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in #kr6 years ago

Apr. 2018. Nexus 5x.


오늘은 스팀잇에 가입한지 101일째 되는 날이다. 하나씩 증가하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일상에 표지판을 세워두는 작업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기념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 이 곳에 가입해서 글을 쓸때보다는 확실히 여기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 물론, 깊어졌다고 해서, 처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상대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적고 생산할까를 곰곰히 고민해보면, 결국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인정받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역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각자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고 잘 해오던 것들, 즐겁게 해오던 것들에 대한 인정이라고 해야하나, 결국 이러한 것들이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주요한 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 그리고 좀 더 가시적인 형태로 - 인정이 드러난다고 느꼈다. 이러한 인정은 타인에 의한 인정일수도,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인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때, (상당히 시간이 지난 이슈였지만), 투자자와 창작자 사이에서 - 혹은 투자와 창작 사이에서 무엇을 더 강조해야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논쟁에서 사실 내가 딱히 '둘 중 어느 하나의 입장'을 대변해서 딱히 이야기할 만한 의견이 없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결국 창작이든 투자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인정받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그 두 개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적 평등과, 형평성의 고려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도 자본과 노동에 대한 - 응당 받아야할/받고 싶은 - 적정 '가격'에 대해 매우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 떄문이기도 하고. 이에 대해서는 아마 조만간 한번 글을 써볼지도 모르겠다.) 각자 자신이 가장 올리고 싶은 것을 공개하고 드러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을 내어놓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그러니, 그 것이 숫자로 환산된 평가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적잖이 기뻐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나는 여기 공간을 일종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영.알.못 이기는 하지만) conversation 보다 dialogue 의 느낌으로 바라보곤 하는데, 그래서 내 경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글에 대한 댓글, 댓글에 대한 댓글과 같은 반응은 글과 같이 줄기처럼 얽히고설킨 글타래, 아니 대화 타래 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댓글이 글보다 좋을 때가 있다. 댓글에서 보이는 시선이 글에서 모호하게 서술된 세계를 밝게 비추어기도 한다. 혹은 댓글이 세계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이 공간의 건축에 기둥과 대들보를 덧대주신 모든 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나 혼자만의 건축이었다면, 분명히 흔들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벚나무에는 아쉽게도 한정된 수명이 있다고 한다. 하긴 수명이 없는 생명이 어디 있겠냐만은, 어지간하면 길어야 백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공사부지에 있는, 연식이 조금 오래된 벚나무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 옮겨심어지기 보다는 과감히 베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벚나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벚나무는 매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낸다. 나는 어떤 벚나무의 매년 그 맘때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늘어놓으면, 언제가 언제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외삽(extrapolation)을 좋아하는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벚나무가 존재했는지 짐작이 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이다.

왠지 이 공간도, 그러한 규칙을 따르게 될 것 같다.

Sort:  

conversation 보다 dialogue 의 느낌으로

@qrwerq님 글 읽고 댓글 달 때마다 잔잔하게 대화 나누는 느낌입니다.

이 공간의 색깔을 보아주시고, 경험과 지식과 시선을 나누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조금 느릿느릿하게 대화를 지속할 때도 있지만, 독백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약간 고루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화가 글로 남겨진다는 느낌이 드니, 저 스스로는 생각보다 가볍게 달기는 조금 어렵더라고요- (역시 이건 제 방식일 뿐이긴 합니다만ㅎ)

벚나무에도 수명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그럼 벚나무 뿐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수명이 있는 거겠죠?
새삼 더 소중하고 찬란하게 느껴집니다.
글로 소통하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스팀잇을 하며 느끼고 있답니다...100일 축하드려요!

저도 어떤 또다른 벚나무가 베어지기 전까지는 수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나무들도 각자의 수명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나무들의 순간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다른 곳들보다 유독 소통의 측면이 강조되는 곳이 아마 스팀잇이 아닐까 합니다. 축하 감사드립니다. :)

스팀이 참 묘한 곳인 것 같아요. 솔직이 시간을 더 뺏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글을 읽고 나면 꼭 댓글을 달고 싶은 글이 있잖아요. 지금 이런 글처럼 생각하게 해주는 글 너무 많이 읽으면 안될 것 같아요 ㅎㅎ . 잘 봤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스팀잇과 오프라인 생활의 비중을 얼마로 하는 것이좋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이기는 한데, 아직은 잘 조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떤 글에 댓글을 달 때에는 찬찬히 달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느릿느릿(?) 달게 될 때도 있으니, 각자의 속도와 호흡대로 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글을 읽고 찾아보니 저는 오늘 104일째가 되는 날이네요. 100일이 넘어간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씀처럼 조금 더 깊은 이해와, 익숙함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도 역시 스라밸을 맞추는 건 힘들어서, 글을 쓰고 읽으며 허덕허덕 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지요)

