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나의 마지막 서핑을

in #kr6 years ago

나중에 말고 지금 해봐요

세계 여행하면서 이뤄가는 버킷리스트의 기록
글/그림 키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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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들이 죽고 못 사는 발리에서도 아니면, 정말 아닌 거야!"

나는 서퍼들의 파라다이스, 발리에서 서핑과의 인연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리까지 서핑하러 가서 웬 입장 정리냐고? 파도를 타고 당신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는 롱보드를 상상해보라. 상상만 해도 얼굴이 짜릿해지는 그 경험을 나는 제주도에서, 그것도 서핑을 처음 배우는 날 당했다.

나는 바다가 좋았다. 탁 트인 풍경이 주는 시원함, 튜브를 타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나른함. 그중에서 보드와 하나 되어 파도와 춤을 추는 서퍼들의 자유로움은 단연 최고였다. 그렇게 동경을 마음에 품고 시작한 서핑은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에 피를 뚝뚝 털어트리면서 종료되었다. 그 후로 부산 송정에서 한 번, 제주 바다에서 다시 한번 서핑에 도전했지만, 내 키보다 큰 롱보드가 나를 덮치는 고통스러운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롱보드가 파도에 휩쓸려 부셔버린 것은 서핑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서핑은 무서워졌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의 자유로운 서퍼들를 향한 동경은 여전한 게 문제였다. 그렇게 서핑은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불쑥불쑥 내 마음의 문을 두들기는 새벽녘의 전 남자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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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서핑배우기

인 생 예 습 버 킷 리 스 트 [1]


세계 여행 중 한 달을 뚝 떼어서 발리에서 서핑 배우기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 먼발치에서 지켜만 볼 것인가! 전 남자 친구를 훌훌 털어낼 때가 온 것이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 번 해보자 서핑아!


우리는 초심자들을 위한 서핑 바다로 알려진 꾸따 비치 쪽에 숙소를 잡았다. 꾸따 비치는 레게 음악이 흐르고 맥주를 마시며 bro를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지만, 차분히 서핑을 배우기엔 조금 복잡해 보였다. 서핑 쪼렙인 우리들은 조금 더 레슨에 집중하기 위해 꾸따 비치가 아닌 바투 보롱 비치로 옮겼고, 그곳에서 서퍼 선수 출신 지미를 만났다.


지미는 매일 새벽, 파도 높이와 바람의 풍속에 따라 레슨 시간을 정했는데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지미를 통해 서핑을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김칫국을 시원하게 드링킹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리에서 서핑을 하다니! 오늘부터 난 서퍼로 다시 태어난다!! 를 외치던 그 순간, 큰 파도에 휩쓸려 보드와 함께 바닷속으로 말려들어갔고, 파도와 함께 우리 쪽으로 쏟아졌던 다른 서퍼의 롱보드가 아슬아슬하게 내 얼굴 옆을 빗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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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제 내 인생에서 서핑은 영원히 아웃이야!!"

쉬지 않고 몰아치는 큰 파도에 나는 결국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발리가 왜 서퍼들의 천국임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꼈다. 파도의 높이가 제주 바다와 비교도 되지 않게 높고 길게 계속해서 불어 닥쳤다. 서퍼의 동경이고 나발이고 내가 죽게 생겼다. "Jimmy! I don`t wanna surfing anymore!"를 외쳤고,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 서핑이 종료되었다.


인생 - 서핑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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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하고 있는 효밥이와 지미를 바다에 남겨둔 채 나는 선베드에 말려둔 수건처럼 조용히 널브러져 있었다. 물이 송골송골 맺힌 시원한 빈땅을 마시며 발리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서핑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바람은 적당했고, 햇살은 따뜻했고, 맥주는 환상 그 자체. 오! 내 인생에서 서핑을 빼니 모든 것이 완벽하네?


역시 사람은 해봐야 안다니까. 비록 내가 세탁기에서 굴러다니는 빨랫감처럼 보드와 함께 굴러다녀서 제대로 된 서핑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해보니 알았다. 내가 만약 서핑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것은 행복과 멀어지는 일이라고.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는 것처럼, 공포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었다.


