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24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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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된 오십 편의 짧은 글들은 잡지 <앙앙anan>에 매주 한 편씩 일 년 동안 연재한 것입니다. <앙앙>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여성들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읽을거리를 원하는지ㅡ아니, 읽을거리 자체를 원하기는 하는지ㅡ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터라(유감스럽게도 주위에 그 연령대의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뭐든 좋으니까 내가 흥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쓰는 만큼 나름대로 한 가지 정해둔 것은, 안이한 단정 같은 것만은 피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당연히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야’ 하는 전제를 포함한 문장은 쓰지 않도록 하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하는 강요하는 글도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하자고.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은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옳은 것이 다른 때는 옳지 않기도 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니 뭔가 나 자신이 단순히 저기 저쪽에 떠도는 공기가 되어버린 듯,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매주 비교적 술술 글이 나왔습니다. <앙앙> 독자가 실제로 읽고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아주 즐거웠습니다. 여기 모은 글들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나로선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_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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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도 독후감을 쓴 적 있는 하루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의 첫 번째 책이다. 순서로 따지면 이 책을 먼저 봤어야 했지만 어쩌다 보니(책에 순서가 없는 줄 알았다) 뒤죽박죽 됐다.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었다. 중요한 뭔가를 놓친 듯한 그런? 이제와 아쉬워한들 어쩌겠나. 기억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루키가 연재한 <앙앙>이라는 잡지는 성향 상 젊은 여성 독자가 많은 모양이다. 후기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런 독자층에 맞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하루키는 꽤 고민한 것 같다. 물론 본문을 읽는 동안에 고민의 흔적을 발견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후기를 읽고나자 하루키가 어떤 태도로 글을 써 내려갔을지 상상이 됐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대하는 듯한, 투박하지만 상냥한 그런 느낌이랄까? 공감이 잘 안 갈 수도 있는 이야기에서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렇지 않나요?”라고. 전혀 그 답지 않게. 아무튼 에세이 속 하루키는 무척이나 상냥했다.

후기에는 책의 삽화를 그린 오하시 아유미大橋步의 글도 있는데 하루키의 굉장한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에 자신의 글을 남기는 게 엄청난 영광이라며 삽화를 끼워 주셔서 매우매우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아마 나였어도 하루키의 책에 내 글을 담기게 된다면 원고 가득히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로 도배했을 것이다. “저같이 하찮은 사람의 글이 하루키 씨의 책에 남게 되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쓰고 나니 본문에 대한 내용보다 후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거 같다. 순서를 제대로 맞춰 읽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다른 권도 더 재밌게 읽었을 텐데 하는.



북끄끄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 면도하기
written by @chocolate1st




||북끄끄 책장||


#15 최은영, 그 여름
#16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17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8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0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1 정유정, 7년의 밤
#22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23 앤디 위어, 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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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st year (edited)

상냥한 하루키도 읽어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얼마전에 친구한테 이런 카톡을 받았어요. 반가운 맘에 댓글을!

내가 돈이 없어 굶고 있다고 하면 "몰라, 그건 자업자득이지 뭐"하고 대부분 상대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고양이가 굶고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동정하며 할수없다는듯 돈을 빌려주었다. -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상은 정말이지 촌철살인 멘트를 잘 날리시는 분..

생각해보니 하루키 정말 고양이 좋아하죠. 그래서 책에서도 곧잘 언급되요. 지나가던 고양이를 본 이야기, 장어집에 사는 고양이, 호텔에 있던 고양이. 온갖 고양이들은 다 등장하는 거 같아요. ㅋㅋ

무언가 내용들이 가볍고 독특하고 살짝 섹시하고 그렇겠죠?
저는 하루키의 단편들에서 늘 그런 인상을 받았었어요 ㅎㅎ

에세이 속 하루키는 다정한 할아버지여서 그런지 섹시하다기 보다는 정감있고 독특했다랄까요? :) 읽으면서 하루키도 사는 게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왜 그렇게 책에는 손이 안가는걸까요ㅠㅠ
이제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 읽으시면 되는 건가요? 에세이인데도 순서가 있었다니...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서 그런가...ㅎㅎㅎ

네. 맞아요. ㅎㅎ 이제는 말씀하신 그 책만 남았답니다. 잠깐 다른 책 좀 봤다가 읽으려고요. ㅎㅎ

연재순서대로 책이 출간 된 거 같은데 연재하면서 하루키가 글쓰기에 익숙(?)해진다랄까요. 첫번째 책보다는 두번째 책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거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 있더라고요. ㅎㅎ 하루키한데 글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참. ㅋㅋ

이 책이 첫번째군요 :)
저는 하루키의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가 참 좋아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묘사들- 정말 반짝반짝하지요 :)

하루키 에세이를 보면 아무것도 아닌 소재로 참 재민게도 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시 소설가다 싶기도 하고 무엇이든 가볍게 보지 않는 것도 참 대단한 거 같고요. :)

제목부터가 뭔가 당기는 힘이 있네요.
에세이는 제목 짓기가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그러고보니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뭔가 문학적인 느낌이랄까요? 저녁 무렵 면도하기. 사실 읽어보면 그냥 면도에 대한 이야기이거든요. ㅎㅎ

요즘은 정보나 상식등 거의 모든걸 유튜브로 때우다 보니
책을 읽지 않은지 꾀 된거 같습니다.
책까지 읽어주는 경우도 있더군요 (요약해서 소개 정도 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정독해서 책을 읽어 봐야지 하면서 잘 못하고 있는 뉴비입니다~ㅎㅎ

사실 저도 요즘 책 읽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하는 시간이 더 길답니다. ㅎㅎ
그냥 누워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있으면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가거든요. ㅋㅋ

저희 집에도 무라카미하루키의 책이 한권 있는데~ 하필 영문이라.. ㅜ.ㅜ

아아, 하루키의 책은 개인적으로 한글로도 읽기 힘든데 영문이라니. ㅎㅎ

하하하... 젊은 손녀뻘 여인들에게 무척이나 상냥한 하루키옹의 글은 어떠할까 광장히 궁금하네요 ㅎㅎ

일단 전혀 야하지 않았답니다.(소근소근) :)

라디오이야기인가요? 소설은 아닌듯하고... 하루키 책이 너무 많아요. 일전에 영문번역본으로 서점 하나를 꽉 채운걸 봤다니까요 ㅎㅎㅎ

무라카미 라디오는 하루키가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 이름이고요. 이 책은 그 에세이를 묶은 것이랍니다. :)

하루키 정도면 원고 청탁도 엄청 많이 들어올 테니 그만큼 책도 많을 거예요. 글 잘쓰는 그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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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서평은 1회 스팀잇 서평대회 최종후보로 선정됐습니다.
지금 투표가 진행중이오니 오셔서 꼭 투표해주셔서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2회 스팀잇 책리뷰 대회 + 1회 최종투표 (총상금 47스달)

안녕하세요. 나하님. :)
늦게 댓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ㅠ 우선 최종후보로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한 편씩 읽어서 꼭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D

하루키 책을 보시는 분들은 정말 다 챙겨보시더라구요. 전 학생때 상실의 시대를 본 이후로는 본적이 없는데 (물론 신선한 충격으로 재밌게 봤었습니다) 시간날때 한번 다른 책을 찾아봐야겠어요.

사실 저도 소설은 잘 안 읽어요. ㅎㅎ 상실의 시대는 읽었지만 이후 나온 소설들은 읽기 어려워 포기했답니디. ㅋㅋ 그나마 에세이는 좋아해서 종종 찾아 읽는 편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