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금강경⟫ 이야기 #4 "형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 간다" - 중생도, 보살도, 부처도

in #kr7 years ago (edited)
지난 3회에서 부처님이 계속 당신의 몸을 비유로 들어서 매우 심하게 상을 거부 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아왔다. 물론'순경계'와'역경계'.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만날때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 경우 넘기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참으로 여러가지 대상들이란 우리의 기대에 늘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이 항상 우리의 생각과 같은 부처로, 그 모습으로, 그림에서 본, 혹은 불상의 모습의 부처님이겠는가. 결국 부처란 하나의 정해진 모양이 상으로 인식되면 그 정체가 뭐든 그게 우리 눈엔 부처로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처가 아닌 것이니, 우리가 상상해서 만든 부처란 형상에 마음이 매달려 있을 뿐인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충고의 구절이 금강경엔 세번씩이나 반복된다. 그 첫 번째 싯구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헛된 것이어서
진짜가 아닙니다.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니라고 본다면
여래를 볼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약간의 부가설명이 필요하다. 익히 아시다시피 우리가 보는 금강경은 꾸마라지와스님의 번역본인데, 그대로 해석하면

"상이 결국 사라질 것이니 그것에서 무상을 발견하라, 그러면 여래를 볼 것이다"

정도가 되니 이 구절을 이렇게 읽는것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금강경의 역자들은 이 대목을 모두 꾸마라지와 스님과 는 다르게 번역했기 때문에 고쳐서 읽는 편도 괜찮을 것이다. 여기서는 의정스님의 다른 번역을 제시한다. 의정(義淨, 635~713)스님은 인도에 다녀와서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이란 인도방문 기록을 책으로 남긴 유명한 스님 중 하나이니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자.

所有勝相 皆是虛妄, 若無勝相, 卽非虛妄, 是故, 應以勝相無相, 觀於如來
훌륭한 상이 있다는 것은 헛된 것이고
훌륭한 상이 없다면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모양이 [있어도],
[훌륭한] 모양이 없어도,
[상관없이] 거기서 여래를 보아야 합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대목이다. 진정한 부처를 만나는데 그 어떤 형식이나 모양은 전혀 마음쓸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을 당겨서 마지막 싯구를 먼저 보자.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만들어진 모든 것은
마치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이 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형식이니 모습이니 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꿈夢, 환상幻, 물거품泡, 그림자影, 이슬露, 번갯불電에 비유했다. 불교는 모든 세상의 존재(법)을 업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다만 만들어졌다는 말은 원래 어떤 위대한, 대단한 원리에 의해서 정해진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creation과 karma의 기본적인 차이가 생긴다. 전자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후자는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시간과 조건이 달라지면 언제는 변하거나 사라져서 본 모습을 잃어버린다. 아무리 예쁘고 귀한것이라도 보이는것들은 다 사라지는 것이니 거기서는 어떤 본질적인 것도 찾아낼 수 없다.

그러니 좋아하고 사랑하되 거기에 너무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현상존재들은 유위법(만들어진 것)이라고 불리고, 그 유위법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져가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것을

'유위법의 생멸상(만들어진 것들의 생성과 소멸하는 것)’

이라고 한다. 이제 잠깐 공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머지 싯구를 살펴보자.

若菩薩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보살이 “내가 부처님의 세계를 건설했 다”고 한다면 그는 보살이라고 할 수 없 습니다. 왜냐면 여래는 말하기를 “부처님의 세계를 건설했다”란 의미는 참으로 건설했 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름으로 규정지 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그 [어떤 실체도 없다는] 무아의 진리를 온전히 알았 다면 여래는 그를 ‘진짜 보살’이라고 말 합니다.


불국토란 중생이 다 사라지면 생기는 이상세계의 이름이다. 중생이 사라진다니 다 죽어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자신들이 중생이 아님을 알게되면 그게 불국토가 된다.

금강경이 가장 뛰어난 경전으로 평가받고 유명해 진 이유는 바로 중생을 끊임없이 그 중생이란 틀(생각의 틀, 관념의 상자)에 넣어두지 말라고 멀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살아도 어떻게 사느냐는 매번 우리 선택이다. 유행하는 말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고 조건이나 환경탓을 많이 하고 살지만, 스스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불어넣고 현실을 끊임없이 극복해나가는 이들도 있고, 지금의 상황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포기하는 이들도 있을것 이다. 조건이나 환경이 주는 요인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마는.

결국 금강경은

"‘중생'이 어떻다"

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된 이들이

"중생짓을 하는 순간, 중생이 된다"

고 이야기 함으로서, 그 행위에 따라 중생이 되기도 부처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 반대의 경우, 즉 중생도 '중생'이란 태생적으로 바꾸지 못할 건더기도 없으니

"스스로에게 지어준 중생이란 짐"

을 지려하지 말고, 과감하게 보살행이며 부처의 삶을 살기를 통해서

"스스로 중생이란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라"

고 역설하는 것이다. 보살정도 되려면, 이 세상의 존재를 모두 부처와 보살로 만들어버리고나서도 그걸 내가 한 것이라는 생각을 기억속에 남겨두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도, 보살도, 중생도, 불국토도 모두 하나의 관념이고 틀이니 거기 매이는 순간

"그게 바로 중생짓이다."

즉, 중생과 부처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중생의 행동이란 뜻이다. 부처의 세계에서 부처와 중생은 구분되지 않는다. 오직 중생의 세계에서만 부처와 중생이 구분된다.


그래서 불교는 무아라고 한다. 그런데 ‘무아라는 진리’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그냥 아를 내세우지 않으면 그대로가 무아이다. 장엄이란 여기서 ‘건설’이라고 번역했는데 '화장실'이라고 할 때 글자와 '엄숙'하다고 할 때 글자를 붙인 것이다. 무엇인가를 꾸미고 장식하고 틀에 맞춘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엄경이란 책의 제목도 꽃으로 장식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이 장엄이란 말은 대단히 다의적이라 불교에 서는 여러가지 맥락으로 사용되는데 기본적으로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서, 수행이나 설법을, 혹은 복을 바로 지을 수 있는,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의미한다. 모든 것이 다 스탠바이 되었다는 불교의 독특한 용어이다. 그러면 뭐 이왕 보시도 하고, 불국토까지 건설했으니 상을 조금은 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진리를 찾는것은 안된다고 금강경은 단호하게 잘라낸다. 돌아가서 두번째의 싯구를 들어보자.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모양을 보고 여래를 보았다거나 / 그 음성을 듣고 여래를 찾으려 한다면
그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 /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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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SIK / ⟪금강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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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sik 님 잘 읽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건 참으로 위대한 행위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bulsik님! 부처님께서 입적하실때 말씀하신 “내 형상을 만들지 말라” 와 연관지은 설명도 았는지요?

글쎄요. 부처님이 "내 형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부처님은 입적하실 때 제자들이 오직 가르침이나 만들어 둔 계율에 의지하고, 각자 스스로의 주관을 갖고 살 것을 이야기 했고, 교단에 있는 남은 이들이 잘 의논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으며, 소소한 규율에 너무 매이지 말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사후의 어떤 여러가지 교단의 행정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제자들에게 굳이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말입니다. 장례식까지도, 당신의 출신인 행정계급의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에 따라 처리할 것이므로 제자들이 굳이 그 장례의 절차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이란 어떤 실질적인 형상도 포함되지만, 주로 관념적인 상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아마 당신의 상을 만들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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