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4. 평등과 경쟁의 위태로운 공존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philosoph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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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에서의 경쟁

인간은 한날한시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으며 동일한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각각의 유전자로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개성 있는 생각과 느낌을 가진 인간이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것은 필연입니다. 그런 제각각의 인간이 서로 경쟁하는 것 또한 필연이겠죠.

이러한 경쟁은 본질적으로 차등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도 있습니다. 경쟁을 재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요소라고 보는 입장이죠. 하지만, 이상적인 경쟁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때 가능합니다. 경쟁의 목표는 각 분야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인간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선입견 없이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최대한의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어야하고, 그렇게 길러낸 능력을 선입견 없이 평가 받아야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다름이 무조건 평등을 해치는 것은 아닙니다. 농구 선수와 축구 선수 사이에 우열이 있을까요?

평등과 경쟁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

기회의 평등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고 이상적인 경쟁을 위해서는 평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불평등을 낳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설은 경쟁 자체의 문제와 현대사회의 한계, 인간의 본성에 영향이 복합되어 나타났습니다.

첫번째로,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인지적 편향을 포함한 다양한 비합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개인이 가장 경쟁력 있을 분야를 파악하는 것도 현재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하다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진 않습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아서'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죠. 실제 예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진로를 예술쪽으로 결정하지 않는 사례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모든 인간에게 걸맞는 경쟁분야가 있지 않습니다.
농구를 계속해서 예시로 사용해볼까요? 골대가 조금 더 높았다면, 규칙이 조금 달랐다면, 더욱 빛을 발했을 농구 선수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정말 다양한 규칙의 농구가 존재해야할까요? 농구1, 농구 2, 농구3 등이 있다면 선수들은 그러한 농구에서 경쟁을 하고 싶을까요? 팬들 또한 그러한 농구를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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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은 힘들게 쟁취한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는 첫번째, 두번째 이유와도 모두 관련이 있는데 인간은 경쟁을 즐기고 승리의 쾌감에 전율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어려운 길에서 승리할수록 쾌감도 커지기에 자신의 재능과 다른, 더욱 어려운 길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경쟁률이 높은 분야에서의 승리는 경쟁률이 낮은 분야에서의 승리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각 분야에서 승자가 가지는 부와 명예에 차등을 부여합니다.

경쟁의 미래

가장 먼저 선행될 일은 경쟁에서 뒤쳐진 이의 삶의 질 개선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부와 명예를 쟁취함에 따라 발생하는 차등은 아마 가까운 미래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철학이야기#2,인간의 의식]을 읽으셨던 독자분들은 역사적 제약에 대해 기억하실겁니다. 인간에게 맹점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했었던 개념이죠. 아마 경쟁 또한 역사적 제약에 의한 인간사회의 한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차등적인 보상의 폭은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장되는 것이 결과의 평등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결과의 평등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누가 어려운 일을 하겠습니까?),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부모의 삶의 질은 결국 자식의 양육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결국 기회의 평등에 영향을 미치죠. 결국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 일정 수준의 결과의 평등은 보장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기술발달이 기여할 수 있겠죠. 기술의 발달은 사회 전체의 자본을 향상시켜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질 전체를 향상시킵니다. 또한 기술발달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냅니다. 현재는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있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생기는 것이죠.

여러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저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시킨 기술발달도 극도의 경쟁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개인적으로 글의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인데 작가가 이에 관여한다고 생각해서 이테릭, 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바쁜 여러분들을 위해 중심문장에 볼드를 넣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세요!

