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적 P의 이야기 #06 _ 사심과 진심이 뒤섞였던 연구모임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지나간 글을 다시 보고 정리하다 보니, 나의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썼던 말 한마디, 몰두했던 화두, 고민했던 것들 보고 있으면, 지금과 같으면서도 다름이 느껴진다. 그 동안 몽상가적P 시리즈에서 여러번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참 많이 암묵적이었다. 누가누가 '우리'에 속할 것인지 한번도 제대로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서로가 서로임을 알고 있었다. '오늘부터 1일'을 세는 것은 매우 촌스러운 방법일지 모르나, 그 보다 확실한 것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불확실함 투성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서 3명은 4명이 되었고, 묘하게 3명이 되다가 지금은 2명이 되었다. 물이 흐르는 듯한 상황 전개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가끔은 속을 터지게 하기도 했다. 난 참 다혈질이고 성급하고 조바심 투성이인 사람이다. 아무튼 모두 일터에서 만나 그러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사적으로도 친했지만, 사적으로만 친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각자의 관점을 즐겼고, 그렇게 합이 잘 맞았다. 시간이 흐르며 오해도 쌓였고, 내 마음에 아직 다 풀지 못한 매듭도 남아있다.


재작년 2월에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


그 때의 3명은 본격적인 모임을 갖기로 하는데 동의했다. 그 본격적인 모임은 그저 사사로운 것으로 하자고 모두가 입을 모았지만, 내심 어떤 플랫폼이나 일의 형태로 발전되길 기대하는 마음을 한켠에 숨기고 있었다. 기억에서 사라졌었는데, 기록을 보니 그것을 내 멋대로 '연구모임'이라고 불렀었다.

연구의 대상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감'을 연구했었나 싶기도 하고, '트렌드'를 연구했었나 싶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하는 것 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성수동의 코워킹스페이스인 '카우앤독'에서 만나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하고 이런 곳에서 소규모 세미나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뜨는 골목이라고해서 서울역 뒷편 만리재로의 퓨전 레스토랑인 '베리스트릿키친'도 갔다. 스터디룸이나 작은 회의실을 갖춰놓은 선릉의 '카페 427'에서도 회의를 했다. 성수동의 틸테이블에서 와인도 한잔 하고, 샤로수길도 갔다. 그 외에도 참 많은 곳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는 학문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놀러 다니면서 다양한 현상들을 이야기했다. 주제를 잡아서 리서치해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뭔가 틀이 주어지면 오히려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개별적으로 몰두하는 것들이 따로 있기도 했다. 한 울타리 안에 있었을 때 처럼 '프로젝트'식으로 진행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뭘 했냐고 물어본다면, 별로 한게 없지만 하나의 성과만큼은 이루었다. 아직은 미공개인 우리의 이름을 지은 일이다. 나름 진지하게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면서 의논했고 신중하게 결정했다. 사실 정말 큰 일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여태까지 이름 뭘로 할지 얘기하고 있었을테니.




3에서 2가 되었다.


3에는 나의 선배가 있었고, 내가 있었고, 나의 후배가 있었다. 어쩌면 후배에겐 우리가 무언갈 해야한다는 부담감이나 열망이 가장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많은 생각을 나누었기에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부를 오래한 후배는 어느날 약간의 주저함과 함께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꺼냈다. 어쩌면 예견한 일이었고,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행보였다. 아쉬웠지만, 서운해할 이유는 그저 한동안 못보게 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나에겐 이것이 필연적이었고, 그 친구에겐 그것이 필연적이었다. 내가 쫓기는 마음이 들었던 건 내가 나를 재촉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누가 억지로 등떠민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누군가에게 등떠밀려 무엇을 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렇게 이름을 함께 지어주고 후배가 떠나자, 오히려 그 이후 선배와 나는 본격적인 논의와 진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 모임은 정말 사심이었고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홈페이지와 매거진을 지겹도록 논의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 여기에 와있다.


애초에 그 놀러다니던 '연구모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몽상가적 P의 이야기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1 _ P의 의미에 대하여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2 _ 어떤 형태의 시간을 만들것인가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3 _ 영감과 일상, 그 중간 어디쯤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4 _ 연탄재 하나를 툭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5 _ 첫 걸음을 떼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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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 도장깨기일수도 있었다지만 그 시간이 있어 지금의 @emotionalp님이 있지않나 생각드네요. 그렇게 성향이나 감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가끔은 생각할 거리나 영감 같은것을 얻기도 하는데 이유있는 모임이었으니! @emotionalp님에게 더더욱이 유익한 핫플레이스 탐방이었겠어요:)

많은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내 취향에 맞는 경험이란 것도 선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딜 통 다니질 못했는데, 다시 좀 돌아다녀보고 싶네요. :)

꾸욱.들렸다가요

감사합니다.

고뇌하는 청춘이랄까요... 이러니 꼰대같긴 하네요 ㅋㅋㅋ 제눈엔 멋져보이기만 한걸요 ㅎㅎㅎ

고민하고 새롭게 도전하면 다 청춘이죠!! 그런면에서 에빵님도....ㅎㅎㅎ:)

과정이 덤덤하게 적혀있어서 취향이에요.
저도 2에서 3, 3에서 4, 4에서 3, 2에서 2..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더라구요.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

함께하는 일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애나님도 다양한 일을 프리로 하시니 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

저는 무언가 해보자! 며 시작한 모임이 사적으로 이어지다
그냥 와해되어 버린 경험이 있어요..;;

저도 많은 과정을 통해 3-4-3-2가 되었었어요. 경계가 불분명할 때는 애매해지거나 또 다른 오해나 이해관계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ㅎㅎ

놀러 다니다 보면 늘 크고 작은 영감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별로 한 게 없다고 하셨지만 제일 최고 어려운 이름짓기를 해두셨으니 이미 큰 산은 하나 넘으신 것 같은데요? :-)

ㅎㅎ네 그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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