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2] HERO(3)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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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etr 2 - HERO(1)
Chapetr 2 - HERO(2)

“아이고, 그래도 진하 형이 훈련 하나는 진짜 빡세게 시켰다.”

수강의 푸념은 간결하고 담백했다. 몽환적인 술기운이 방안에 가득 찼다. 이상하군. 평소 주량의 반도 안 마셨는데. 눈에 띄게 더뎌진 수강의 발음에 집중하며 신일은 조용히 세 번째 술병 뚜껑을 돌렸다.

“형, 혹시 진하 형이 하던 총검술 말이에요. 그거 기억나요? 그거 진짜 좆도 아닌데 기가 막히게 멋있었단 말이죠.”

뽀얀 피부에 짙은 눈썹, 살짝 처진 눈매까지 진하의 외모는 도무지 군인과 어울리지 않았다. 곱상하게만 보이던 그가 최강의 훈련조교, 총검술 마징가로 불리게 된 건 그의 독특한 총검술 품세 때문이었다.

그가 시현하는 총검술은 백병전의 치열한 싸움기술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잘 짜인 하나의 춤사위였다. 그의 독무(獨舞)엔 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뒤따랐다. 투박한 총칼에서 그토록 강렬한 생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건, 분명 아이러니하고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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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건 나도 기억나. 지금 생각해도 걔가 하던 총검술은 뭔가 달랐어.”

“근데 그 형은 총검술 말고도 워낙 잘하는 게 많아가지고…”

“그래, 걘 정말 군대에서 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잘했지.”

“그렇죠. 그런데 진하 형은 본인이 워낙 그쪽에 빠삭하니까 훈련만큼은 진짜 타협의 여지가 없었어요. 전술학 교관실의 좋은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여줘야 할 건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이러면서.”

“뭐, 자기 나름대로 조직 관리 한 거 아니겠어?”

“예, 게다가 그때가 한창 도 중사 그 새끼가 미쳐 날뛰던 시기라 애들로서는 진하 형을 더 따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가 미친 개새끼한테 물리느니 마음 맞는 사람끼리 훈련이나 하자, 그런 거였달까? 진하 형 뛰어난 거야 그 개새끼도 잘 아니까, 진하 형이 훈련 주관한다고 하면 그 새끼도 일체 아무 말 안 했어요. 귀찮은 훈련주관을 진하 형이 대신 해준다고 하니 진하 형은 웬만하면 잘 건드리지도 않았고요.”

“진하가 직접 훈련을 주관했다고?”

“그럼요. 형은… 잘 모르셨을라나?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진하 형이 선임 잡은 다음부터는 도 중사가 담당하던 총검술이나 개인 전술 교육훈련 대부분을 형이 주관했어요. 진하 형이 선임이던 시절에 우리가 괜히 그렇게 돈독해진 게 아니라니까.”

“사실 나도 내 군 생활 통틀어 그때 애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기는 하더라. 당시 너희들, 나 같은 사람 눈에는 좀 이상해 보일 정도로, 아니 솔직히 좀 무서워 보일 정도로 똘똘 뭉쳐서 진짜 가족처럼 지냈으니까…”

“의리와 충성도로 치면 웬만한 동네 양아치 새끼들이랑은 비교도 안 됐지. 마피아 정도는 돼야 얼추 견줄 만 했을라나?”

“꼴값 떨고 있네. 마피아는 무슨…”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여하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땐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일과 중에 도경욱이 그 새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진하 형이랑 같이 훈련하는 거 밖에 없었으니까. 워낙에 밥 먹고 훈련만 해서 그랬나, 지금 생각해도 그때 같이 있던 애들, 정말 다들 날라 다녔었는데….”

