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영화 철학 토론 [003] "삶의 길은 고통인가"

in #kr7 years ago
영화 철학 토론 [003] "삶의 길은 고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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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51926#616412

수많은 갈림길은 우리 앞에 때때로 나타난다. 어떤 때 내가 선택한 것은 지나고 나서도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대개는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지나고 나서도 온전히 만족스러운 길을 우리는 선택 할 수 있을까. 간혹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치거나 어느쪽도 포기할 수 없는 길을 마주했을 때 어찌할 수 없는 고민들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아픔을 줄 때 가 있다. 그리고 때로 그 결정은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서로가 그걸 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원망 또한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이해는 되지만 용서는 못하는” 상황 같은.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 자꾸만 놓이게 되는걸까. 그리고 그 때는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걸까.
아쉽게도,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은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아픔, 애별리고愛別離苦”. 떠나보내야 하는 이에게도, 떠나가는 이에게도 모두 아픔이다. 그것이 운명의 여신때문인지, 서로의 이해관계인지는 몰라도.

그런데 사랑에 본질이란게 있을까. 때로는 어이없게도 이별, 혹은 사랑이 변하는 순간에 오면 전 우주에서 가장 숭고했던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감정은 그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미움’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대개 ‘순수한 사랑’이라고 그러면 주로 순애보적이거나 육체적 관계여부를 기준으로 이야기 하지만 이건 사회적인 관계에서 봤을 때 이야기이고, 철학적으로 ‘순수한 사랑’을 정의하라면 아마 어떤 바람도 기대도 없이 사랑하는 것 아닐까. 사랑을 해. 본사람은 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에 대한 상대의 태도나 내가 바라는대로 되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내 마음이 달라진다는 걸. 그건 미움도 마찬가지.

‘미운정’만큼 이상하게 들리는 용어가 있을까만. 그래서우리 관계는 ‘사랑과 전쟁’이란 말처럼 언제나 ‘애증愛憎’의 관계이다. 이 애증 관계의 수준을 넘어서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가 되는데 이게 사랑과 자비의 차이점이 되겠다.

붓다는 우리가 겪을 수 밖에 없는 큰 정신적 고통이란, 한 가지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소중한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것, 애별리고와 또 한가지는 마주치기 싫은 사람, 혹은 싫어하는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증회고 怨憎會苦의 두 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있고 싶지만 헤어져야 하고, 꼴보기 싫어도 만나야 하는 이상하게 비틀린 상황에서 살고 있다.

좀 다른 제안을 해보려 한다. 원망하는 사람, 미워하는 상대, 그것이 주는 만남의 피치못할 괴로움이라면 어떻 게 피해갈까가 아니라 차라리 미워하지 않는 걸로 방법을 바꿔보면 어떨까? 분명한 건, “어차피 만나야 할 사 람이라면(‘차차차’란 노래가사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그냥 미워하지 않 으면 좀 더 간단하지 않을까. 사실 어떤 상황을 만나서 괴롭다는 것은 대개 그 상대나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에서 시작되니까.

좋지 않은 어떤 상황에서 거기에 얽힌 상대가 원망스럽고 한스러운 것은 인지상정. 더구나 나에게 아픔을 준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이라면 그 원망은 뜨거운 기름판에 물방울이 튄 것 처럼 겉잡을 수 없게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원망'이란 행위도 잠깐 후련할 지는 모르나 그 순간이 지나면 목마른데 바닷물을 퍼마신 것 처럼 더 큰 고통을 남길 뿐이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순간의 삶은 내 생애에 의미와 자유를 주지만,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은 상대뿐 아니라 내 삶 또한 좀먹는다. 길지도 않은 삶을 미워하는데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에.”

욕계란 욕구에 기반한 세상이란 의미이다. 욕구가 에너지란 의미이다. 흔히 욕망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건전하고 건강한 욕구는 삶을 사는 동력이기도 하다. 또하나. 욕구에 기반한 세상이란, 하고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신이 조절해 주는게 아니라 내 바람과 행동이 나 스스로는 물론 내 주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비가 지구반대쪽에서 날개짓Butterfly Effect’을 하면 그 것을 시작으로 온갖 조건이 더해지고, 지구를 한 바퀴 돌 때쯤이면 폭풍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 마음을 갖고 있음으로 결국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람의 진지한 의도는 큰 실질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누군가에게 원망을 갖는건 가능한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인생이란 맥시멈 100여년간. 결코 길지 않은 여정이다. 내 삶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무겁게 여기는 사람은 실제로 그 무게를 평생 감당해야하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때 그 때 파도를 타듯이 가벼워질 수 있 다. 각자가 겪는 온갖 시련들은 마치 내게만 오는 것 같이 힘들고 무겁게 여겨지지만 실은 모든 이들, 누구나 겪는 일이다. 각자가 겪고 있는 무거운 짐. 결코 특별한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고, 겪고 있으며, 또 겪게 될 일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금새 알 만한 일이다. 정신적인 슬픔이, 육체적인 고통이 당신애 게만 오겠는가. 당신만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겠는가. 누구나 겪게 되는 일들이지만 거기에 매달려서 고통스럽다고 계속 울고 있을 수도 있고, 받아들이며 겪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파도 위를 서핑하듯 살 수도 있다. 물론 어떤 마음으로 살 것 인지는 각자의 선택이고 또한 책임이다. 다만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생을 살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든 이의 삶이 나비처럼 가벼운 삶이 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가진게 많지 않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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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5/03(0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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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매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독자가 되어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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