 생중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왜 이렇게 축구 인기가 낮았을까. 사회와 문화의 분위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축구 인기 낮았던 이유

'축구가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How Soccer Explains the World)'을 쓴 더 뉴 리퍼블릭지의 편집장인 프랭클린 포어는 미국인들이 축구를 싫어하는 이유로 '세계화'를 들었다. 포어는 "축구는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전통을 버리고 세계 다른 지역의 문화를 추종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National Pastime: How Americans Play Baseball and the Rest of the World Plays Soccer)'의 저자인 경제학자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축구가 명예를 강조하기 때문에 돈벌이를 생각하는 미국의 부자들에게는 큰 매력이 없는 종목이라 성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짐벌리스트는 '축구 클럽의 경영에 관심 있는 사람은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돈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어야 한다'는 유럽인들의 종교에 가까운 축구신봉에 부담을 느낀 미국 거부들이 축구 투자에 주머니를 열 수 없다고 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지역 일간지는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마크 피셔에게 '왜 미국인은 축구를 싫어하나'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제안했고 피셔는 이에 응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피셔는 "미국인들은 축구를 10세 이하가 좋아하는 스포츠로 여긴다. 또한 미국의 성인들은 축구를 드라마가 없는 지루한 경기로 생각하고 있고 축구에서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램버스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스티븐 패터슨이 잭슨 선(Jackson Sun)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미국인이 축구를 싫어하는 이유를 '동점으로 끝나도 괜찮은 시스템, 타임아웃이 없는 것, 여성의 스포츠로 여겨지는 것,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스포츠라는 이미지' 등으로 들었다.

'오프사이드: 축구와 미국의 예외주의(Offside: Soccer and American Exceptionalism)'라는 책에서는 축구가 미국만의 독특함이 없기 때문에 인기를 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정치학 교수 스티븐 헬러맨은 "미국은 크리켓 경기를 모방해 야구를 만들었고 축구에서 영감을 받아 미식축구로 발전시켰다. 미국은 이렇게 자국만의 독특한 경기를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세인트 폴 파이오니어 프레스지의 톰 파워스는 "국토안보부는 지역별로 월드컵 시청률을 조사한 후에 지나치게 높은 수치가 나오는 지역을 급습하면 서류미비자를 여러 명 체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인들이 축구를 싫어하는 상황을 선동적 비유로 표현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은 축구가 인기 스포츠로 정착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이 학자들과 축구 전문가들의 결론이었다. 이처럼 축구의 인기도 및 축구 스타일은 사회 분위기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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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Info: Image of inside Qwest Field from the Southwest corner during a MLS Seattle Sounders FC Match. Date 22 August 2009 Source https://www.flickr.com/photos/art-sarah/3846064489/ Author- ArtBrom

그런데…

2008년쯤인가 이런 내용으로 미국 축구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에 한국의 한 네티즌은 “미국은 2012년까지 프로팀이 19개팀으로 확장될 예정이고, 참여를 희망하는 팀들도 6~7군데 이상일 정도로 많다. 아마도 지금이 잠재적인 스포츠에서 돈이되는 스포츠로 전환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 토론이 있은 후 미국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 네티즌 말처럼 실제 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미국의 축구 리그인 MLS는 구단 수가 18개로 늘어났다. 18개 팀 중 절반은 축구 전용 구장을 사용했다. 또한, 2017년 12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7%가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의 3%에 비해 무려 4%가 증가한 수치다. 미식축구는 2013년의 39%에서 37%로 소폭하락했고 농구는 12%에서 11%, 야구는 13%에서 9%로 인기도가 낮아진 반면 축구는 급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지는 “몇 년 후에 다시 조사한다면 축구는 야구를 초월할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사회의 변화에 기인한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미국인 중 1%만 축구를 좋아한다고 답했지만 18세부터 34세의 응답자 11%는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고 답했다. 또한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을 보인 응답자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포츠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미국 사회의 변화를 말해준다. 일단 미국 사회는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히스패닉계가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미국에 거주하는 히스패닉 인구는 무려 18%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 세대는 예외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고 있고 유럽 축구를 보며 축구의 매력에 빠지고 있다. 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유럽 축구를 생방송으로 관전할 수 있어 세계적인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원할 때 볼 수 있고 유투브 등을 통해 녹화된 내용을 돌려볼 수도 있게 된 것이 축구의 인기가 높아진 결정적인 이유다. 또한 축구 비디오 게임이 미국 젊은이들이 축구에 매료되게 했다.

미국 사회가 변해 축구를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났고 축구를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남으로 사회에 또다른 변화를 줄 가능성이 커졌다. 축구가 전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처럼 미국에도 비슷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미국에서 예외주의가 글로벌주의를 만나 전쟁 중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40-70대는 예외주의에 더 영향을 받고, 10-30대는 글로벌주의에 더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젊은이들은 노래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열광하지만 나이든 관객(특히 남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는 표정을 짓는다. 예외주의와 글로벌주의가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미국의 문화충돌 그리고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계속]

[거꾸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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