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금강경⟫ 이야기 #8 "바른 마음으로 사는 이에게는 항상 수호천사가" - 유불, 약존중제자

in #kr7 years ago (edited)

⟪금강경⟫이 말하는 이치와 논리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계속 해 왔는데, 본질로 돌아가서 맨처음 수보리의 물음으로 돌아가보자.

"보살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란 질문.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금강경은 "보살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가서 ⟪금강경⟫이 거의 끝나갈 무렵, 지금까지 설명했던 이런 이야기들이 적용된 삶을 살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동의하고 따르는 이들이 공양을 대접(?)한다고 하니 세상에 그 많은 불자들의 공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응공應供, 공양받을만한자격’

이란 깨달음을 얻은 어떤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 이 ⟪금강경⟫의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에게 주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으니 열심히 진리를 따르면,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 四句偈 等 當知此處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수보리여, 이 가르침을, 혹은 [이 중] 사구게등의 가르침 만이라도 따르며 [살아간다면] 그 곳은 모든 세상의 신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공양을 올릴 것이니 마치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는 곳과 같이 할 것입니다.

여기서 좀 다르게 생각해보자. 그 수많은 이들이 나를 공양한다니 내가 그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기 위해 가르침을 따르건, 가르침을 평소 열심히 닦아서 그런 베네핏을 얻을 자격이 생기건 그 선후 문제는 미뤄두기로 하고. 오히려 이 대목은 제대로 공양을 대접 할 만 한 적절한 장소가 어디인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 아닐까.

대개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것은 솔직히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이해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뭔가를 베풀었다면 그와의 관계에서 훗날 이득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너무 순수성만 강조한 나머지 그것을 좋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필요에 따르고 이해에 따르는 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우리삶의 방식이니까.

한정된 재화속에서 자신의 영역과 소유가 지나치게 커지면 당연히 누군가는 가져야 할 부분이 작아진다. 많이 소유한 이들은 굳이 적게 가진 이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너무 적게 가진 이들 또한 내가 가진것을 붙들기도 벅차니 남들이 너무 적어서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렇게 재화를, 소유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생존의 전쟁에 참여한다. 물론 단체전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전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50대 50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1대 99의 싸움을 치른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모두는 잠재적 적이다.


에리히 프롬의 유명한 책제목처럼 "소유냐 존재냐"다. 그렇게 어렵고 치열하게 겨우 잡은 것들을 베풀라니! 아니 이것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에 더 가까운 문제다. 그런데 심지어 그 베풂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니! 이런 가르침을 대놓고 믿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보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정말 값진 보시, 의미있는 베풂을 하려면 확실히 적절한 곳인지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절이나 불상이나 스님이 아니라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는 그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부처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공양할 만한, 적절한 곳이라는 역설적 선언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판단조차 어려우니 그 일을 절에서 대신해 달라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그 소중한 재화를 보시했으니 절이 그 금강경의 철학에 걸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 절의 부처님이' 부처님이라서'가 아니라 그 좋은 전통을 따르고 있는 절의 부처님인지 항상 감독해야 한다.

보시 한번을 하려면 좋은 공양처를 찾아야 하고, 그 공양처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불교에 대해, ⟪금강경⟫ 에 대해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에서 혹은 스님이 알아서 복된곳에 잘 써주겠지”

그런 마음으로 늘 하던대로 하는게 편하고 좋으면 뭐, 그것도 하나의 길이다.

천天으로 시작해서 아수라阿修羅 등으로 나열되는 것은 여섯단계의 6도에서 랭킹이 높은 이들이다.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단계에서 사람人과 천天과 아수라Asura는 그래서 3악도惡途(축생/아귀/지옥)에 대비해서 3선도善途라고도 불린다.

천과 아수라는 둘 다 신의 영역인데 인도에서 신天, Deva은 선신善, 아수라Asura는 악신惡이다. 그래서 두 집단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지만 좀채로 끝나지는 잘 않는다. 인도인의 관념에서 악이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균형을 맞춰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과 아수라는 항상 공존한다. 우리 입장에선 그들을 그냥 묶어서 '신들神衆'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그런 질문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는데 불교가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주제였다. 우리는 대개 무신론을 그 정답으로 택해 왔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유신론/무신론의 질문은 신이 인간의 영역위에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란 생각에 기반하는 입장에서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신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다만 불교에서 신들은 어떤 인간이상의 존재가 아니라 약간의 능력이 있는 다른 차원의 중생일 뿐이다. 그러니 불교는 무신론일 수도 있고, 유신론일 수도 있다.

탑묘塔廟는 중국식으로 번역된 것인데 사리탑으로 보면 된다. 사리탑도 너무너무 많은 이야기가 더해졌지만, 사리śarira는 뼈란 의미. 부처 님이 열반후에 제자들이 그 부처님 대신 예경할 대상으로 삼은 뼈를 모신 ‘탑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何況有人 盡能 受持讀誦 當知 是人 成就 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 所在之處 則有佛 若 尊重弟子
만일 어떤 이가 할 수 있는 만큼 받 아들이고 읽으면서 [되새겨본다면] 이 사람은 가장 가장 뛰어난 제일의 소중한 법을 이루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가르침이 이렇게 존재하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이 있는 [곳]이요, [부처님의] 존중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금강경⟫의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다는 그 가르침을 포함하여 이 ⟪금강경⟫이 말하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사람이 있는 곳, 그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곳은 법당이건 그냥 빈 공간이건, 부엌이건, 화장실이건 바로 부처님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분의 존중받는 제자가 있는 공간이다. 부처님에게 존중받는 부처님의 제자다. 누굴까. 바로 이 문단의 주어, ‘금강경을 되새겨 보면서 그 철학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현하는 사람’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이다. 바로 당신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부처님에게 존중받는 제자다.