무모한 도전을 하던 무한도전 시절, 멤버 한 명이 도전에서 실패하자 유재석이 말했다. "비록 A 멤버가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A 멤버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에이스가 있습니다." 그렇다. 나 역시 버킷리스트엔 실패했지만 아직 에이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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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열어봤는데 네가 원하는 게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


해보고 싶은 일을 막상 해봤는데도 생각보다 즐겁지 않다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저 다른 선물 박스를 열어본 것뿐이니까. 내 행복을 담은 선물박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 다음 버킷리스트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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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서핑 포기 경험담 이군요.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저는 단박에 렛슨없이 1시간 빌려서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는데,
누가 렛슨 안내를 하더군요. 그렇게는 탈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ㅋㅋ
그말 듣고, 단박에 이건 아니다 빠른 결론.
백사장에서 보드 옆에 세우고 사진한장 찍고
보드와는 영영 이별..

백사장에서 찍는 서핑샷이 정말 기가막히죠 ㅋㅋ 사실 그 사진 하나 찍으려고 서핑에 도전한 것도 있는데.... 결국 포기했습니다 ㅋㅋㅋㅋ유튜브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영상보면서 대리만족중이예요ㅎㅎ 다 자기만의 짝이 있나봐요~ 저도 이건 아니다 결정내리니 이제는 속이 후련합니다~ by 키만

어떤 영화엔가
서핑과 다운힐 스키, 스카이 다이빙 등이
지극히 미국적인 스포츠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보드를 한참을 바다로 끌고 나가서, 극히 짧은 순간 짜릿함을 맛보는 것이라고요.
스키도 한참 줄서서 리프트 타고 한참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은 잠깐 이고요.
스카이 다이빙 마찬가지이고요,

그런 긴 시간 투자하고 짧은 짜릿함을 느끼는 것과
위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요.

키만 님도 어렵게 도전하다가 서핑 포기 하고 후련함을 느끼시나 보군요.
약간 미련이 남으시는 듯..

저는 별 미련없이 포기..
포기하면 돌아볼 필요가 없쥬..

저도.. 올 겨울 다시 스키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휴.

저는 스노우보드도 타다가 때려친 경력이 있습니다 ㅋㅋㅋ by 키만

ㅋㅋㅋ 전 남친이 진짜 나쁜 남자군요 ㅋㅋ 헤어지고 세번이고 찾아가게 만들고 ㅋㅋ 저는 왠지 서핑 잘할거 같아요 ㅋㅋ 보드랑 스키 다 어릴때부터 잘 타고 수상 스키도 웨이크보드도 어렵지 않게 일어나고 그랬었는데 ㅋㅋ 또 다르려나 +_+a .. 언젠가 저도 길게 서핑만 배우러 갈 계획입니다! 발리든 제주도든 하와이든!!

제가 구질구질 질척거렸죠 ㅋㅋㅋㅋ 막판에 너 죽고 나 살자~~~ 해보니 더는 미련이 없네요 ㅋㅋ 보드랑 스키 그리고 수상스키까지 클리어하셨다면 서핑도 쉽게 일어나실 수 있을거예요! 에그님 완전 만능태릉인인데요? ㅎㅎㅎ 제주도는 서핑하기엔 조금 힘든 바다인 것 같아서 발리를 추천합니다!! by 키만

끄아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롱보드를 상상했어요. 으으으~!!!
공포와 행복이 공존할 수 없다는 말에 대공감입니다. 휴우-
귀여운 그림에 무언가 맥주처럼 시원한 글이에요! ㅎㅎㅎㅎ

진짜 그 짧은 순간이 영화처럼 슬로우 모드로 느껴지면서 주마등(?)까지 스쳐지나갔다니까여 ㅋㅋㅋㅋㅋ 어우 또 상상하니 얼굴이 얼얼합니다. 귀여운 그림에 시원한글이라니 기분이 좋네요 >< 채린님 서핑매거진이야말로 바닷 소리가 들리는 시원한 매거진인걸요! by 키만

서핑을 즐기신다구요...ㅋㅋ
멋지십니다.

