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5] SIGN(3)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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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Dog Ki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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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 HER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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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 SIGN(1)
Chapter 5 - SIGN(2)

“이 글, 다섯 번째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의 내용은 테세우스(Theseus)의 영웅담을 암시하고 있어요.”

“테세우스? 테세우스요?”

“예, 여기 등장하는 「철곤」은 그리스 신화 속 대표적인 영웅인 테세우스를 상징하는 무기거든요.”

“테세우스라는 인물이 이번 사건의 흐름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가요?”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igeus)의 아들이자, 아테네 문명을 미노스로부터 해방시켜 아테네의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에요. 페리페테스(Peripetes)라는 악당을 죽이고 그에게서 무쇠로 만든 몽둥이를 뺏은 다음부터 그 철 곤봉이 테세우스의 상징적인 무기가 되죠.”

“그럼 『로미오와 줄리엣』은 테세우스와 무슨 관계인데요? 그리스 신화야 그렇다 치더라도, 굳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인용한 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매섭게 몰아붙이는 혜원의 질문에 신일은 입을 다물었다. 예리한 지적이다. 이건 형형색색 뒤엉킨 루빅스 큐브 같은 거다. 무질서하게 조립된 듯 보이지만, 한 축 한 축 치밀한 계산 아래 짜 맞춰진 장난감. 그녀 말대로 류 대위의 필연적인 죽음을 경고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범인이 굳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인용했을 리 없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범인의 광적인 집착을 감안할 때, 이건 뭔가 부자연스럽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그리스 신화에도 차고 넘치도록 많을 텐데. 다만, 그는 이번 메시지를 통해 범인이 말하고픈 게 무엇인지 만큼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이 사건, 한 대령님을 살해한 범인과 동일인의 소행이 분명한 것 같군요.”

“뭔가 찾아내신 건가요?”

“여기 이 후렴구 속 테세우스 영웅담은 지난 번 사건의 메시지와 연결되는 구석이 있거든요.”

신일은 조용히 눈을 감아 상상 속 테세우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대한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영웅의 생김새가 낯익다. 어디서, 그를 본 적이 있던가? 영웅에게 조심스레 한 발자국 다가선다. 다가오는 인기척에 테세우스가 천천히 신일이 선 쪽으로 몸을 돌려 세운다. 마침내 마주한 영웅 테세우스는 얼굴 반쪽이 잔혹하게 뜯겨 나간 모습이었다. 눈부신 후광에 감추어진 그의 얼굴에 차가운 비늘이 덮여 있다.

“신일 씨?”

혜원의 호출에 신일은 황급히 눈을 떴다. 방금 전 그건 뭐였을까. 양손으로 느릿하게 눈을 비벼 봐도 심란하게 남은 잔상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예.”

어느새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 맺혔다. 신일은 대수롭지 않은 척 냅킨으로 땀을 닦았다.

혜원은 진작부터 테이블에 몸을 당겨 앉은 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러워 신일은 슬며시 엉덩이를 빼 의자 귀퉁이에 몸을 기댔다.

“범인이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빗대어 살인을 한 점, 특히 류 대위의 다리 부분을 의도적으로 절단한 거라면,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테세우스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예, 이건 아마도 테세우스와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일화를 염두에 둔 걸 텐데요.”

“프로, 크루…”

“예, 프로크루스테스요. 테세우스의 영웅담에 등장하는 악당이에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자를 집으로 초대해 철제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작은 자는 몸을 늘려 죽이고, 침대보다 큰 자는 침대 밖으로 나온 신체를 절단해서 죽였다고 해요. 나중에 아버지를 찾아 여행하던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이 쓰던 그대로의 방식으로 목숨을 잃게 되지만요. 그 일화에서「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도 생겨난 거고요.”

Theseus-Procrustes.jpg

프로크루스테스의 몸을 절단하는 테세우스

“아, 그 얘기라면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그 프로크루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요. 자기가 세운 기준에 맞춰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집과 횡포를 빗댄 표현이죠.”

“그럼 여기 나오는 영원한 안식의 침대라는 게…”

“예, 이건 수사관님이 말씀하신 로미오와 줄리엣이 묻힐 관(棺)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중의적으로 나타낸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그럼 아까 말씀하신 부분은요? 이 사건 범인이 한 대령 살인사건과 동일인물일 거라 그러셨잖아요?”

“그건 이 글의 마지막 행 때문인데요. 「나 또한 그 이후에 어둠 속에 묻힐 수 있으리」라는 부분 말이에요.”

“그 부분이 왜요?”

