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금강경⟫ 이야기 #1 "설법의 당시를 상상하며" - 기원정사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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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인도는 오늘날 하나의 나라지만 부처님이 살았던 2,500년 전의 당시 인도는 16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지금의 세계정세가 중국과 미국으로 양분되듯, 그 중 가장 강력한 나라는 갠지스 강을 두고 각각 남안의 마가다Magadha와 북안의 꼬살라Kosala였다.

붓다가 태어난 나라 까삘라Kapila는 대단히 그 16개의 큰 나라에는 포함되지 않는 작은 나라였으며 꼬살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 두 나라의 왕들은 붓다와 연배가 모두 비슷했고, 또 붓다가 살아있는 동안 항상 붓다의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마가다의 수도는 왕사성Rajagraha이었고, 꼬살라의 수도는 사위성Sravasti이다. 그래서 경전을 읽어본 이들에게는 아 마도 좀 익숙한 지명일 것이다.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Bimbisara가 붓다에게 헌사했던 절은 불교역사에서 가장 최초의 사원으로 대나무 밭에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Veluvana 죽림정사이다.


어느날 꼬살라의 부호였던 수닷타Sudatta가 마가다에 왔다가 붓다를 만나고는 꼬살라로 초청을 했고 절을 지어 드리기로 약속을 했다. 수닷타는 ⟪금강경⟫의 주인공인 수보리Subhuti의 삼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뭐 증거는 없다. 그가 당시 꼬살라의 왕자였던 제따Jeta의 소유였던 숲을 사려고 했으나 태자는 팔지 않겠다고 우겼고 수닷타의 끈질긴 설득에 제따태자는 팔지 않을 심산으로 숲의 땅만큼 금을 깔면 팔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수닷타는 실제로 왕자의 말대로 금을 깔기 시작했고, 놀란 왕자가 왜 그렇게까지 해서 이 숲을 사려고 하는가를 물었다. 수닷타는 마가다에 계시는 붓다의 이야기를 태자에게 들려준다. 태자는 감동하여 숲을 보시할테니 땅에 깐 금값으로 건물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수닷타와 제따태자의 합작으로 탄생한 것이 기원정사祇園精寺이다. 원래 이름은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제따왕자의 숲에 수닷타가 지은 절” 이다. ‘기수’란 제따왕자의 숲이란 뜻이고, ‘급고독’은 수닷타가 평소 선행을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금강경⟫의 무대인 기수급고독원, 기원정사는 사실상 ⟪금강경⟫뿐만 아니라 실제로 붓다가 가장 많은 설법을 한 장소이며 그만큼 오래 머물렀던 곳이다. 그런데 붓다가 친구처럼 여겼던 빔비사라왕의 땅인 마가다가 아니라, 꼬살라의 수도에 있었으며 둘 모두 강대국이지만 꼬살라보다는 마가다가 더 강력한 나라였고, 일화도 붓다와 꼬살라의 프라세나짓 보다는 마가다의 빔비사라와 더 많이 등장한다. 더구나 꼬살라가 당신의 고국인 카필라를 점령하고 있던 지배국이었으며, 또 한 이야기에 따르면 꼬살라와의 악연으로 붓다의 나라가 멸망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의아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적국이며 비교적 낯선 곳보다는 더 강력한 후원자이며, 친구가 있는 마가다를 선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을 것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장소뿐 아니라 탁발하고 밥먹고 발씻고 옷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기까지,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인 다반사茶飯事를 소개하는 것은 '진리의 세계'가 그렇게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도 되거니와 그렇게 일상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현장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극적인 배경의 분위기를 함께 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설법의 장이 열릴 때 우리는 그 곳에 있지 않았지만, 그 현장이 어땠는지를 상상하며 실제처럼 함께 준비하고 느끼게 된다. 옛 사람들은 이 육하원칙의 정보를 설법이 시작되는 여섯 가지 조건, '6성취'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법회의 상황과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재차 이야기 할 필요도 없겠지만 아난다Ananada 스님이다. 아난다는 붓다를 20년 동안 시중을 들었던 사람이다. 또한 붓다와는 사촌간이다. 사촌동생들 중에서도 외모가 붓다를 많이 닮아서 열반 후에 500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풀어내면, 제자들의 눈에는 그리운 붓다가 다시 살아돌아와서 설법하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했다니, 제자들이 그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떼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혹은 저는 이렇게 기억 합니다.”란 의미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경전의 서두에서 가장 먼저 쓰는 말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장감을 익히면 사실 훨씬 극적으로 ⟪금강경⟫에 접근할 수 있다. 원래 불교는 엔터테인먼트의 성향이 강해서 내용상 역사적 배경이나 철학적인 내용, 운문으로 표현되는 문학적인 다양한 요소를 갖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극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따라서 이 모든 복합장르에 마음을 열지 않으면 사실 온전한 맛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여기서 오롯이 종교적 가르침을 요구한다거나, 구절 하나하나의 의미만을 취하려는 요구보다는 붓다와 수보리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다보면 ⟪금강경⟫이란 이 한편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절로 따라온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수보리다. 앞서 수닷타와는 삼촌과 조카관계였다는 설도 있다고 소개했지만, 열 명의 뛰어난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사실 ⟪금강경⟫이 아니면 그렇게 부각되는 인물은 아니다. 단 명나라 소설, 서유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신들조차 감당못하는 강력한 존재의 원숭이, 손오공의 스승님이 바로 이 수보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 명이 넘게 앉아있는 자리에서 그가 대표로 붓다와 대화를 위해 일어선다. 다른 제자들이 꼭 수보리보다 못해서는 아니겠지만,그래도 그는 ⟪금강경⟫의 주제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난다는 곧바로 그의 질문과 대화를 소개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붓다와 대화할 때 어떤 방식으로 예경을 표시했는지를 먼저 설명한다. ‘가사’라고 부르는 여기저기를 꿰멘 자국이 있는, 보자기같이 생긴 스님들의 옷을 왼쪽 어깨로 모아서 쥐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다. 그리고 왼쪽 무릎은 세우고 오른쪽 무릎은 땅에 꿇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은다. 이것이 편단우견偏袒右肩, 우슬착지右膝著地, 합장合掌이다. 인도불교의 예경방식이다.


장소도 설명했고, 붓다와 제자들은 탁발하여 아점/브런치를 드셨고 - 저녁은 먹지않는 전통이었다 - 그릇도 씻었고, 발도 씻었고, 옷과 장소도 정리했으며, 대담/토론의 대표주자가 선정되었고, 그는 붓다에게 예경을 마쳤다. 이제 질문할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수보리는 어떤 질문을 가장 먼저 붓다에게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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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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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커피마시며 진지하게 읽고있는데 마지막에 브런치라고 하셔서 풉 할뻔 했습니다.

@mintvilla님 관심가져주시는데 항상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란 표현 괜찮았습니까? ㅋ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설명을 하시네요. 기수급고독원아란게 뭘까 궁금했었는데 그런 뜻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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