대화 타래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어쩌면 그 매력적인 소통의 연속이 제가 허덕거리면서도 스팀잇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겠지요. qrwerq님의 글은 개인적으로 읽기 쉬운, 가독성이 높은 글은 아닙니다. 한 번 읽고, 또 읽고, 가끔은 그 이상도 읽습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은 댓글을 달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가게 됩니다. 조금 더 깊어진 채 나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

100일을 넘기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우연히 체크해보니, 100일 정도 되어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자신을 드러내어가며, 또한 적절히 소통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글을 적을 때에는 일상을 한번쯤 돌이켜보고 찬찬히 생각하고 적는 편이다보니, 그리고 제가 적는 문장이 사실 그리 좋은 문장은 되지 못하여서,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씀에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특히나 쉽고 간결한 문장들이 재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서, 그러한 플랫폼에서 단어의 힘을 빌린 개념들이 어지럽게 산개하여 있는 글은 아무래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 스스로 상당히 불친절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살펴보아주셔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저의 표현이 혹시나 부정적인 의미로 전달되지는 않았을까 싶어졌어요. 글이 좋다 아니다를 떠나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더 정성과 노력을 들여 읽어야 하는 글이라는 의미로 드린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qrwerq님의 글과 생각들을 좋아하구요. 요즘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일부러 불편함을 감수하고,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그 불편함이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주고, 결국에는 더 깊은 기쁨을 주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좋은 밤 되시길 바래요.

전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주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새로운 시선을 얻기도 하며, 제가 적는 문장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기에 좋기도 합니다.

저는 종종 문장과 글이 일상의 여백에 채워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편함' (이 것 역시 저에게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을 통해, 여백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챙겨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역시 어떠한 멘트를 함에 있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찬찬히 읽어주셔서 제가 무척 감사한걸요 :)

전...아직 멀었습니다.

가입이 1월이라고 나오길래..엄청 오래된 줄 알았는데..아직도...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가다보니, 앗- 하는 사이에 세자리 숫자의 나이(?)를 보게 되길 거라 믿습니다.
저는 진짜로 스스로 좀 오래된 것 같은데 (정말 느낌 만이죠.) , 생각보다 시일이 많이 지나지는 않아서 또한 놀라긴 했습니다.

때로는 댓글이 글보다 좋을 때가 있다. 댓글에서 보이는 시선이 글에서 모호하게 서술된 세계를 밝게 비추어기도 한다.

이 말 너무 공감되요. 무심코 물어보는 질문에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있어요. 저도 아직 100일은 안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쓰고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게되는데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적절한 균형감으로 스팀잇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네요 :)

저는 (스스로의) 생각의 확장과, 확장을 위한 주고받음의 과정을 매우 좋아하다보니, 특히나 댓글을 유심히 보게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가볍게 댓글을 남기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제가 댓글을 바라보는 방식일 뿐입니다.) 저도 각자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결국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틈틈히 제 블로그의 댓글을 보며, 그리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블로그에서의 대화를 보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댓글이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어떤 벚나무가 매년 꽃을 피워내는 것을 매년 찍고 계신다니 놀랍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면, 어떠한 댓글들이 달렸나를 유심히 보게 됩니다. 글과 댓글이 결국 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아마 그러한 것이 다른 (출판용) 블로그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나무도, 사람도, 삶도 주기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주기의 반복과 시간에 따른 약간의 변화가 느껴질 때면, '이렇게 서서히 시간이 조금씩 전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년에도 다시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걸 보고 싶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사진에 담습니다.

때로는 댓글의 수준과 깊이가 원글보다 훨씬 훌륭한 경우도 종종 봅니다. 저야 창작자나 투자자 어느 쪽에도 속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종종 뻘글도 쓰고 많은 분들의 글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만 해도 참 좋아요~ ^^

사실 저는 누구든 창작자이자 투자자라고 생각해요. 스팀의 투자를 통해 새로운 컨텐츠를 만드는 분위기를 '창작'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만드는 컨텐츠는 결국 각자의 삶의 경험과 기술의 '투자'로 인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아참 저는 사실 뻘글을 무척 사랑합니다. 뻘글이 결국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

속물적이지만 분명히 숫자로 동기부여가 되죠 :)
하지만 그 숫자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노동과 시간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정도면. 200일은 가볼 만한 시스템인가요? ㅎㅎ

숫자의 긍정적인 측면을 잘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숫자에 대한 균형적인 시선을 바라보게 되네요. 저는 아직까지, 200일 정도는 가볼만한 하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점이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1일 기념 반지라도?

@jeaimetu 님의 균형과 중심을 기원합니다.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스팀잇이라고 할까요 :)

그나저나 101일 기념으로(?) 바다에 왔습니다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3
JST 0.029
BTC 66552.34
ETH 3451.80
USDT 1.00
SBD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