다음 주제는 공정함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1. 영혼]
[#3. 모든 가치의 수장,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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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극단적 결과의 평등은 지양해야 하지만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회 전체의 자본의 향상이 인간의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결정장애'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는데요.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불만족스럽게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현재의 문제는 물질적 부가 모자른 게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고 봅니다. 결국 물질적 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우월하려는 습성 자체가 문제라 보기 때문에 , 물질적 삶의 질 향상은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정신적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정신적 삶의 질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저한의 물질적 삶이 보장되어야 정신적 성장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볼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볼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최저한의 물질적 삶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엔 십분 공감합니다. 적어도 한국사회내에선 모두가 최저한의 삶을 보장받을 물질적 부가 이미 어느정도 획득되었다고 보고 그 다음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세계 전체의 차원에서도 물질적 부가 모자른 것이 아니라 부의 지나친 집중이 문제라 생각하고요.
물론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물질적 삶의 기준이 남들보다 더 낮기에 생각의 차이가 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월든' 식의, 현재 사회의 시각으로 보자면 극도로 소박한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이걸 볼드라고 합니다.
네, 한국에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부는 충분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 볼드체로 표기한 문장 말씀하신 거군요. 볼드체 문장이 여러 개라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여기서 다 밝히기는 좀 힘들지만, 저의 첫번째 댓글에서 밝혔듯이,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나열한 것들에 볼드체 문장으로 말씀하신 것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답변 남긴 내용이 혹시 지적하는 것으로 비춰졌을까 걱정되는데, kmlee 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남긴 것이라는 점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스티밋에서 인기 없을 수도 있는 주제들로 꾸준히 글써주셔서 좋습니다^^

생각도 비슷했는걸요. 지적이었다 하더라도 감사드렸을겁니다. 저야 말로 인기 없을 주제에 찾아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셔서 항상 즐겁습니다.

@kmlee님... 글을 읽고서 바로 드는 생각이...
'과연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저도 순간드는 생각인지라 @kmlee님께 어떤 질문이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데... 우선 저부터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듯합니다.- -;;

음, 다음에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어봐요. 저도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네요. 일단 지금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존재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힘들지만 개개인으로서는 행복할 수 있다, 혹은 행복하다고 착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제시한 비합리적 사고 중엔 인지편향도 있는데 그 중 플라시보가 있답니다. 진정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겠지만 행복하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조금은 다가가는게 아닐까요?

전 '우리가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답니다. 역설적인 현실을 즐깁시다! 주말 오후를 즐깁시다!

다음 행복에 대한 내용...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 의 삶을 생각하다 보면 항상 머리에 복잡해지고 그 답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만 되더군요
다양 생각들을 공유하며 스스로 그 답을 찾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Kmlee님의 글을 자주 접하며 저에게 적합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 보겠습니다.

예. 생물학자셨군요! 좋아하는 분야가 분야인만큼 생물학에도 다양하게 관심이 간답니다. 앞으로 좋은 인연 만들어 갑시다!

제가 감히 생물학자께 유전자 관련해서 태클을 걸었다니...

ㅎㅎㅎ
아니예요
나름 생물학을 공부하며 절대적이란 진리와 학설이 변하기도 하더군요..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저에겐 참 좋은 자원이라 생각한답니다.
앞으로 많은 태클 (?) 부탁 합니다. ㅎㅎㅎ

ㅎㅎㅎ 제가 폭풍 댓글을 남기는 거 같아서 ㅋㅋ댓글 안 쓰려 했는데 ㅋㅋ 아래 댓글 읽다가 너무 웃겨서 ㅋㅋ 댓글 남깁니다.

Kmlee 님은 유머도 심각하게 하시네요 ㅎㅎㅎ아.. 유머가 아니셨나요 ㅎㅎ
어쨋든, Kmlee님이 볼드체 쓰셔서 처음에 보고 살짝 놀랐어요. ㅎㅎ

개인적으로 글의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인데 작가가 이에 관여한다고 생각해서

저 역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죠. 볼드체는 작가가 특별히 이걸 꼭 강조해서 심어주고 싶다는 의도가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떄로는 볼드 문장을 먼저 보고 나머지를 읽으며 느낌이나 생각을 볼드 문장에 맞추려는 의도가 나도 모르게 일어나거든요. ^^

어려운 글은 볼드체가 있을 때 다른 건 잊어버려도 그 볼드체 문장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 역시 글을 읽는 사람이 기억을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조가 되어서 기억이 되는지는 알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냥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결정은 작가님 마음 :)
오래전 글에 괜히 제가 오지랖 댓글 남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당시에는 한국 커뮤니티가 지금보다 활발해서 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장문의 글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실까봐 따로 요점을 추려봤었습니다. 사실... 아시겠지만 굳이 볼드를 활용하지 않아도 작가가 원하면 독자들을 조종할 수 있긴 합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오래된 글인데도 조회수가 처참한걸 보니 내 인지도 낮았거나 읽을 글이 많긴 했긴 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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