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감상] 장민승, 사계 - 날줄의 생

in #kr6 years ago (edited)

저번 일기에서 언급된 씨실과 날실로의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장민승 작가의 사계에 관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 장민승, 사계
May. 2018. nexus 5x로 촬영.

봉제와 미싱은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작업들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아직도 오래된 골목 어딘가에는 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노찾사의 사계의 가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미싱은 언제나 돌아가야만 했고 노동이 괴리된 삶은 사실 그 시대를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였을게다. 나를 포함하여 지금 젊은 세대에는 짐작하기 어려운 삶의 결과가 결국 삶에서 이루어야할 - 소중히 다루어져야할 어떤 것들에 대한 유예로서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먹고 살기 바쁜 삶이지만, 먹고 살기 바쁨을 미덕으로 간주했던 시대는 주변의 세계가 그저 흘러가는 것으로 여겨졌던 시선과 궤를 같이했을 것이다.

취미가 아닌, 업으로서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재봉들과 미싱 기술은 밥을 먹고 살기 위한 도구가 된다. 도구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재료가 되는 삶을 짐작해본다. 이제는 쓸모가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니다. 있으면 사는 것이고 없으면 죽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재료가 되고 세계의 재료가 되는 또 다른 삶을 떠올린다. 자발성도 넓은 선택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과가 명확한 이분의 선택지에서의 선택은 애초에 정해진 중력만이 작동할 뿐이다.



© 장민승, 사계
May. 2018. nexus 5x로 촬영.

장민승 작가의 사계는 미싱사들의 작업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의미를 지닌다. 천장에 매달린 날줄들을 보며, 나는 날줄의 생을 떠올렸다. 무수한 삶들은 같은 방향으로 곧게 내려간다. 씨줄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들이 엮일 일은 없을 것이다. 씨줄이 없는 날줄의 생이란 참으로 외로운 법이다. 그것은 작업, 또 작업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직조하지만 날줄이 가지는 삶과 삶의 연결, 가끔은 삶을 가로지를 수 있는 유쾌한 전복의 가능성을 꿈꾸기에는 버거웠던 것이다.

미싱을 통해 수놓아진 사계의 가사들은 이제 그러한 삶의 궤적이 확정적이 된 것만 같아서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업에 대한 장인 정신을 드러낼 것처럼만 보이는 겹겹의 수들을 편안히 즐기기 미안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는 무언가 시대와 사회와 상황이 이끈듯한 장인의 삶이, 다른 것에 대한 유예와 포기를 통해 이루어진 듯한 생각이 드는 순간 날줄이 길고 곧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씨줄을 어떻게든 겹쳐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장민승, 사계
May. 2018. nexus 5x로 촬영.

나는 어떤 작품을 볼 때, 항상 내 삶에 대비해서 보는 편이다. 굳이 예술적 복잡한 이론과 심미적 쾌를 분석해서 놓지 않더라도, 잘 다가가고 닿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작가가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장면들보다도 인터미션처럼 붉게 지나가는 짧은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사기의 두 눈이, 몽롱하지만 붉게 물든 마음이 일순간 나에게 말을 건네며 찬찬히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놓아진 이 마음들을, 인생들을 오롯이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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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이 없는 날줄의 생이란 참 외롭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날줄이 가지는 삶과 삶의 연결이라..
좋은 이야기에 마음을 나누고 갑니다..

서로 닿기위한 노력이 결국 씨줄을 만들고 날줄과 잇기위한 노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색깔과 굵기를 가진 씨줄들이 다채롭게 감기어 무수한 날줄에 닿기를 소망합니다.

날줄의 삶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일에 너무 최선을 다하다가 그만 외곩수의 삶의 살게 되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범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롭고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지게 되지요. 그러다가도 어느날 돌아보면 일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제가 본문을 이해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모든 감상은 각자의 삶에 비추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의 감상도 마찬가지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

저도 '외로우지만 최선'과 같은 삶의 방식이 항상 바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물론, 선택지가 애초에 적다면 별다른 여지는 없을 것이기도 합니다. 씨줄이 가득한 세계였으면 좋겠습니다. 세계가 조금 더 촘촘해도 될 일입니다ㅎ

인덱스전볼겸 갔다가 휴관이라서 그냥왔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직업상 봉제하시는 분들을 가깝게 접했어요. 동대문 뒷골목만가도 아직도 그들의 삶은 바쁘고 틈없이 흘러가는 걸 목격할 수 있어요. 참 피곤하고 힘들면서도 노동으로써만 받아들여지는 직업이자 분야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갑자기 슬퍼지는ㅎㅎ;;)

아시다시피 가장 노동 집약적인 직업 중 하나이죠.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기에도 모자란 일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점차 지나면, 아마도 (과거에 비해서) 명맥만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우와. 제게는 좀 어렵지만
정말 수준 높은 글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글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감상은 현실과 삶으로부터 기인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글도 이렇게 적게 되는 것 같습니다ㅎ

얼마전에 소금 관련한 전시를 갔다가, 인도의 소금 채집하는 업을 가진 가족의 가옥을 그대로 옮겨둔 걸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왔던게 생각이 나네요. 누군가의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담겨진 그 집이 마음에 와서 박혔었는데, 짐작할 수 없는 그 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 집이 떠올랐나봅니다-🙏

삶을 담은 전시를 좋아합니다. 가끔은 삶을 엿보는 것이 미안해질 때도 있습니다. 각자의 생의 궤적이 다르기에 완전히 이해한다기보다는 결국 더듬는 작업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닿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소금 관련한 전시는 듣기만 해도 궁금해집니다. 사실 소금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 많을 법 한데 말입니다 :)

자발성도 넓은 선택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과가 명확한 이분의 선택지에서의 선택은 애초에 정해진 중력만이 작동할 뿐이다.

그 정해진 중력의 작동에 의해 현재의 삶이 촘촘하게 짜여진 것이라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네요.

우리가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어떤 "선택지"이냐에 한정됩니다. 그 안에서 자유롭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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