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금강경⟫ 이야기 #에필로그. 금강경 이야기를 정리하며 - 금강경 레시피

in #kr6 years ago (edited)

#1 설법의 당시를 상상하며 - 기원정사
#2 아, 사뜨바여! - 네 가지 중생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4 형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 간다 - 중생도, 보살도, 부처도
#5 보이지도 않는 복덕을 어디서 - 공덕 따위는 없다
#6 신심, 제대로 된 이해를 통해 - 금강경은 없다
#7 부처'와 '중생'이 다르다고? - 이름이 중생, 이름이 무상정등각
#8 바른 마음으로 사는 이에게는 항상 수호천사가 - 유불, 약존중제자
#9 좋은 것도 내려놓자 - 과거심도, 현재심도, 미래심도 찾을 수 없다

에필로그


이미 10개월 전 연재가 끝난 금강경 이야기의 에필로그를 이제야 써 봅니다.


처음 금강경을 접한 이들은 수보리와 붓다와의 대화를 기록한 이 유명한 책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데 적지않은 충격을 경험한다. 사실 금강경 뿐 아니라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능가경 등, 이른바 많은 '대승경전'들이 2,500여년 전에 살아있던 붓다의 육성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이 책의 가치를 기대보다 많이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 대승경전보다 '초기경전'이 더 요구되고 '붓다의 직설'을 중시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문학, 예술 장르들, 구체적으로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은 우리 감성에 긴장과 이완, 그리고 많은 사유와 숙고를 가져다 주지만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디 관념에서만 그런가. 현실구조를 사실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과학의 견지에서도 이제 현상과 가상의 구분은 명확한 것이 아니다. 그럼 우리의 방향키인 가치관에서 생각해보자. 가장 중요한 척도인 선악조차도 절대가치라는 것은 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만이 '진짜'라는데 매몰되고 고정되어 있어서 가까이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야차, 혹은 나찰귀의 이야기가 불경에 나온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신들로, 사실 인도신화의 판테온에 편입되기에도 어려운 최하급 신격들인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 구도자는 그 나찰귀의 입에서 나온 반토막의 진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이야기다. 불교전통에서 우리는 부처님을 특별히 성인이라고 말하지만 경전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설법을 하며, 특히 대승경전 중에서도 유명한 유마경이나 승만경 등에서는 일반인이 출가한 스님들에게 설법한다.

오늘날 정보란 양방향이다. 영원한 스승과 제자도, 일방적인 가르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보든 진리든 흐르고 돌면서 더 완전해지고, 더 훌륭해진다. 진리란 알게 되었으면 좋을 뿐. 따지고 보면, 2,500년 전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았던 붓다의 입에서 나온, 현대의 감각과 언어로 매칭하기도 어려운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적어도 이상하리만치 금강경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선종의 스승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월(指月)이란 고사가 말해주듯,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누구의 손가락인지 그것이 중요한가. 진리를 전해줄 수 있는 말이라면, 그게 야차의 입에서 나왔든, 나찰귀의 입에서 나왔든.

다만 그 의미들이 순간순간 그 당시의 새로운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되고 이해되어 내려왔다는 것. 그 긴 세월을 포용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 그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면 중요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개 옛 스승들의 가르침을 변함없이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그 나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붓다는 금강경에서 우리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가르친다. 모든 틀과 속박을 내려놓고, 당신의 가르침조차도 버리고, 심지어 금강경까지도 버리고, 부처도 중생도 나누어지지 않는 곳으로 더 나아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말씀을 얼마나 그대로 박제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노력할 뿐, 정작 "그러지 말아라"라고 한 내용은 따르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태도는 그 가르침이 보다 '정통성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를 요구하게 만든다. 금강경이 더 훌륭한 것은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맞춰보는 재미에 있다. 다양한 해석들은 그 중 어느 쪽이 더 옳은가가 아니라 그 다양함 자체로 더 풍부해지고 의미부여가 된다. 빨간 당근과 흰빛 양파, 노란 감자같은 딱딱한 붓다의 원음에 다양한 해석판들의 조미료가 들어가고 이후에 붙은 많은 주석서란 육수가 우러나서 멋진 한 사발로 완성된 금강경은 딱딱한 재료보다 훨씬 깊은 향연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우리에게 훨씬 유의미함은 물론이다. 얼마나 그것이 원본에 가까운가를 따지는 것은 또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들에게 흥미있는 일이다. 아무리 색이 좋아도 생당근만 계속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냥 이 다양한 버젼의 금강경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 된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유명한 육조 혜능스님의 말 - 조금 보태긴 했지만 - 이다. 그렇게 해서 금강경의 철학을 우리 삶의 가치관에 의미있게 첨가시킬 수 있다면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정한 가치다.

그럼에도 "나는 역사적인 고따마 붓다란 2,500년 전 살았던 그분의 얼굴에 달린 입에서 나온 말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또 그들의 생각도 중요하니까. 다만, 비역사적 금강경의 내용이 역사적 무대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그 내용이 붓다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이 극화된 작품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금강경이 천년 넘게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나는 내 나름의 레시피로 이 금강경을 요리하려고 노력했다. 전통요리법엔 잘 쓰이지 않는 현대의 조미료도 써 보고 큰 의미를 주지 않는 재료는 과감하게 빼 버리기도 했다. 또한 전통적인 익힘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전통과 기존에 익숙한 어떤 사람들에겐 너무 짜거나, 어떤 사람은 너무 닝닝하다고 여길 것이다. 퓨전요리다보니 가끔 정체성의 혼란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의 맛은 주관적이나 또한 전적으로 쉐프의 책임이니 맛에 대한 비판은 다소곳이 수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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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전 사람들의 정신이 지금보다 훨씬 깊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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