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2] HERO(2)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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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etr 2 - HERO(1)

겨울의 끝을 알리는 볕이 따사롭다. 며칠 전까지 서슬 퍼랬던 바람이 제법 포근해졌다. 땀 냄새 섞인 흙 내음이 볼에 닿아 간지럽다. 멀리서 들려오는 군가 소리와 그들을 몰아치는 호루라기 소리는 여느 날처럼 경쾌했다.

신일은 연병장을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언젠가 이 냄새, 이 소리마저 그리워질 날이 올까. 지금으로선 도무지 상상이 되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다.

터벅거리며 습관처럼 담배를 꺼내 문다. 지루한 시간 속에서 느는 건 담배뿐이다. 몸속 깊은 곳에서 끓는 가래를 지우려 신일은 일부러 묽은 침을 삼켰다.

모퉁이를 돌 무렵, 인기척이 느껴진다. 신일은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얼핏 듣기에도 이건, 제법 심각한 분위기다.

“마 병장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앞으로는 제가 알아서 닦아 놓겠습니다.”

“됐어, 인마. 너도 바쁠 텐데 좆도 아닌 거 갖고 나서지 마라.”

“아닙니다. 사실 그런 일까지 마 병장님이 하실 필요는 없지 말입니다. 어차피 얼마 있으면 신병도 올 텐데, 그때까지는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새끼, 죄송할 일도 많다.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분명, 조금 전 일을 복기하는 게로군. 신일은 건물 모퉁이 벽에 바짝 기댔다. 이래서야 영락없이 남의 대화를 엿듣는 꼴이잖아. 신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에 문 담배를 말아 내렸다. 그나저나 진하와 얘기를 나누는 녀석, 누구지? 신일은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그들이 선 쪽을 조심스레 살폈다.

아, 저놈이군. 얼마 전 다른 부대에서 전입해왔다던 그 「굴러들어온 돌」, 저 놈 이름이 분명 이수강이었던가?

“그래도 군대에서 이건 좀 아닌 것 같지 말입니다.”

“어이, 이수강이.”

“일병 이수강.”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이여?”

“….”

“군대가 원래 온갖 잡일은 막내가 다 하는 곳이냐고?”

“일병 이수강, 시정하겠습니다.”

“새끼야, 시정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

“야, 이수강.”

“일병 이수강.”

“내가 생각하는 군대는 대가리들은 암 것도 안하고 밑에 애들만 좆 빠지게 뛰어 다니는 그런 데는 아니여.”

“…그,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새끼, 긴장타지 말고. 우리가 뭔 사이냐고?”

“그, 그야….”

“우리가 뭔 연인사이는 아닐 거 아녀?”

“일병 이수강,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쟁 나가면 서로 목숨 의지하고 함께 뛰어야 하는 전우 사이다. 맞냐?”

“일병 이수강, 예, 그렇습니다.”

“씨바, 그런 사이에 평소에 잡다한 일 좀 나눠 하는 게 그렇게 유세떨 일이냐? 그게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위계질서를 무너트릴 만큼 좆 나게 심각한 일이냐고?”

“그, 그런 건 아닙니다.”

“나 원래 밖에서 구두 닦다 왔어.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제대하고 나서도 당분간 그 일 좀 해야 할 것 같고. 아, 그런 고참이 여기서 구두 닦는 감각 좀 회복해서 나가겠다는데, 그게 뭐 그리 말도 안 되는 일이여?”

흥미로운 전개군. 부드럽게 웃는 선임병과 전입한 신병 간의 긴장감이 신일이 선 곳까지 생생히 전해진다.
전입한 병사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지금쯤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기를 돌리고 있을 테지. 여기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밀고 나가는 게 나을지, 하늘같은 선임의 말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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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병장님, 그, 그래도 말입니다.”

밀고 나간다? 의외의 결정인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입을 뗐지만, 신병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수비적이었다. 눈꼬리를 최대한 흘린 채 어깨까지 늘어트린 그는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부디 자신의 솔직한 충언을 오해해서 듣지 말아달라고.

“어차피, 마 병장님… 제대하시고 나면… 모든 건… 원 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그건 몽상가를 향한 연민이었을까.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그 말은 날선 조롱처럼 들리기도 했다.

“새끼, 걱정할 일도 많다.”

“아닙니다. 제가 전입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마 병장님께서 선임 잡으신 이후 가까운 기수의 후임 분들, 불만이 제법 있지 말입니다. 예전에 후임들이 당연히 하던 일을 마 병장님께서 도맡아 해버리시면 아무래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무심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단호함을 넘어선 어떤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 제대하면, 다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겠지. 희원이나 인수, 창해 같은 애들은 워낙 그런 걸 좋아하는 새끼들이고.”

신병은 그의 말에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그래도 뭐,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이런 식으로 변해가는 거 아니긋냐?”

“…”

“잘못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여. 여기서 겪은 좆같은 일들, 나부터라도 좀 고쳐 보려고 하다보면 여기도 좀 나아지지 않겄어? 암 것도 안 하면서 여긴 원래 이런 데니까 좆같아도 참으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 아녀?”

볼을 스치는 흙먼지가 찡하다.
진하 녀석이 저런 생각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그에 비하면 나는…. 뜻 모를 부끄러움에 신일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둘 사이에 끼어들 자신이 없어 그는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신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잉크 빛 하늘이 충만한 봄기운을 한가득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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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좀 오래된 시절의 군대이야기 같으네요.

소설 자체가 출간된지 10년 가까이 되다 보니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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