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essay] 바빴다.

in #kr6 years ago (edited)


그동안 눈코뜰새 없이 바빴기에, 글의 주기도 조금 늘어지게 된 것 같다. 바쁠 때에는 삶의 방향키 자체를 꽉 잡고 있기에도 벅찬 시간인지라 내가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관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보통은 생각한 다음 행동하지만, 행동한 다음에 찬찬히 돌이켜보며 생각을 되새길 때가 있다. 그런 시기를 겪고 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인연에 대한 죽음의 소식을 들을 때에는 언제나 당혹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특히나 예측하기 어렵고 그간의 관계와 이미지에 비추어 상상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내가 먼저 연락하느니, 네가 먼저 연락해야하느니'와 같은 것에는 굳이 연연하지 않고, 생각이 나면 최대한 닿으려고 시도하는 편인데, 그럼에도불구하고 닿지 못하는 관계들이 종종 있다. 그냥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살곤 하는데, 그 연락 두절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로막힘에 기인한 것을 알게되면 가끔 섬뜩해진다. 죽음의 신호가 닿지 않는 한, 그 관계는 살아있음과 죽어버림의 중간 지점 - 모호한 부분에 놓여있는데, 확인하는 주기가 늘어질수록 불안해 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이 무수한 관계들이 중간 지대에 놓이게 될지 상상한다. 매일 보던 관계들은 어느새 일주일에 한번 씩 보는 관계가 되고, 일년에 한번씩 보는 관계가 된다. 그러다 연락처가 바뀌거나 어떤 (관계를 흔들어 놓을)
이벤트들이 발생하면, 이제는 모여야할 때가 되어서만 모이거나 건너 전해듣는 관계가 된다. 본질적으로 모든 관계들이 이런 관계로 바뀌게 된다면 결국 나도 삶과 죽음의 회색지대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후의 보루인 가족은, 결국 이런 회색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 외에 맺는 관계들 또한 세계를 구축하고 마주하는 영역들이기에 이 영역들이 회색으로 변하고 결국 어둠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슬픈일일 것이다.

열심히 나아가다보면 날줄의 생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느슨한 씨줄과 팽팽한 씨줄이 모두 존재하는 세계에서, 씨줄들이 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줄만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세계는 광활하고 정갈하지만 가끔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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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하고 정갈하지만 가끔은 외롭다는 마지막 문장이 너무 깊게 와 박히네요. 회색의 영역들로 옮겨가는 관계들을 생각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마음이 착잡해질 때가 많습니다. 스무살 때부터 타인에게 연락을 하는 게 늘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전화 공포증이 있는 상태구요. 그래서 연락을 못 하는 대신 정성들여 글을 써서 개인 SNS에 공유하고 있어요. 이렇게나마 나의 근황과 생각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정말, 가끔은, 제가 만든 스튜디오에 갇힌 기분이 들어요. 용기가 필요한 영역이 참 많네요ㅎㅎㅎㅎ

회색도 세계의 일부일테니,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제나 타인에게 연락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연락한다고 항상 관계가 변하거나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거리가 바뀌는 것 자체가 종종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로 세계가 정지하고 빛이 바래져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내가 만드는 씨줄과 상대방이 뻗는 씨줄이 부담없이, 하지만 풀리지는 않도록 닿기를 바라곤 합니다. 씨줄이 항상 팽팽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매 순간이 용기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

죽음은 언제나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아요..모두가 바쁘다는 이유로
소원해지게 마련인 요즘엔 더 그렇지요..
함께 행복한 삶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일이지요~ 바쁘시더라도 컨디션을 돌보시길
바랍니다~!! 자주 글을 만나고 싶어요^^

무심하고 흔하게 지나가는 죽음이라지만, 연이 닿았던 사람의 죽음은 그리 쉽게 지나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덜 바쁘고 싶은데 제가 일복이 좀 많습니다.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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