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D-23] 축구와 문화 그리고 사회 (8) – 축구를 통해 본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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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HINDIDINHO /Date: 5 March 2012 /Source: http://soccer.ru/gallery/49007 /Author: Степиньш Ольга

'오렌지 군단'이라는 별칭을 가진 네덜란드는 축구만 보면 한국과 상당한 긴밀한 관계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 축구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접목한 이후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으로 화란 출신 축구 지도자의 계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한국과 네덜란드가 궁합이 잘 맞다기보다는 네덜란드 지도자들은 선진 축구를 하는 다른 나라의 감독보다 무언가 뛰어나 그 어디를 가도 성공을 거둔다고 분석하는 것이 맞는 해석일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중 화란 출신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맞긴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4개국이었다. 한국(아드보카트), 호주(거스 히딩크), 트리니다드&토바고(레오 베인하커), 그리고 네덜란드(마르코 반 바스텐)가 네덜란드 출신 감독에 축구 운명을 걸었다.

네덜란드 감독협회장인 얀 레커는 UEF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본선에 올려놓은 조 본프레레도 네덜란드 출신이다”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레커는 네덜란드가 세계축구에 준 영향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는 “유소년팀 감독들을 포함한 총 93명의 네덜란드인 감독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하지 못한 감독들 외에도 대표팀 감독이 있는데 옐레 고즈(에스토니아), 헹크 위즈만(아르메니아), 아징 그리버(아루바), 얀 브라우워(잠비아)가 그들이다”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감독들은 어떻게 세계 축구 곳곳에서 활약할 수 있었을까. 이는 1974년 월드컵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토탈 사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수비 위주의 축구가 대세였던 당시 수비수가 공격수 역할을, 공격수가 수비수 역할을 맡는 토탈 사커의 개발은 네덜란드 축구의 특화로 인정 받았다.

레커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당시 고유의 훈련 방식을 고안해내 축구 지도자들을 해외로 파견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인들이 고도의 축구지도 기술을 보유한 것 외에도 그들의 기질은 ‘화란 축구의 세계화’에 중요한 요소였다. 다음은 레커의 설명이다.

“바다와 접한 나라의 특성상, 오래전부터 네덜란드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을 개척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 곧 잘 적응하고, 그들의 언어도 사용한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창의성 또한 풍부하다.”

적절한 설명이다. 실제 히딩크가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에서 기자들과 영어와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필자는 목격했다. 영어권 기자와 스페인어권 기자가 동시에 달라붙어도 히딩크는 어려움 없이 질문에 답변을 했다. 히딩크는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 5개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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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군단] Date: 16 June 2006 / Source: StuttgargoalRobin / Author: Dan Kamminga from Haarlem, Netherlands

네덜란드인들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는 “코스트 하트 포르 더 바트 애트(Kost gaat voor de baat uit)” 정신이 그들에게 깃들어 있다고 했다. 이는 영어로 ‘Cost comes before profit’인데 이익을 내기 전에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이익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아드보카트의 경우 조심스러운 축구를 좋아했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한국이 2-1로 앞서나가자 안전운행을 택했다. 하지만 대체로 네덜란드인들은 모험을 좋아하고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히딩크의 경우 2002 월드컵이 열리기 전 유럽의 강호와 자주 대결을 벌여 0-5로 반복해서 패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는 담담히 “창피한 일이 아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 언론 담당관이었던 허진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타 네덜란드 사람이 듣기에는 좀 민망할지 모르지만 사실 네덜란드인들은 돈에 무지 까탈스런 사람이자 깊이 있게 사귀기가 힘든 국민성을 갖고 있다. 아마도 해양민족의 특성상 그런 모양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까탈스러운 것이고 좋게 보면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 네덜란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치 페이(Dutch pay)’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울대 인류학과 출신인 정은령 기자는 이를 인류학적으로 흥미롭게 풀었다.

“‘철저한 계산’ ‘숫자를 믿어라’는 네덜란드인에게는 종교적 뿌리가 있는 사고방식이다. 네덜란드는 16∼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의 와중에 열렬한 칼뱅주의의 깃발 아래 섰다. 칼뱅주의는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일해서 번 돈을 최후의 한푼까지 철저히 잘 계산해 필요한 데 지출하는 것을 진정한 신교도의 자세로 강조했다. 물보다 낮은 땅에 살며 수리관리를 해야 하는 생존여건도 네덜란드인들이 ‘숫자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에 힘입어 회계학이 발전했다. 1602년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장부정리 방식은 오랜 세월 ‘회계의 전범’으로 꼽혀 왔다. 네덜란드 고교생들은 지금도 선택과목인 경제에서 회계를 배운다.”

네덜란드어에는 ‘누(Nu)’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나우(Now. 지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이 중요하다는 사고 방식이 그들에게 있다. 히딩크도 그랬고 아드보카트도 비슷했다. 과거 경력보다는 현재 나의 시스템에 맞는 선수가 누구이고 지금 최고의 컨디션을 가진 선수가 누구인가가 그들에게는 중요하다.

홍명보는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서 히딩크가 황선홍과 최용수와 같은 기존의 스트라이커를 제쳐두고 어린 설기현을 주전으로 훈련시키고 선발로 기용한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네덜란드인의 ‘누(Nu)’ 사상은 축구에도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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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Scotland versus Holland match at the 1996 European Championships, played at Villa Park / Date:
Source https://www.flickr.com/photos/34517490@N00/2742862554/sizes/o/ Author: https://www.flickr.com/photos/34517490@N00/

히딩크가 한국 팀을 맡은 직후 팀 원들 간에 대화가 부족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화란인인 그가 이를 좋아할 리 없었다. 화란사람은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축구 필드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커튼을 젖히는 문화’와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의 계속된 문화 인류학적인 설명이다.

