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diary] ㄱㄴㄷ일기 1

in #kr6 years ago

Seoul, May. 2018, Nexus 5x


번호일기와 별반 다를바 없는 형식이지만, 오늘은 그냥 ㄱㄴㄷ를 써보기로 한다. 하지만 글의 서두는 ㅊ 부터 시작한다.


ㅊ.

최근에

보게된 전시와 작품에 대한 글을 길게 적어내려가다가 그만두었다. 사진과 함께 전시 소개를 올릴까 하다가, 개인 소장용이 아닌 이용에 대해서는 조금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중 송신과 같은 예이다.)물론 대체로 무리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이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일뿐더러 글을 올림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홍보가 되기 때문에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입장으로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광고 같이 애초에 널리 퍼질수록 이로운 성질의 저작물이거나 저작권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Creative commons에 해당하는 저작물이 아닌 이상, 지워지지 않는 플랫폼에 올리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판례를 좀 뒤적거려보고 어디까지 괜찮을지 살펴본 뒤에 올릴테다.)


ㄱ.

공정이용(fair use)으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공정이용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물론 비영리적 사용이라고 모두다 공정이용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영리적 사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정이용이 안되는 것은 아닌데 스팀잇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건 7일 뒤에 삭제하기 어려운 것과, 보상 거절을 하지 않는 이상 생기는 보상을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7일 뒤에 노출을 원하지 않는 글은 가리기 같은 옵션만 주어도 그나마 괜찮을 듯 싶은데, 어찌되었든 참 애매한 노릇이다.


ㄴ.

날씨가

최근에 상당히 좋았다. 일상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존재의 형체가 또렷이 드러나는 날에는 세계의 결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경계가 명확한 날이 참 좋다. 경계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다.


ㄷ.

닫힌

시스템은 결국 닫혀 있는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우화가 생각난다. (각색되어 있을 수 있다.)

바둑을 두던 두 청년이 어느날 산에 들어가 50년동안 서로 바둑을 두면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각자의 전략에 대한 대비책과 최선의 전략을 만들고 나서, 이제 세상의 바둑을 제패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가지고 하산했다. 그들은 이미 노인이 되어 있었다. 길을 지나다 바둑을 두는 사내들을 보게 되었다. 대전 신청을 했고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간 세상의 바둑은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었다.

닫힌 시스템은 정말로 닫혀 있는 것이다. 닫힌 상태에서의 가늠은 언제나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닫힌 시스템 안에서의 자체적인 평가는 잘 믿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바라보는 시선만을 믿을 뿐이다.

--

ㄹ.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기계적인 요약본을 읽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데 요약은 대체로 생각의 과정 대신 결과로서의 지식을 전달하는데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한 요약은 책을 실제로 읽어보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요약본을 읽는 것도 정보를 얻는 효율적인 행위이며 여러 분야의 지식을 엮는 데에 상당히 괜찮은 전략일 것이다. 허나 이것은 이미 가공된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대체로 이런 지식과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휘발된다. 스스로 더듬어가며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ㅁ.

무의미한

생산보다는 차라리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편이다. 물론 무의미하고 기계적인 생산은 도처에 널려있다.


ㅅ.

서울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한가로운 오후의 느낌이 참 좋았다.

Seoul, May. 2018, Nexus 5x

씨실과 날실로라는 인상적인 전시가 있었다. 씨실과 날실이 각 가닥으로만 존재하면 한없이 휘어지고 끊어지는 존재겠지만 서로 교차하며 무수한 교차점을 이루게되면 경계를 생성하고 공간을 형성하는 힘을 갖게된다. 씨실과 날실의 교차점은 힘을 받아들이고 견디기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교차'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미술관에 가게 되면 작품보다는 사실 작품이 설치된 공간을 위주로 살펴보는 편이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과 작품이 놓여지지 않은 여백이 서로 이루는 균형을 살펴본다. 이 전시에 포함된 넓은 여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넓은 여백을 마주하고 있으면 사람도 전시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진다. 나도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작품과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본다.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ㅇ.

오프라인의

일들이 바빠지기도 했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생기면서 즐거운 상상과 확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다보니 요즘에는 스티밋에서 유영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언제나 균형은 중요한 법이니까. 균형점을 어디로 옮길지 고민한다. 사실 이 곳에 글을 쓰는 행위가 지금의 나에게 비용효율적인 행위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무언가를 적는 것은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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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이 일기를 재밌게 읽어요. 왜냐하면 @qrwerq님이 항상 재밌게 써주니까요. Thank you.

감사합니다ㅎㅎ 언젠가 한번 본격적인 개그(?) 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와~ 신나네요! 기대합니다.

자신이 하는 전시를 다녀온 관객이 사진과 함께 온라인에 소개 글을 올렸다고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작가는 .. 상식적으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스팀잇의 형태는 유례가 없는 것이어서 자기검열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조심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스팀잇만 가지는 여러가지 제한점과 특성으로 인해 다른 매체보다는 조금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가서 공간을 살펴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새로운 시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참 매력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담에는 저두 그렇게 한번 느껴봐야겠어요. 전시의 일부가 되는 느낌도 경험해보고 싶구 ㅎ

작품들의 배치와 공간을 점유하는 위치를 찬찬히 살펴보시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움직임을 관찰하실 수도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저는 작품 그 자체보다 항상 작품들의 조화를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ㅎㅎ

ㄱㄴㄷ 일기도 참 좋네요.
간결하지만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이에요.^^
작품 하나를 공유할 때에도 이것이 작품의 가치와 창작자의 의도를 손상시키는가를 따져보는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저작권 교육이 요즘에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유형의 재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형의 저작물이 아닐까 싶어요.