꿈에서 부처님을 봤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또 꿈에서라도 부처님을 만나보려고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금강경을 이정도 공부했으면 이제 부처님이 꿈에서건 현실에서건 내 앞에 나타나시는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한 서로 불편하고 번거롭게나타나실 필요도 없다. ⟪금강경⟫에서 이미 사전적인 정의를 해두지 않았는가. 부처님이 평생을 스스로 부처가 되라고 가르쳤는데 이미 할 말 다하고 2000년 전에 떠나신 분을 굳이 2016년에 당신앞에 소환해서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가.

그렇게 그분이 이야기한 것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분을 만나겠다고 하니 아, 이건 피곤해도. 피곤해도. 보통 피곤한게 아니다. 그의 말을 들었으니 이해하고 일상에서 실현시키려 노력하면 우리는 부처님에게 존중받는 제자가 되니 스승에게 존중받는 제자만큼 훌륭한 제자가 어딨으며, 부처님에게 존중받는 제자는 역시 그대로 부처님이기도 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부처님 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면 그건 제대로 불교를 이해한게 아니다. ⟪금강경⟫ 초반에 분명 그런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이야기 했으니 만약을 대비해서 한번 더 인용해 본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모양을 보고 여래를 보았다거나
그 음성을 듣고 여래를 찾으려 한다면
그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냥 내 스스로 부처님으로 살면 된다. 다만 1분 동안 만이라도. 그리하여 부처님 모습을 직접 만나기보단, 먼 과거의 부처님이 인정해주다 못해 존중해 마지않았던 그런 제자가 되는게 어떨까. 더이상 누가 나를 그만큼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주제와는 약간 떨어진 것 같지만 다음의 대목은 사실 위에서 말한 스승인 부처님께 존중받는 제자가 될 대단한 사람에게 다시 부처님이 던지는 노파심 가득한 질문이다. 아, 이게 잔소리라면 정말 부처님은 수준급이다.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不也 世尊 實無有法 名 阿羅漢 若阿羅漢作是念 我得阿羅漢道 卽爲 著我人衆生壽者 佛說 我得無諍三昧 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則不說 須菩提 是樂 阿蘭那行者 以 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아는 아라한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라고 하겠소?
아닙 니다. 세존이여, 실로 아라한이라고 부를만 한 [어떤] 법도 없습니다.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길을 가는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한다면 그는 자아이니, 사람이니, 중생이니, 수명을 가진 존재란 상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붓다께서 [제게] 말씀하기를 "수보리가 다툼없는 삼매를 얻어서 사람들 가운데 으뜸가니, 이는 [모든] 욕망을 떠난 최고의 아라한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여, 제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세존께서 제가 "아라한의 길을 가는 이"라고, “수보리는 다툼이 없는 삼매를 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저] 수보리의 그 행하는 것에 대해 “수보리는 다툼없는 삼매를 즐겨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이름을 붙이셨을 뿐입니다.


아라한은 산스끄리뜨 아라한arhant을 중국식으로 쓴 것인데 어원은 좀 복잡하지만 대체로 중국에서는 공양받을 만 한 자격이 있는 '응공',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살적',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 의 세 가지로 번역되었다.


부처님은 당신을 포함하여 성자가 된 이들을 그렇게 불렀지만, 점차 후대로 가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등으로 단계가 많아졌다. 주어진 이름이 실상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이름했을 뿐 이라는이야기는 여태 계속 해왔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아란나阿蘭那, araṇa이다. raṇa는 싸움, 전쟁이란 뜻으로 앞에 부정어기 a가 붙었으니, 다툼이 없다는 의미도 있고 고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고요한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지만 ‘마음 속의 번뇌를 제거해버렸으니 마음이 고요한 사람’, 혹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니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는 사람’ 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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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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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공양에 대해선 공양에 잘 쓰이는지도 중요하긴 하나 시주자 입장에선 시주까지가 시주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 해봅니다. 물론 큰 그림에서 좋은 공양처가 정해지고 난뒤에 말이죠. 또한 한정된 재화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스팀잇을 보면 쓰면 쓸수록 재화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우리 사회에도 물질적으로 돈으로만 따진다면 고갈이 되어 갈수도 있겠다고 보면서도 크게 전체적으로 봤을때 과연 쓰면 쓸수록 고갈 되는건지? 도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재화가 아니라 욕심을 내면 낼수록 사랑이 고갈 되어 가는건 아닐까... 사랑을 쓰면 쓸수록 마음을 쓰면 쓸수록 더 늘어나서 재화를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순환이 좋아져 오히려 더 많이 왔다가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gaeteul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베푼사람이야 베푸는데까지가 끝인것이 맞을 겁니다. 사실 이 부분은 특정한 절에 지속적으로 다니시는 분이 민주적인 시각으로 감시하고 지적해야 한다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쓴 대목이라 그렇습니다. 사원이란 스님의 것이 아니라 항상 다니고 소속된 불자들의 뜻이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재화의 문제는 백분 동감합니다. 재화는 돌기만 해도 그 기능이 다하는 것인데 이걸 아끼고 쌓아두는 것이 결코 순기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것도 일부 많이 재놓고 계신분들에게 드려야 하는 말씀이겠습니다만... 말씀대로 욕심을 낼 수록 고갈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순환이란 참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순환만 잘 하면 고갈되지 않고 분명 늘어난다는데 깊이 공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깊은 관심에 저희 불식은 더 잘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bulsik 님의 정성스러운 추가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더욱 더 행복한 하루 되세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D

@sleepcat님의 저희 불식에 대한 관심에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늘 좋은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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