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영화 철학 토론 #009 "하러의 삶과 티벳, 그리고 달라이라마" / "장자크 아노, 티벳에서의 7년"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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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 하인리히 하러(1912-2006)가 2차 대전의 포화를 피해 도착한 곳은 무려 2000km가 넘는 티벳의 라사였다. 그리고 1950년,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고 난 뒤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하러가 쓴 책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은 비록 그의 개인적인 인생의 한 여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 역사적 배경과 경험은 쌔고 쌘 한 편의 자전적 자서전들과 비교하기엔 너무 큰 가치를 지닌다. 물론 역사와 문화적 소재들을 다른 주제를 통해 은근히 그려내는 능력이 있는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같은 감독에 의해 영화에 담아졌기에 어쩌면 그런 의미부여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 한스 니터(Hans Nieter)에 의해 1956년에 이미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2차대전이란 전쟁의 도가니와 유럽국가들간의 전투란 배경이야 많은 작품에서 흔하게 설정되지만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봤던 당시 티벳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게 당하는 기억 때문인지 외국인을 무조건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태도와 그들의 신문물과 다른문화를 신기해 하고 관심을 갖는 전혀 다른 두 측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엉뚱하고 어수룩한, 다시 말하자면 순박하면서도 허당인 티벳사람들의 행동들은 뜬금없이 툭 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 쿤둔이라 불리는 장난기와 호기심 많으며 엄숙하고 전통적인 룰에서 몰래몰래 빠져나와서 그들과 교류하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어린 스님. 그 어린 스님은 15세의 나이로 티베트 정부의 정신적인 동시에 행정수반이 되었다. 그가 바로 현재의 14대 달라이라마, 뗀진갸초다. 영화를 통해 단면이긴 해도 어느 정도 고증을 거쳤을 종교색 가득한 달라이라마의 대관식 장면도 볼 수 있다.

그의 공식 친견례에서 머리에 수기 혹은 축복을 해주는 대신, 서양인의 금발을 신기해 하며 마구 헝클어뜨리는 모습에서 오늘날의 장난기 많은 노인, 달라이라마가 마치 어린모습의 실제 연기를 하는 것 같이 투영된다. 달라이라마가 그렇게도 종교적 권위를 내려놓고 서양의 근대 학문에 관심이 많은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만났던 하러의 큰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티벳에 머무르는 동안 실제로 달라이라마의 왕실가정교사 역할도 했다.

이 의미있는 베스트셀러를 쓴 하러는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인 제랄드 레너(Gerald Lehner)에 의해 그가 20대에 나치당에 가입했던 등록증이 발견되면서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언론에서 인정했지만 스스로가 나치당원으로서 악행에 가담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는 물론 나치에 소속되었던 경력으로 많은 고통에 놓여있었음도 고백했다. 그에 대한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와 다른시각, 그리고 음모론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진실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은 문제이니 또 다른지면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 티벳에서의 7년을 소개하면서 오직 그 컨텐츠에 집중하기로 한다.

세계대전이란 배경에서 영국의 포로가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달아나서 도착한 곳, 이전에 잘 몰랐던 곳 티벳 라사에서의 어린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그에게 서구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기회를 얻었던 하러의 심경,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동시에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떠오르며 성장하는 달라이라마를 보는 하러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세상의 산들에 도전했던 등반가 하러는 자신의 가장 젊고 패기 넘쳤을 시절에 했던 이 낯선 경험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자산이자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달라이라마와의 우정 혹은 친분도 오랫동안 유지했다. 2002년에 하러는 티벳의 독립과 평화를 알리고 힘쓴 이들에게 주는 Light of Truth Award를 받았다. 시상식은 여러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해에는 하러의 고향인 휘텐부르크에서 가까운 그랏츠(Graz)에서 이루어졌다. 아마도 달라이라마는 친구였던 그에게 공적인 상을 직접 주면서 또한 그와의 개인적인 우정을 생각했던게 아니었을까 짐작되는 부분이다. 1983년, 하러는 Return to Tibet이란 후속편을 남기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하러의 시점에서 당시의 티벳이란 국가, 사람, 그리고 어린 달라이라마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달라이라마의 방한은 한국에 있어서는 큰 숙제이며 몇차례 양측의 시도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회도 시간도 우리에게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달라이라마는 2018년 현재 83세이다.

BULSIK / 영화 철학 토론

01 "욕계의 퍼스트 클래스”- 설국열차
02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
03 "삶의 길은 고통인가" - 대지진
04 "물질과 마음은 과연 두 개인가” - 루시
05 "식민지, 앙코르 왓, 문화재 이야기" - 투 브라더스
06 "인간이 만든 문제를 신에게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 내 이름은 칸
07 "나쁜놈 메이커" / "커트 위머, 이퀄리 브리엄"
08 "윤회, 화두, 그리고 강" / "판 날린, 삼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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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할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종교를 떠나 우리의 일제시대와 비슷한 그들의 아픔을 알수 있는 한국인으로서 그런 약자들이 마음 놓고 방문할수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려면 국력이 지금 국력으로는 택도 없는 얘기겠지만요....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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