동남아가서 스노우쿨링만하는 저랑은 격이다르시네요..ㅋㅋ

이제는 더는 하지 않습니다.... ㅋㅋ 서핑이 무서워졌거든요. 그래도 제 마지막 서핑을 발리에서 끝내니 기분이 시원합니다~ 스노우쿨링도 엄청 재밌는걸요! 바다에 안 들어간지 너무 오래되어서 바다가 그리워요~~ by 키만

서핑 정말 배우고 싶어요! 호주에 있을때 배우고 싶었는데..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시도도 못했어요!! 세계여행을 떠나기전에 수영부터 배우고 가려구요!!:)

앗! 앞으로 또 나올 버킷리스트 이야기인데 유메야님한테만 속닥속닥 알려드릴게요 (저도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수영을 못했는데, 여행 중에 수영을 배워서 지금은 바다 수영도 거뜬합니다! 나중에 썰을 자세히 풀겠어요 히히) by 키만

넹ㅎㅎ기대할게요❗️❗️ 저는 저의 그분과 내년에 해외 여행을 계획중이에오!! 워너비 스티미언 이시니 항상 포스팅 기대됭ㅎ😁👫

오옷! 그분과 해외 여행이라니 듣기만해도 달달하네요. 워너비 스티미언이라뇨.... 저흰 그저 쪼렙 스티미언일뿐입니다 허허... (눈물이 왈칵) ㅋㅋㅋㅋㅋㅋㅋ 늘 포스팅 기대해주셔서 감사해요~~ 힘내서 더 열심히 글 써야겠어요! by 키만

ㅋㅋㅋ발리에서 한달살기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저도 서핑은 포기!!! 바다에서 보드랑 한번 구르고 나면 정말 내 목숨이 소중해지지요:)ㅋㅋㅋ

오! 서핑포기자 동지를 발견~~~ ㅋㅋㅋㅋ 목숨은 정말 소중하니꽈요. 실제로 파도에 말려서 ㅅ ㅏ...망한 사람도 있다고 해요. 저희는 현명한 판단을 했숩니다 ㅣㅋㅋㅋㅋ 그나저나 발리 한 달 살기 정말 좋지않나요? ㅜㅜ 다음에 갈때는 꼭 비자연장을 신청해서 2달은 보내고 오려구요!!! by 키만

중간중간 그림들 너무 귀여워요><
저도 활동적인 스포츠 엄청 좋아해서 겨울엔 스키장에서 살았는데 ㅠㅠ 다리수술 하고 난 후로는 절대 안된다고 해서 ㅜㅜ 이번에 서핑해도 되냐고 물어봤다가 주치의쌤에게 엄청 혼났다는 ...ㅋㅋㅋㅋㅋ 저도 저만의 소소한 버킷리스트 빨리 이루고 싶네요:)

ㅎㅎ 그림 괜찮나요? 샘터님, 저도 스노우보드 동호회 활동을 했었는데 뒤에서 오는 보더랑 부딪혀서 넘어지는 바람에 수술까지는 아니고 깁스한 적이 있거든요. 그 후부터 잘 못타겠더라구요. 제가 도전은 쉽게 잘 하는데 겁이 많은가봐요 ㅋㅋ 샘터님은 수술까지 하셨다니 ㅠㅠ 의사쌤한테 혼날만 합니다 ㅋㅋ 자제하세요~~ by 키만

전 발리가서 이런거 안하고 뭐했나몰라요 ㅠㅠ
계획없이가면 늘 이런답니다 ㅋㅋㅋ

아니 대체 발리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 by 키만

기억이 안나요 ㅋㅋ 풀빌라에서 놀고 랍스타 뷔페가고 포테이토해드가고 마사지 두번받고 ㅋㅋ 뭔가 하려고는 하지않고 놀고 먹기만 했던거 같아요 ㅋㅋㅋ

제 첫 서핑은 포르투갈에서 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빨리 일어나 보드에서 중심을 잡고 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스노우보드를 타시던 분들은 금방 적응하실 것 같아요. ㅎㅎㅎ 제게는 너무나 체력소모가 큰 스포츠인 듯 해요. 물도 무서워하고...ㅠㅠ 그런데 카약킹은 좋아함...ㅋㅋㅋㅋ

제가 스노우 보드를 타서 그런지 서핑에서 쉽게 중심 잡고 타긴했었는데, 체력이 없으니 물에서 허우적대니 금방 지쳐 떨어진 것 같아요 ㅠㅠ 지금은 체력이 쬐금 생기긴 했지만 이제는 더는 타지 않습니다. 목숨은 소중하니까여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포르투칼에서 서핑은 또 처음 들어봅니다. 역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것 같아요 by 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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