번호일기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서두에 핵심어(?)를 배치해놓아 조금 더 명확하게 문단의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ㄱ 부터 쓰려면 생각보다 어려워서, 그냥 아무렇게나 배치(...)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참 좋았던 작품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때, 확실히 사진이 있어야 그 맛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편 너무 자세하게 보여주면 오히려 작품이 담고 있는 아우라를 프레임 안에 가둔채 전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교육, 연구, 비평과 같은 작업이면 어느정도 이러한 목적이 감안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보곤 합니다.

다른 지식재산권에 비해 의외로 저작권이 꽤 강한 권리입니다. 물론 모호한 지점도 많지요.

  1. 가리기 옵션이 있다면 정말 좋을것 같아요! 꼭 필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2. 날씨 덕분에 부모님과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오네요^^ 이 비도 즐겨야겠죠?

  3. 무의미한 생산이 되지 않도록, 쓰는 글에 더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4. 전시회 같은 곳을 다녀온지 정말 오래되었네요. 사진만 봐도 마음이 오물오물 입을 벌리네요. 나도 뭔가 영혼의 음식을 줘! 하고 책망하는 기분입니다.


좋은 사진과 다채로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일기 참 좋네요^^ 좋은 휴일을 보내셨군요!!

7일이 지난 후 자동으로 가리기 혹은 그렇지 않기 정도의 옵션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예 지워지는 것은 블록체인의 철학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 듯하니까요. 비가 오면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모든 글에 항상 일정한 수준의 정성을 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재에 따라 날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스티밋이 글을 적기에 상당히 괜찮은 플랫폼은 맞지만 다른 플랫폼과 비교하여 최고라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글을 적어보아도 좋겠네요. 글쓰기 플랫폼의 포트폴리오 구성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저도 상당히 오랜만에 전시회를 가본지라, 이것저것 살펴보고 싶은게 많더군요. 전시회 공간이 주는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전시되어 살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맞습니다. 매력적인 플랫폼인것은 맞지만, 최고라고 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qrwerq님의 아이디어가 가득 담긴 글이 나오면 읽어보고싶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스팀잇에 글쓰는 것이 즐겁다고 하시니
여기서 놀고 있는 저같은 사람도 덩달아
으쓱해지는 기분입니다.

글에서는 다양한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상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ㅎㅎ 그냥 하던대로 하는 것 뿐이지요.

보통,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적습니다. 무언가라도 남겨놓으면 돌아볼 때에 즐겁더군요 :)

전시 주제가 흥미롭네요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매우 좋아하실 것이라 짐작합니다. 심지어 무료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돈 내고 들어가는 다른 전시보다 좋았습니다.

저희도 최근 시립미술관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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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봐도 무슨 작품인지 딱 알겠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직조가 완성된 상태라 저는 작품의 완성(수정이라고 해야할까요?)에 참여하지는 않고 감상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무의미한 말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물론 지금도요)... 문득 반성합니다.

@qrwerq님이 쓸 전시 비평(?)을 생각해보다 나중에 앨범 낼 때 @qrwerq님에게 소개 글을 부탁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요즘은 스팀잇에서 재미난 일들이 자꾸 벌어져서, 제 작업 구상도 스팀잇을 떠나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오프라인에 즐거운 일이 가득하더라도 가끔씩 소식 남겨주세요.

제가 그렇다고 어디가는 건 아닙니다 (...)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스팀잇에 쏟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간 워낙 많이 해놔서ㅎㅎ) 아마 소식은 의외로 자주 남길 것 같습니다ㅎㅎ 댓글을 찬찬히 달게되는 작업이 아마 매우 느릿느릿하게 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야기드리듯이 언젠가는 무조건 꼭 답니다.)

사실 무의미한 것들은 의미있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무의미한 것들이 항상 나쁜것은 아닙니다. 모든 노래에 간주가 전혀 없고 가사로 빽빽히 들어차있다면 그것도 뭔가 이상한 일이겠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가사가 있어야할 노래에 간주만 들어있는 것이지, 간주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

음악가에게 앨범은 자신의 삶으로 잉태한 자식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씀 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그러한 작업을 잘 할 수 있을지는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앨범을 내시게되면 스팀잇 내의 출중하신 작가님들께 한번 의향을 여쭈어보시고 그 후에 혹여나 남는 (아주 조그마한) 자리가 있으면 살짝 (소심하게) 끼는 정도의 위치 정도면 저는 만족합니다.

사실 즐거운 일이 가득하기보다는 어지간하면 일을 즐겁게 하는 편에 속합니다.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지요 (...) 즐거워져라. 즐거워져라. (일이 쌓이고 있어서 지금 정말로 자기 최면 중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게 음악에 비유해주셨군요. 제 노래에는 전주도 있고, 간주도 있고, 후주도 있으니 제 자신보다는 제 음악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것도 관습을 따른 것이니... 또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앨범이 저의 삶으로 잉태한 자식이라면... 자식 농사에는 진즉 실패했지만 내 눈엔 예쁘니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실은 앨범 소개글이라하면... 암묵적으로 '좋은 말만 써주세요'가 되지만, 왠지 @qrwerq님이라면 그 좋은 말을 굉장히 잘 써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앨범을 내야겠군요.

저도 즐거우면서, 즐겁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요. 어쨌건 마무리만 되면 돌이켜봤을 때 즐거운 일이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ㄱㄴㄷ일기 형식, 아주 좋아요!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단어로 시작하는게 빡센 일이더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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