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topia #8] 옛 스승의 축시

in #photokorea6 years ago (edited)

@songvely May.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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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을 볼 옛 제자들이 가져온 카네이션.
그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는 동안 가장 최악이었던 시기를 고르라면 나는 불안과 외로움이 최고조였던 초등학교 시절을 망설임 없이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그 시절을 소중히 추억하는 것은 한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이면 내가 언제까지나 떠올릴 그 분.


4학년 3반 호랑이 선생님



1학년 때 선생님은 기억이 없고, 2학년 때 선생님은 무서웠으며, 3학년 때 선생님은 신경질적이었다.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칠판 앞에 나가 문제 푸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는데, 그럴 때면 앉아서는 풀리던 문제 앞에서도 머리가 깜깜해지는 것이었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왜 문제를 풀지 못하냐며 다그쳤고, 문제를 푸는 내내 옆에 서서 엉덩이를 때렸다. (내 기억에는 왜곡이 존재한다. 그 선생님이 기억하는 당시의 상황은 다를 지도 모르겠다.)


낮은 자존감, 불안, 상처, 외로움 속에서 만났던
4학년 3반 호랑이 선생님.


최고의 이야기꾼



우렁찬 목소리와 화통한 성격 탓에 호랑이라 불렸던 선생님은 수업이 일찍 끝날 때면 책을 덮고 조곤조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그 때에는 선생님이 해주시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주인공의 사랑과 복수, 모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숨을 죽이고,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그 이야기가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선생님께서 ‘자, 다음 이야기는 나중에’ 라고 하시면 주말 드라마의 엔딩을 본 것 마냥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 생활에서 ‘즐거움’ 이라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에 대한 또 다른 기억, 시(詩)



선생님은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첫 칭찬을 해 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 전에도 분명 칭찬을 받기는 했을텐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무작정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깨닫는다. 수박 겉핥기 식의 성의 없는 칭찬이 아니라 아이가 의미 있게 간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칭찬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칭찬도 양보다 질이다.


선생님의 칭찬 방식은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은 상으로 시를 써서 주시는 것이었다. 서예에 조예가 깊으셨던 선생님은 붓글씨로 한 자 한 자 곱게 적은 시를 아이들에게 선물해주시곤 하셨고, 나도 시 한 편을 선물 받았다. 지금의 내가 양 팔을 다 벌려도 부족할만큼 긴 화선지에 쓰인 시의 내용을 어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이를 잡고 쫙 펼친 어깨만큼 내 가슴은 '자랑스러움' 에 벅차 올랐다.


15년만의 재회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된 것은 4학년 때 이후 15년이 지난 뒤였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뒤, 학교 회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그 식당 나의 맞은 편에 낯익은 오래된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식당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립고, 감사하고, 그러면서 한 번도 찾아뵙지 않았다는 데 대한 죄송함의 눈물이었다. 어느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에는 예전의 총기는 사라지고 없었고, 우리를 쥐락펴락 하시던 목소리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서울까지 오지 못하는 분들을 모신 고향의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께서는 서울까지 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큼직한 노란 봉투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선생님이 직접 쓰신 시 한 편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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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은 몇 년 전에 찍어둔 것으로 지금 선생님의 시는 소중히 표구되어 고향 집 내 방 벽에 걸려 있다. 추영수 시인의 ‘나 너로 하여’라는 시이다.




나 너로 하여 - 추영수


나 너로 하여
비로소 목숨 얻었네
세월에나 씻기는
강가의 이름 없는 돌멩이다가
나 너로 하여
더하여
우리라는 이름도 얻었어라

나 너로 하여
비로소 귀 열었네
그저 흘러 예는
산섶의 바람이다가
나 너로 하여
예 이르렀네
더하여 생령같은 훈짐도 얻었어라

나 너로 하여
비로소 꽃 피었네
석달 열흘 장마비에 뭉개어져 내린
흙더미 위의 들풀이다가
나 너로 하여
예 이르렀네
더하여 오색 꽃 피우는 사랑도 얻었어라




선생님의 축시는 결혼을 하며 받았던 어느 선물, 어느 축하의 말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제자의 결혼을 축하하며 한 획 한 획을 그으셨을 선생님을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진심으로 축복받는 기분이구나 싶었다. 그 끝없는 감사와 기쁨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채운다.


지금 나는 이 곳에서 얕은 생각과 글 몇 줄로 부끄럽고 감사하게도 간혹 좋은 선생님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러 면에서 갈 길이 멀었다. 몇 년이 지나도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채울 수 있는, 나의 은사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 수 있기를.
-2018년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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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블리 Ed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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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었던 시간들이 점차 멀어지면서 스승의 날도 아무렇지않게 지나가게 되는 듯 합니다.. 대학교 교수님과는 졸업한 후에도 몇년전까진 꾸준히 인사드리고 했었는데 반성하게되네요..

학생들은 좋겠어요 ㅎㅎ
이쁜 쏭샘이 있어서 ㅎㅎ

저 그림은 제가 아니라 학생 본인을 그린 듯 합니다.. ㅋㅋㅋㅋㅋ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예요. 선생님이 직접 써주신 시와 그걸 표구해서 간직하신 쏭블리님의 마음 모두, 아름다워요. 제가 쏭블리님을 '좋은 선생님'이라 표현하는 것은 얕은 생각과 글 몇 줄 이라고 하셨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더 큰 마음 때문일 거예요.
스승의날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 소중한 제자들이 있다는 것도, 선생님들과의 좋은 추억이 있다는 사실도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송블리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심이 확실합니다.
옛 은사를 만난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ㅠ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또 한 번 부끄럽고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 분명 지금 제자들도 잘 성장해서 청첩장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 올거에요. ㅎㅎ

윽, 어제 수능 본다는 아이들 보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는데 결혼을 한다고 하면... +ㅁ+
소름 돋을 것 같습니다.^^;

은사님이 시를 주셨을때 정말 감동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멋지신 분이네요.

이미 멋진 선생님이신 것 같아요.
마지막 카드 자세히 들여다보니 쏭블리님 예쁘게 그린 그림이 보이네요!! :-)

ㅋㅋㅋ 위에 댓글에도 썼지만 저건 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그린 것 같더군요^^;; 목에 리본.. 크흡..
감사합니다 리아님 :)

내리 사랑의 느낌이 듭니다. 좋은 선생님들이신 것 같네요. 두 분 다요. :)

스승의 날이 될때마다 연락드릴 혹은 연락드리고 싶은 선생님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어느샌가부터 서글프더라고요.
못난 제자인 탓에 그렇겠지만요 :)

이번 스승의 날은 그래서인지 생뚱맞지만 송블리님이 떠올랐다는....! ㅎㅎ 스승의 날 잘 보내셨나요!
결혼선물로 받으신 축시는 제가 봐도 넘 뭉클합니다 ㅜㅠ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한다는 건 정말 특별하면서도 어려운 일인데, 스승님께 받으셨다니 더욱 특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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