“암스테르담이건 헤이그건 밤이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난 창의 커튼을 열어 젖힌다. 칼뱅이 종교개혁 할 당시 남이 안 보는 데서 음습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커튼을 열어 놓은 것이 기원이다. 히딩크 감독이 호텔 객실에서 TV로 경기 화면을 보며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 커튼을 열어 젖힌 창을 통해 TV 카메라에 잡힌 일도 있다.

신 앞에 투명해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어떤 편견도 두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로 발전했다. 다양한 생활방식과 사고를 허용해 데카르트, 존 로크 등 자기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상가들이 모국보다 네덜란드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잉글랜드의 유명한 축구 지도자인 보비 롭슨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네덜란드 축구 명문 클럽인 PSV 아인트호벤의 사령탑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모욕적인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전략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열린 커튼 문화’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축구 전쟁의 역사(Soccer against the enemy)’의 저자인 사이몬 쿠퍼는 “네덜란드 선수들은 말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 축구 잡지의 인터뷰 기사는 4장 분량이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약간은 경직된 사회의 구성원이었던 롭슨 감독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 열려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 축구가 생각하는 축구가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쿠퍼는 이에 대해 “선수들이 생각하는 축구를 하면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탈 사커’는 기계적인 연습만으로 만들 수 없다. 경기 중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제대로 된 토탈 사커를 할 수 있는데 이 시스템은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꼭 맞았다. 따라서 어설프게 토탈 사커를 적용했다가는 망신을 당했다.

히딩크도 한국 선수들에게 필드에서의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전략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수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한참 나이 어린 이천수가 노장 홍명보에게 ‘명보’라고 외쳐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히딩크는 호칭을 바꿀 것을 지시했다. 축구장에서 ‘홍명보 선배님’ ‘홍명보 형’이라고 부르다가는 공을 뺏기기 십상이기 때문에 짧게 ‘명보’라고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는 실효를 거뒀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쿠퍼도 이를 칼뱅주의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들이다. 칼뱅은 신앙인들에게 성직자의 절대권한(특별히 구교)을 무시하고 직접 성경을 읽을 것을 권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축구장에서 감독은 절대자가 아니다. 이는 잉글랜드나 한국의 선수들과는 다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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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Dick Advocaat coaching with the Russia national football team in 2011. /Date: 30 August 2011 /Source http://www.soccer.ru/gallery/43398 /Author: Новикова Юлия

네덜란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수용적인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지 않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대화를 많이 하는 문화에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축구 기자들은 특종을 찾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축구 기자같다는 말도 있다.

롭슨 감독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축구 코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화와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토탈 사커는 전 선수의 유기적인 공간 활용을 해야 완성되는데 ‘뛰어난 오렌지(Brilliant Orange)’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위너는 “그들은 좁은 땅과 비교적 많은 인구로 인해 공간 활용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공간활용을 하지 못하면 살 수 없음을 잘 알았던 그들은 공간개념이 정확하다. 그들은 삶 속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공간을 활용해야 생존함을 알았고 이것이 축구에 접목되어 토탈 사커가 됐다”고 설명했다.

말이 많고 공간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방식이 축구장에 녹아들어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공은 둥글다: 세계 축구 역사(The ball is round: a global history of soccer)’의 저자인 데이비드 골드블래트도 “토탈 사커는 이미 정해진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현재 내가 있는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사는 네덜란드인들이 언제 이동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고방식에서 고도로 발달된 공간활용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토론 문화, 생각을 숨기지 않는 문화가 축구장에서도 반영됐다고 했는데 잘못 보면 ‘불평이 많은 문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네덜란드에 축구기행을 한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 씨는 다음과 같이 네덜란드의 문화를 설명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참 ‘불평’이 많은 민족이다. 어디서든 불평하고 어디서든 언쟁을 벌이려 든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기자들을 만만하게 본 것이 ‘만나면 (축구적) 말싸움을 거는’ 네덜란드 기자들에 비해 다루기 편해서였다는 이야기도 괜한 신소리가 아니다. 여하튼, 네덜란드는 그런 나라다. 선수들은 하프타임 때도 라커룸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팬들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부진할 땐 가차 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한국 선수들이 이런 문화에 적응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제 네덜란드에서 뛰었던 송종국, 박지성, 이영표 등은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홈팬들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홈팬들이 심하게 욕설을 퍼붓자 PSV아인트호벤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는 홈경기에서 박지성을 출전시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잘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온정성을 당해 환호하는 사람들이 네덜란드 축구팬들이다. 축구의 발전 역사와 문화가 그들의 축구장 밖의 삶과 일치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네델란드는 1990년 이후 월드컵에서 거의 매대회 좋은 성적을 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예선 탈락을 했는데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이 4강에 올랐기에 네덜란드는 그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1990년 16강, 1994년 8강, 1998년 4강 진출을 이뤘고, 2006년 16강, 2010년 준우승, 2014년 4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는 지역 예선 탈락으로 본선에 나서지 못한다. 네덜란드는 세대교체에 실패해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네덜란드는 같은 조에 속했던 1위 프랑스, 2위 스웨덴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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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를 알아가네요. 참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작은 기쁨이라도 드릴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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