수강은 녹차로 잔뜩 꼬인 혀를 달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이었다. 당시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압도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만나 본 가장 우수한 군인들, 이라는 당시 부대장의 찬사는 분명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민망하게도 그 헌사는 대부분 도 중사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바쳐졌다. 수강이나 진하가 그런 칭찬을 직접 들은 적이 있던가? 신일은 그 부분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래도 훈련 하나는 지금 생각해도 오지게 빡셌다. 아휴, 진짜 그 땐 그걸 다 어떻게 견뎠나 몰라…”

“뭘 어쨌길래 그 얘기를 몇 번이나 하고 그래?”

“아, 형은 상상도 못할 거야. 진짜 우리들이 당시에 괜히 다 특급전사가 된 게 아니라니까. 매일같이 총검술에, 대검술에, 특공무술에, 온갖 개인 타격 기술까지 말도 마세요. 정규 훈련 과목 아닌 것까지, 전술학과 관련된 거라면 진하 형이 뭐든지 섭렵하게 했다고요.”

“그 정도였단 말이야? 난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흠, 애들이 아무리 형한테라도 그런 자세한 얘기까지는 잘 안했을 테니까요.”

“아니 그래도 그 정도면 거의 가혹행위 수준인데, 너희들 중 아무도 그거를 문제 삼지 않았단 말이야?”

“에이, 그런 거 말할 분위기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별 시답잖은 질문이 다 있다는 듯 수강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리고 그 직후에 찾아든 짧은 침묵. 수강은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았지만, 별다른 변명을 하진 않았다. 그는 단지 굳게 다문 입을 달래려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물었다. 바지에서 꺼낸 황금색 뒤퐁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내내 그는 의식적으로 신일의 시선을 피했다. 신일 역시 딱히 그의 말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간부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 병사들 간의 역사가 따로 있다는 것. 이제와 그걸 문제 삼는 게 얼마나 새삼스러운 일인지, 신일은 잘 알았다. 어색한 공기를 달래러 신일은 묵묵히 수강이 내뿜은 연기의 궤적을 좇아 다다미방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그보다도…”

한동안 연기를 뻐끔거리던 수강이 마침내 입을 연다. 쭈뼛거리며 세 번째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 들였다가 내뱉을 무렵이었다.

“그보다, 뭐?”

“애들이 별로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런 훈련 받는 걸?”

“예.”

“역시 도 중사, 때문인 건가?”

“그런 것도 있었지만…”

“뭐야, 그럼 그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그냥 재미로 즐겼다는 거냐?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아니요 형, 그러니까 그 훈련 자체를 즐겼다기보다는….”

“즐겼다기보다는?”

“그 진하 형을… 우리가 참 좋아했으니까요.”

타다닥, 그 순간 신일 귀에 들린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는 유독 크고, 건조했다.

“그렇게 빡세게 굴려도 너희가 진하를 싫어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 진하 형은 말이에요….”

수강은 손을 길게 뻗어 재떨이를 자기 쪽으로 끌었다. 가볍게 재를 털며 내뿜은 담배연기가 방 가운데 놓인 작은 조명 속으로 켜켜이 녹아든다.

“당시 우리한테는 동경의 대상 같은 거였거든.”

수강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신일은 이번에도 그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진하를 추종하는 후임들의 눈빛, 거기엔 신성한 존재를 숭배하는 사도들의 믿음 같은 게 담겨 있었다. 늘 다독이듯 부드럽게 말하던 진하였지만, 병사들은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했고, 그의 지시를 최우선으로 실행했다. 수강은 그런 자신들을 조폭이니, 마피아니 장난스럽게 빗대는 모양이지만, 신일은 알고 있었다. 그들 중 억지로 진하를 따른 이는 없었다.

추가로 주문한 술이 도착할 무렵, 분위기는 한결 얼큰하게 무르익어 있었다. 배꼽 밑부터 쌓여가는 취기에 신일은 민망한 딸꾹질을 해댔다. 술 냄새 섞인 날숨을 뱉으며 신일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코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날의 봄바람이 슬며시 스쳐 지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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