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무서운 세상, 1. 합리적이지 않은 우리

in #kr-philosophy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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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보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수명이 향상되고 있으며 삶의 질도 발전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삶은 갈수록 피폐진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들은 늘어난 수명보다 사회화에 필요한 시간이 압도적이며, 이는 곧 자유로운 삶을 해친다고 합니다. 국가경쟁력 측면이 아닌, 생물종의 입장에서 출산률의 저하는 종의 쇠락이라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육체적 노동량이 줄고 영유아 사망율이 극도로 낮아져 자연스레 자식을 많이 낳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쇠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생물적 본성을 이겨낸 증거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하는가'하는 문제에서 한발 물러서서 우리는 절대로 답을 알 수 없다는 이들도 있고,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배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록 인간 종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며 그것이 종의 번성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진보에 대해서는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이 있고 그 누구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답은 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로 논의되는 입장들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 사회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다면적인 입장의 존재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상징합니다. 차별적 시각을 제외한 자유로운 생각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해 공부하고 치밀한 논리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눈을 빌려 새로운 생각을 습득 할 수 있고, 새로운 생각과 기존 자신의 생각을 결합하여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자유를 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인간이 18세기까지도 종교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19세기에는 제국주의가 팽배했으며, 20세기의 인류는 파시즘, 이데올로기, 강요된 애국 등이 자유로운 사상을 해쳤다는 사실을 떠올려야합니다. 자연성의 회복을 주장하며 소로우의 '월든'과 같은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모든 인간이 소로우처럼 살기에 지구는 너무 좁으며 소로우 또한 사회의 혜택을 크게 입었음을 생각해야합니다. 자연 속에 살아가던 초기 인류는 많은 위협 속에 살았고 누가 언제 죽어나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소로우가 타인을 크게 경계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치안을 유지하는 공권력 덕분이었으며 야생동물에 의해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문명의 덕입니다. 소로우가 자연 속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의 축복입니다. 문명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자연성의 회복만을 추구하기에 문명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내비치듯 저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현대사회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조차도 배제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분명 구 소련과 중국처럼 서민의 삶을 무시하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만 집중한다면 문명의 발전은 더 빠를지 모릅니다. 소련은 그러한 인물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자유진영보다 먼저(심지어 자유진영조차도 어느정도 자유와 평등을 희생했음에도) 우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와 평등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위한 맹목적 움직임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영혼을 믿지 않습니다. 성선설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타심 또한 이기심의 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자신의 자유에 대한 개인의 투쟁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낙관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낙관과 비관에 대해 이야기한 글에서 맹목적 낙관에 대한 제 입장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맹신자가 아니기에 지금부터는 해결해야함에도 중추기관에 깊게 뿌리 내린 악성종양처럼 쉽게 제거할 수 없는 문제도 논하고자 합니다.

소비자와 창작자의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글에서는 소비자와 창작자의 간극이 커져 소비자가 창작물에 기꺼이 지불하는 돈이 그대로 창작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사용료, 유통마진 등을 거쳐 굉장히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marginshort 께서도 유통의 진실과 나비효과라는 글을 쓰셨죠. 이에 대해서도 더욱 깊게 논해보고 싶고, 다른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여러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인간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생물적 한계를 지닙니다. 인간은 전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휘와 어조에 크게 영향 받습니다. 분명 합리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다면 글과 말이 담고 있는 의미만을 파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글과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우선하여 글과 말에 담긴 어휘의 느낌에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의 뇌는 하나의 지적기관이 아니라 뉴런과 시냅스로 형성된 병렬기관입니다. 동시에 점화되는 뉴런 간의 연결은 강화됩니다. 왓슨의 실험은 좋은 예시 중 하나입니다. 알버트라는 아이는 흰 쥐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계속 흰 쥐와 큰 소리를 동시에 제공하여 알버트가 흰 쥐를 무서워하게 하고, 더 나아가 토끼, 개처럼 흰털이 달린 다른 종들부터 흰털이 달린 코트까지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특정한 느낌과 연결된 감각은 새로운 인지를 형성합니다. 어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고집이 센', '융퉁성 없는'과 같은 표현들은 부정적으로 인지됩니다. 반대로 '신념이 강한', '굽히지 않는', '주관이 뚜렷한' 등은 긍정적으로 인지됩니다. 글의 신뢰도를 위해 특정 표현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고집이 셉니다.
필자는 完固한 人間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자신의 주관을 3인칭의 시각을 빌려 객관화 하기도 합니다. 주로 객관화와 부자연스러운 피동을 같이 이용하는데 이게 또 먹힙니다. 권위 있는 글, 학술적인 글, 논리적인 글로 인지됩니다. 하지만 '필자'라는 단어로 타자화하고 객관성을 부여하려 하여도 이것이 주관적인 생각임은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 사실로 확장하려면 논리와 근거를 보강해야지, 자신을 객관화 한 후 자신의 생각을 보편 사실인 양 주장하는건 우스운 일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이처럼 인간의 뇌는 쉽게 속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하는건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였다면 객관적인 정보전달로도 충분히 광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가장 필요한 소비를 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여러가지 이미지와 결합하여 광고를 합니다. 많은 기업들은 심리학자를 고용하여 인간의 취약점을 공략합니다. 비디오 게임 회사들은 심리학자를 고용하여 이용자들이 게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기업의 이윤추구는 당연한 일이지만 테두리는 있었으면 합니다. 나조차도 인지를 조절하기 위해 표현을 달리할 때가 있지만 모든 표현은 가치중립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레 끊임 없이 외부에 영향을 받지만, 적어도 다른 인간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뉴로마케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너무 무섭고, 무섭습니다.