“만약, 제 생각대로 범인이 테세우스의 영웅담을 염두에 둔 거라면 여기서 말하는 나, 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요.”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방금 말씀 드린 테세우스의 영웅담, 그러니까 페리페테스를 죽여 철 곤봉을 빼앗은 얘기나, 프로크루스테스를 처단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테세우스가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있었던 일화에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정, 그게 테세우스 영웅담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죠.”

“그럼?”

“테세우스 영웅전의 후반부 말인데요. 그건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 왕을 알현해 아들로 인정받고 나서 떠나게 되는 모험담이 주된 내용이에요. 크레타 섬에 보내지는 노예 중 한 명에 테세우스가 섞여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들…”

“크, 크레타 섬이라고요…?”

“예, 크레타 섬이요. 당시 아테네는 그곳에 정기적으로 인신공양물을 바치고 있었죠. 군사적으로 약체였던 아테네는 크레타 섬을 지배하는 미노스 왕국의 내정간섭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예요. 이를 빌미로 미노스 왕은 자신들의 괴물에게 바칠 인간 제물을 아테네가 공양하도록 압박을 가했고요.”

“잠깐, 크레타 섬, 미노스 왕국의 괴물이라면….”

“인육을 즐긴 미궁 속의 괴물, 끝내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죽임을 당해 영원히 어둠의 미궁 속에 버려진 반인반수의 괴수, 누구일 것 같아요?”

“…미노타우로스.”

theseus.JPG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하는 테세우스

“맞아요. 저번 사건에서 범인이 자기 자신을 투영했던 「증오를 품은 비극의 피조물」과 이번 사건에서 「어둠 속에 묻힐 나」는 모두 동일한 대상을 지칭해요. 라비린토스 속의 괴물, 미노스 왕국의 미노타우로스 말이에요.”

theseus-victor-of-the-minotaur-charles-edouard-chaise.jpg

샤를 에두아르 셰즈(Charles Edouard Chaise),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친 테세우스(Theseus, Victor of the Minotaur), 1791

“그럼 류준 씨의 죽음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일화는요? 한 대령 사건에서의 다이달로스가 부정에 대한 침묵을 암시했다면, 이 사건에서도 범인이 프로크루스테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텐데요?”

“프로크루스테스는 강요와 아집을 상징하는 인물이에요. 자기가 세운 기준에 모든 걸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사람,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어떻게든 거기에 과정을 짜 맞추려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류 대위요.”

“예?”

“류준 대위 같은 사람…을 부를 때 흔히 쓰는 말이라고요.”

분명, 준이를 잘 아는 놈이다. 신일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되뇌었다. 잔뜩 메마른 양 입술은 끈덕지게 달라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재림. 류 대위의 짜증 섞인 히스테리에 시달릴 때, 신일은 그런 혼잣말을 자주 구시렁거렸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난도질하듯 상대를 몰아붙이는 류 대위, 신일 눈에 그는 사악한 악당, 프로크루스테스 그 자체였다.

“야 인마, 원래 군인은 군복에 몸을 맞추는 거야! 군복까지 맞춰 입을 거면 군대는 뭐 하러 왔어? 이 미친 새끼야!”

보급품에 몸을 맞춰 쓰라며 병사를 쏘아붙이던 그의 일갈은 압권이었다. 사람의 몸에 맞춰야 할 옷에 사람이 몸을 맞춰야 하는 아이러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신일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이 정도라면 용의선 상에 있는 인물을 제법 좁힐 수 있지 않을까? 한 대령의 이면을 알고, 류 대위의 횡포를 알며, 체계적인 군사훈련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아니야. 이 정도론… 부족해.」

신일이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두 사람이 한 부대에서 근무한 것만 3년이 훌쩍 넘는다. 저 세 가지 조건만으로 그들과 얽힌 인물을 하나하나 가리고 솎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일까.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일단, 신일 씨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건 조금 이따 생각해보자고요. 잠시만, 쉬었다 할까요?”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셔야겠네요. 도저히 머리가 안 돌아가서 말이죠. 혜원 씨도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어요?”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일단 말씀하신 내용이랑 사건을 조금 더 정리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지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미 혜원의 눈두덩은 물기 없이 말라 있었다. 마지막 말을 애써 흘려들으며, 신일은 그녀의 빈 머그잔을 슬쩍 집어 들었다.

그토록 아니길 바라던 일들이 하나둘씩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리대로라면, 아마도 범인은 신일과 최소한의 일면식이 있는 사람일 거다.

그가 옛 동료들에게 품은 원한, 한 대령과 류 대위가 저지른, 죽어 마땅한 잘못이라는 건 뭘까.

신일은 간지럽게 꼬불거리는 손가락 끝을 긁적였다. 그의 몸이 다시, 격하게 니코틴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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