며칠간 쓴 글들이 마음에 들질 않았습니다. 오늘도 벌써 8시간이나 글을 썼지만 마음에 드는 글은 없네요. 이 글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이번 글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잠깐 다루었습니다. 다음 글은 극단적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또 다시 한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행복한 한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배가 너무 고파서 견딜 수가 없네요. 헛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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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시는 글이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kmlee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안의 신념들이 머릴 긁적이네요.^^

문자에 정통하신 분 앞에서 표현의 뉘앙스를 이야기해버렸군요.

아유 무슨요.^^ 참 울림이 있는 포스팅이었어요.
저의 손에는 닿지않는 무엇이 있죠.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여러 표현이 있다는건 언어의 기만적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타타님처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도 있죠. 이에 대해서도 썼어야 공정한 글이 되었겠군요.

밝은 면을 보는건 제 취미일뿐이죠. 어둠과 빛이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어우러져야 최고의 명작이 그려질거라고 봐요.

님 글에 점점 빠져 가면서....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시에 일어나서 식사를 지금 하니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네요... 날씨도 더운데 한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표지그림에 잘 어울리는 좋은 글입니다. 덕분에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앞으로 더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갑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번에 다시 들어와서 또 읽어보아야겠네요. 몇 번 읽었지만, 더 읽어야 할 만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글을 명확하게 썼다면 여러번 읽으실 일 없이 확 와닿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이 어렵지 않고 이해가 쏙쏙 되네요. 맞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죠. 그래도 전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을 좋아합니다만. ^^; 이를 보완하신다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저도 조금 전에 독후감 올렸는데 글이 마음에 안 들어요. ㅠ.ㅠ 안 올릴까 하다가 더 붙들고 있어도 소용없을 거 같아서 올렸는데, 찜찜하긴 해요. @kmlee님 심정 이해가 갑니다. ㅠ.ㅠ

보완이라기엔 극단적인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 머리 속에 있는 이러한 철학이 사육 연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저도 답을 모르고, 답이 절대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독후감 잘 쓰셨는데 엄살은!

아.. ㅎㅎ "자기 앞의 생"이나 "슬램"은 쓰면서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독후감은 쓰면서 뭔가 계속 맘에 안 들었거든요. -_-;;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타심 또한 이기심의 발현이라 생각합니다.' 라는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매일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는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 옳은 선택만을 하는 존경할만한 인물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사회와 자신과 적당한 타협을 계속 유지해 오는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부끄러운것은 그 사실을 알고도, 변화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부끄러운 사실이네요.

의인으로 알려졌던 이들도 말년에 자신의 뒤틀린 충동을 고백하곤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관대하다고 하지만 자신의 내면은 스스로 어느정도 관찰할 수 있는만큼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실제 행위로 표출된 것이 아닌, 내면의 의도까지도 엄격하게 판단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중훈님은 아마 최선을 다하고 계실겁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렇게 격려해주시는 분은 부모님을 제외하곤 처음인듯하네요.
다소 신선함과 감사함을 같이 느끼게 되네요.

생각할꺼리를 굉장히 많이 주는 글이네요. 글 고맙습니다.

글을 다 쓰기 전까지 밥을 안 먹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 사실상 미완성인 글인데 흥미롭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문명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자연성의 회복만을 추구하기에 문명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타심 또한 이기심의 발현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글과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우선하여 글과 말에 담긴 어휘의 느낌에 영향을 받습니다.

깊게 공감하는 문장 몇개 추려봤습니다. 하나하나가 깊은 글이 될만한 주제들이군요.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하고,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로 진화해 왔을겁니다.
아마도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몇만년동안 그런 인간이 합리적인 인간보다 더 생존률이 높았겠지요. 합리적인 인간이 워너비가 된건 인류의 전체 기간으로 보면 불과 얼마 안되었겠죠.
이타심 또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상 자신의 안위를 위해 생겨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합리적 인간이 불리하였다기보다 문자와 언어, 이를 토대로 한 있기 이전에는 이러한 특성을 착취 당할 일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이러한 성질이 개에서도 나타나는걸 볼 때 뇌라는 존재의 맹점이지, 특별히 생존에 유리하여 가진 성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화에서 재설계는 매우 희귀한 일이구요.

뇌의 특징 때문에 감성적, 본능적이 된다. 그것도 맞는 말이겠네요.
확실히 뉴런은 컴퓨터의 논리게이트와는 다르고, 그 뉴런을 통해 이정도까지 지능이 발달한 것이 신기하네요.

자연의 놀라움 중 하나입니다. 컴퓨터는 아직도 뇌라는 강력한 도구를 조금도 따라가지 못 했죠.

글을 잘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끊임없는 고민에 고민... 그리고 다시 또 생각하고 글쓰기...!! 대단합니다 ^^

그리 보아주신다니 참 감사합니다. 오늘 글도 매력 있던가요? ㅎㅎ

항상 매력이 넘칩니다.. 우리 학원에 데려오고 싶어요... ㅋㅋ

국어 자리 있습니까 ㅋㅋ

기다리세요... ㅋㅋ 국어학원 하나 차려 드릴게요.. ^^

약속하셨습니다 ㅋㅋㅋ

네.... 기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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